NH ‘독도버스’ KB ‘VR브랜치’ 하나 ‘하나월드’ 등 개발 경쟁 후끈…가상공간 업무 이상의 차별화 과제로
#영업점에서 게임도 하고, 투자 안내도 받고
2022년 3월 선보이는 NH농협은행의 롤플레잉 메타버스 플랫폼 ‘독도버스’의 사전신청은 하루 만에 모집 인원 3만 6500명을 채웠다. 예상치 못한 조기 마감이라는 평가가 농협은행 안팎에서 나왔다. 독도버스 이용자는 가상세계 독도의 주민이 되어 부동산을 사고 게임을 즐길 수 있다. 각종 미션을 수행하면 독도버스 안에서 사용할 수 있는 암호화폐(가상화폐)를 받는다. 이 암호화폐는 가상금융센터(메타버스 브랜치)에 예치하면 농협은행의 모바일 플랫폼인 올원뱅크와 연동해 현실에서도 사용할 수 있다. 뜨거운 사전 신청 열기에 독도버스 시스템 구축에 참여한 금융 핀테크 업체 핑거의 주가가 급등하기도 했다.
농협은행뿐만이 아니다. KB국민은행도 중장기적으로 이용객들이 가상현실에서 실제 송금과 금융 상품 가입까지 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준비하고 있다. 국민은행은 11월 29일 가상현실 지점의 시험공간인 ‘KB 메타버스 VR브랜치 테스트베드’를 만들었다. 하나은행은 지난 7월 제페토에 메타버스 연수원 ‘하나글로벌캠퍼스’를 개관하고 11월에는 가상공간 ‘하나월드’를 신설했다. ‘하나월드’에는 외화와 채권 등을 다루는 딜링룸과 하나은행의 위변조 화폐 담당 전담부서인 위변조대응센터 등이 마련됐다.
IBK기업은행은 싸이월드 메타버스 플랫폼에 ‘IBK 도토리은행’을 입점한다. 이용객들은 시간·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싸이월드 속의 IBK 도토리은행을 방문해 서비스를 체험할 수 있게 된다. 우리은행은 아바타와 인공지능 은행원을 활용하고 신한은행 역시 자체 메타버스 플랫폼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기존 시중은행과 달리 후발주자인 인터넷전문은행의 입장은 오히려 보수적이다. 카카오뱅크 한 관계자는 “최신의 기술이나 트렌드가 금융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들을 위한 최선의 솔루션이 아니기도 하기 때문에 지금으로서는 모바일에서 최대한 완결된 비대면 서비스를 보여드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케이뱅크의 한 관계자 역시 “아직 결정된 사안은 없다”면서 “당장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서 론칭해야 할 정도로 시급을 다투는 사안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선을 그었다.
#메타버스는 고공비행 중
메타버스는 이용자들끼리 시공간의 제약을 넘어 교류하고 생활할 수 있는 3차원 가상세계를 의미한다.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대유행)으로 비대면 경제활동이 늘면서 본격적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지난 10월 28일에는 페이스북의 CEO(최고경영자) 마크 저커버그가 ‘메타버스는 모바일 인터넷의 다음 버전’이라며 사명을 ‘메타’로 바꾸기도 했다.
메타버스는 저변을 빠르게 확대하고 있다. 은행권이 메타버스에 주목하는 이유다. 실제 메타버스 게임 제작 플랫폼인 로블록스의 일일 이용자는 2019년 1분기 1540만 명에서 올해 2분기 4800만 명으로 212% 증가했다. 월간 사용자가 1억 5000만 명 수준이고 로블록스 내 사용자가 만든 게임도 5000만 개에 달한다. 온라인 비디오 서바이벌 게임 포트나이트와 네이버에서 개발한 3D 아바타 제작 애플리케이션 제페토의 글로벌 누적 이용자도 각각 2억 명을 훌쩍 넘는다.
시장 규모도 가파르게 확대되고 있다. 하나금융연구소는 2019년도에 455억 달러였던 메타버스 시장이 2030년에는 1만 5429억 달러(약 1828조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향후 10년 동안 약 34배 가까이 성장하는 셈이다. 특히 텐센트와 화웨이를 앞세운 중국이 메타버스 산업에 공격적인 투자를 이어가고 있는 것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소통이 목적? 아직은 시작 단계
시중은행이 메타버스에 주목하는 또 다른 이유는 미래 잠정 고객인 MZ세대들을 공략하기 위해서다. 어릴 때부터 디지털 기기에 특화된 MZ세대들과 소통하는 공간을 만들고 접점을 넓혀 자사 이미지를 친근하게 홍보하겠다는 전략이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현재 MZ세대 등 젊은 고객들을 타기팅 해 메타버스 내부에서 이들이 금융 서비스를 체험할 수 있게끔 준비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스마트학생복이 9월 1일부터 2주간 10대 청소년 71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메타버스에 대해 알고 있는 학생은 81.1%(576명)이고 현재 사용하고 있는 학생은 24.8%(176명)였다. 메타버스가 아직 규모가 크지 않은 초기 시장임을 감안하면 간과하기 어려운 수치다.
하지만 은행권의 메타버스를 활용한 사업 모델은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무르고 있다. 현실적인 한계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메타버스 내부에서의 은행권의 궁극적인 지향점 중 하나인 금융거래에 대한 마땅한 가이드라인이 없다. 아직 관련 입법 논의는 전무한 상태다. 국회입법조사처에서 7월 28일 연구보고서 ‘메타버스의 현황과 향후 과제’를 발간하면서 메타버스와 관련한 입법 과제들을 논의했으나 금융권 관련 내용은 없었다. 메타버스 공간 내부에서 어떻게 본인인증 시스템, 금융통신망을 구축할 것인지도 선결과제다.
이 같은 한계에 대해 시중은행 관계자들 역시 공감하고 있다. 시중은행 다른 관계자는 “현재는 메타버스에서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 영역이 제한적이라 상담채널 위주로 활용할 계획”이라며 “메타버스에 대한 인지도가 높아지고 당국과 공감대가 형성되면 좀 더 적극적인 서비스도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용자들끼리 놀며 수익 얻을 수 있어야”
전문가들은 역시 은행권이 메타버스를 상업적으로 활용하려면 기존 업무를 가상공간으로 옮겨놓는 것 이상의 분명한 차별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연세대 경제학과 성태윤 교수는 “메타버스를 통해 은행을 이용하는 게 훨씬 더 좋다고 느낄 만한 요소가 분명히 있어야 한다”며 “개별 금융기관들이 지금까지의 금융업무를 가상공간으로 옮겨놓는 것 이상의 아이디어를 내지 않는다면 한계가 생길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박항준 누림경제발전연구원 원장은 “메타버스는 게임이나 교육, 관광 분야에 최적화되어 있기 때문에 금융권으로서는 다소 어려운 도전인 것도 사실”이라며 “메타버스 플랫폼 안에서 구현 가능한 이용객의 니즈를 고민해보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근 출간된 ‘메타버스 경영’의 저자들은 플랫폼의 ‘소셜화’를 성공 전략으로 꼽는다. 실례로 포트나이트는 단순한 게임 플랫폼에 머물지 않고 가상공간 안에서 콘서트를 열고 이용자들을 매개하는 SNS 역할까지 수행했다.
이용자에게 인센티브를 주기 위해 메타버스 내에서 유통하는 NFT(대체불가토큰) 등을 상품화하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앞서의 박항준 원장은 “기업뿐만 아니라 이용자도 경제적 수익을 얻어가야만 메타버스가 활성화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NFT같은 것들이 데이터 자산으로 인정되고 메타버스 안에서 대규모로 유통되면 일종의 금융상품이나 투자수단으로서 의미가 생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국가상증강현실산업협회가 지난 12월 8일 개최한 2021 DMC XR 기술포럼에서 박정우 서틴스플로어 대표는 “NFT로 인해 결국 가상현실 내부에서 경제시스템이 작동하게 될 것”이라며 “현실세계의 금융서비스가 그대로 이전될 수 있으며 결국 거기서 얻게 되는 재화가 내 생활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화폐로서의 기능도 가질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정민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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