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 핵심 인물 극단적 선택 배경
수사당국에 따르면 10일 새벽 4시쯤 경기 고양시에 거주하는 유한기 전 본부장의 가족으로부터 실종 신고가 접수됐다. 유 전 본부장이 극단적 선택을 암시하는 내용의 유서를 남겼다는 신고였는데, 4시간 정도 지난 오전 7시 40분쯤 경찰은 고양시 한 아파트단지 화단에서 유 전 본부장이 숨져있는 것을 발견했다. 유 전 본부장은 가족들에게 유서를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수사에 따른 극단적 선택이었다. 이보다 하루 앞선 9일, 서울중앙지검 대장동 개발 로비·특혜 수사팀은 유 전 본부장에 대해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검찰이 적용한 혐의는 뇌물. 검찰은 유 전 본부장이 2014년 8월 화천대유자산관리(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 씨와 천화동인 4호 소유주 남욱 변호사, 천화동인 5호 소유주 정영학 회계사로부터 한강유역환경청 로비 명목으로 2억 원의 뒷돈을 챙긴 것으로 판단했다.
검찰은 관련자들로부터 ‘김만배 씨 등이 대장동 아파트 분양업체 대표이자 박영수 전 특별검사의 인척인 이 아무개 씨로부터 로비 자금을 조달한 뒤 서울 시내의 한 호텔 지하 주차장에서 정 회계사가 유 전 본부장에게 2억 원을 전달했다’고 입증할 수 있는 증거들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한강유역환경청은 대장동 사업 환경 영향 평가를 진행하면서 일부 지역을 보전 가치가 높은 1등급 권역으로 지정했다가 이후 해제했다.
유 전 본부장은 대장동 사업을 설계한 인물은 아니지만, 깊숙하게 관여했던 인물로 평가받는다. 구속영장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2015년 2월께 대장동 사업 주체인 성남시 산하 성남도시개발공사 황무성 초대 사장의 사퇴를 압박한 의혹도 받고 있다. 수사팀은 곧바로 입장을 내놨다. 서울중앙지검은 “이번 불행한 일에 대하여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 진심으로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밝혔다.
#야당 비판 속 법조계도 ‘왜?’
검찰이 정·재계 관련 수사를 하다가 피의자가 사망하는 사건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20년 12월에는 옵티머스자산운용 연관 의혹과 관련해 검찰 수사를 받던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 비서실 부실장이 숨진 채 발견된 바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법조계 시선이 곱지 않다. 검찰에서 수사 방향을 선택할 때 대장동 개발 과정에서 화천대유 등에 특혜를 준 배경(배임 의혹)으로의 윗선 수사가 아니라, 관련 뇌물을 받았던 인물들로의 수사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대선을 앞둔 결정이었다고 하지만, 수사 당사자에게는 큰 부담이 됐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당초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은 대선 등을 고려, 성남시로의 수사가 아니라 김만배 씨 등에게 금품을 받은 곽상도 전 국회의원 포함 50억 클럽 등으로의 수사를 우선하겠다고 방향을 설정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유 전 본부장은 ‘윗선’으로의 연결고리도 있었던 핵심이었기에, 더 큰 압박을 받았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앞서 언론에 공개된 녹취록에 따르면 유한기 전 본부장은 유동규 당시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과 ‘정 실장(정진상 전 성남시 정책실장)’ 등 상부의 지시가 있었다며 사퇴를 독촉했다. 이에 사퇴 대상자로 지목된 황무성 초대 성남도시개발공사 사장이 불쾌감을 드러내자 “시장님(이재명 당시 성남시장) 명을 받아서 한 거 아닙니까. 시장님 이야기입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구속영장 청구 내용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구속이 될 경우, 황 전 사장 사퇴 관련 ‘윗선’을 불어야 하는 압박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추론이다.
특수수사 경험이 많은 검사 출신 변호사는 “더 큰 잘못을 한 사람이 먼저 큰 처벌을 받아야 나머지 사건 관계자들도 처벌을 받을 때 불만이 없다. 항상 범죄에 있어 핵심 혐의를 가장 먼저, 집중 수사 하는 게 특수수사의 원칙 중 하나”라며 “이번 사건은 화천대유에게 특혜를 준 성남시로의 배임은 수사하지 않고 그 주변 인물들의 뇌물을 먼저 수사하다 보니 발생한 것 아니겠나”라고 해석했다.
당장 야당에서도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이준석 국민의힘 당대표는 유한기 전 본부장 사망과 관련 “고인의 명복은 빈다”며 “설계자 1번 플레이어를 두고 주변만 탈탈 터니 이런 거 아니겠느냐”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를 저격했다.
수사는 차질이 예상된다. 앞선 변호사는 “통상 핵심 피고인 가운데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경우가 발생하면 수사팀도 분위기를 고려할 수밖에 없다”며 “유 전 본부장 관련된 지점은 더 이상 수사를 하지 않고 정치권에서 나오는 비판들도 고려해가며 수사 속도나 방향을 조금 수정하지 않겠느냐”고 예상했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