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위원장 연일 목소리 내자 후보 실종 프레임 고개…윤 후보 측 ‘상왕 논란’ 극복할 ‘권력 분점 새정치’ 준비
동시에 김종인 위원장만 보이고 대선 후보 윤석열은 쪼그라드는 위치 역전 현상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다. 윤 후보는 ‘후보가 안 보인다’는 지적에 대해 권력 분점을 통한 정당민주주의 회복이라는 구호를 사용하면서 이를 새정치로 치환하고 있지만 더불어민주당의 ‘후보 실종’ 프레임이 뼈아플 것이란 반응도 나온다.
#김종인, 차르 본색 무한 발산
김종인 위원장은 ‘예상대로’ 움직이는 중이다. 윤석열 후보가 아닌 자신이 직접 이슈를 만들어내면서 언론의 주목을 자신 앞으로 끌어오고 있다. 민주당 출입기자들이 이재명 후보만 따라다닌다고 본다면, 국민의힘 출입기자들은 윤석열 후보도 밀착 마크하지만 김종인 위원장을 쫓아다니는데도 열을 올리는 모습이다. 김 위원장이 국민의힘 선대위 마이크를 그만큼 꽉 움켜잡고 있는 셈이다.
김 위원장은 11월 12일 방송 인터뷰를 통해 ‘전권을 지닌 선대위원장이 아니면 안 한다’는 입장을 공식화했다. 그는 이날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 윤석열 선거대책위원회 합류와 관련 “허수아비 노릇을 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보란 듯이 선대위로 들어오자마자 전권을 실제로 휘두르고 있다.
김 위원장은 선대위 인사부터 장악했다. 그와 가까운 인물들이 선대위에 속속 합류하고 있다. 금태섭 전 민주당 의원이 대표적이다. 김 위원장과 물밑 교감을 이어온 금 전 의원은 선대위 총괄상황본부 산하 전략기획실장에 임명됐다. 총괄상황본부는 김종인 위원장 직속이며 글자 그대로 선대위 총괄 기구다. 총괄상황본부장도 김 위원장과 밀접한 관계로 불리는 이명박 정부 대통령 비서실장 출신 임태희 씨가 맡았다. 김 위원장이 아끼는 것으로 전해진 윤희숙 전 의원도 선대위 합류 사실이 12월 10일 임태희 본부장 입을 통해 알려졌다.
선대위 인사를 본 국민의힘 당직자들은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를 뜻하는 말)’이 빠지고 ‘김핵관(김종인 핵심 관계자)’ 인사가 실현됐다는 평을 내놓는다. 김 위원장은 지난 2012년 대선 때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를 도왔지만 박 후보를 둘러싸고 있던 측근들에게 호되게 당한 경험이 있어 그때의 악몽을 재연하기 않기 위해 선대위 인사부터 확실히 장악하고 있다는 것이 국민의힘 당직자들의 전언이다.
실제로 김 위원장은 12월 8일 MBN 뉴스에 출연, 자신이 윤 후보 주변에서 물러날 것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진 장제원 의원에 대해 “하여튼 선거하는 데 있어서 백의종군하겠다고 자기 지역구(부산 사상구)로 갔기 때문에 선대위에 올 것 같지 않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윤핵관은 확실히 배제하고 있다는 의미로 읽힌다.
김 위원장은 선대위가 출범하자마자 그의 최대 장기인 과감한 메시지 던지기를 통해 여론의 관심을 극대화하고 있다. 논란도 있지만 그는 부임하자마자 ‘코로나19 손실보상 100조 원’등을 던지면서 치열한 대선 정국에서 메시지 전쟁의 주도권을 확보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 위원장은 고루한 이슈보다는 국민들에게 가장 쉽게 피부로 와 닿는 과제에 집중하면서 “역시 김종인”이라는 평도 받고 있다. 김 위원장은 선대위 산하에 ‘코로나 대응위원회’를 발족했고 직접 이 위원회를 챙기고 있다.
김 위원장은 12월 9일 선대위 회의에서 “최근 코로나 사태가 매우 심각한 상황으로 전개되는데 국민들이 코로나 사태로 굉장히 불안한 심리를 갖게 될 수밖에 없다”며 “앞으로 선거 과정에서 국민들 심리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코로나 사태 관련한 것을 팔로업 할(챙길) 기구가 설치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김 위원장이 다른 선대위 관계자들을 배제한 채 홀로 달려 나가면서 원맨쇼를 하고 있는 것에 대해 걱정 섞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들이 적지 않다. 김 위원장은 12월 7일, ‘김병준 상임선대위원장이 강조하는 자유주의가 김 위원장 생각과 충돌한다’는 취지로 기자들이 묻자 “나는 관심이 없으니 물어보지 말라”는 취지로 답했다. 김병준 상임선대위원장을 ‘그 사람’이라고 칭하며 “그 사람이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 신경을 쓰는 사람이 아니다”라고도 했다.
둘 사이 ‘신경전’ 설에 대한 질문이 이어지자 “누가 그런 소리를 하나. 내가 그런 사람하고 신경을 쓰면서 역할을 할 그럴 사람이 아니다”라며 김병준 위원장을 평가절하하는 듯한 모양새까지 드러냈다.
“내가 예전부터 예언했듯이 이 분은 조직적 관점이 부족하고 세상이 본인 위주로 돌아가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다. 나보다 잘난 사람 있으면 나와 봐. 이분은 민주주의와 거리가 멀다. 조직은 없고 나만 있다. 대중적 스킨십 제로에 가까운 정치인이다.”
김종인 위원장이 2016년 총선에서 민주당 공천작업을 주도했을 당시, 공천에서 탈락한 바 있는 정청래 민주당 의원은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김 위원장에 대한 평가를 이렇게 내린 바 있다. 똑같은 걱정을 최근 국민의힘 관계자들이 하고 있는 셈이라고 국민의힘 내부 인사들은 속내를 털어놓고 있다.
국민의힘 한 당직자는 “아무리 똑똑한 사람이라도 혼자 다 할 수는 없다. 김 위원장이 여러모로 특별한 재주를 갖고 있지만 과거처럼 독선적 모습을 보인다면 선대위가 순항할 수 없다. 후보는 물론, 김병준 위원장과도 협력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라고 했다.
#‘윤찍김’ 프레임 먹힐까
윤 후보의 가장 큰 고민은 김 위원장으로 인해 ‘윤찍김(윤석열을 찍으면 김종인이 상왕된다)’ 프레임에 갇힐 수도 있다는 것이다. 보수성향 유권자들은 물론, 중도층 중에서도 고루하고 권위적인 느낌의 김 위원장을 꺼려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데 김 위원장이 후보를 가릴 경우 윤 후보 지지에서 이탈하는 유권자들이 급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프레임의 파괴력은 이미 실제 지난 대선에서 검증된 바 있다. 2017년 대선에서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는 ‘안찍박(안철수를 찍으면 박지원이 상왕된다)’ 프레임으로 재미를 봤다. 이 프레임을 홍 후보가 내세우자 당시 안철수 국민의당 지지율이 출렁하고, 탄핵으로 인해 바닥으로 내려가던 자유한국당의 홍준표 후보 지지율이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다. 국민의당은 대선 이후 이 프레임을 주요 패인으로 분석하기도 했다. 상황이 심각하다고 생각했던 터라 그 당시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는 이 프레임에 역공을 걸어 ‘홍찍박(홍준표를 찍으면 박근혜가 옥황상제가 된다)’을 들고 나오기도 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윤찍김’ 프레임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그는 12월 9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의 적극적 코로나 피해 보상을 촉구하면서 윤석열 후보를 향해 “김종인 위원장 뒤에 숨지 말고 김 위원장의 손실보상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당당하게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몰아세웠다.
민주당은 국민의힘 내홍이 봉합되자마자부터 윤석열 깎아내리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윤 후보가 김 위원장에게 전권을 줌으로써 조연으로 밀려났다며 리더십 문제를 거듭 공격하고 있는 것이다.
민주당 조승래 수석대변인은 12월 5일 논평을 내고 “윤 후보는 이준석 대표에게 선대위 전권을 주겠다고 호언했고 김 전 위원장도 (사실상) 전권을 준다는 조건으로 총괄 선대위원장에 인선했다”면서 “전권이 몇 개인지는 모르겠으나 윤 후보 자신은 아무것도 안 하겠다는 것이다. 봉합 과정에서부터 윤 후보는 조연이었고, 김 전 위원장에게 주도권을 뺏긴 모양새다. 윤 후보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자인한 시간이었다”고 했다.
김종인 상왕 프레임이 번지면서 정치권에서는 벌써 대선 이후 김종인 위원장 역할론까지 나온다. 윤 후보가 청와대로 간다면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을 거쳐 실세 국무총리로 등극할 것이라는 소문이다. 김 위원장은 12월 8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이런 전망에 대해 “끼고 싶지 않다. 그런 일이 안 일어날 것”이라며 부인하는 취지로 얘기했지만 “그때 가봐야 알겠지만”이란 단서도 달아 여러 해석이 분분해지고 있다.
#윤 후보 측 고육지책 '새정치 프레임'
윤 후보 측은 정치 초보라 훈수정치가 난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김 위원장이 훈수정치에 대한 방패가 될 수 있다는 기대다. 더욱이 김 위원장이 선대위에 합류하지 않은 채 밖에서 윤 후보에 대한 강력 비토 세력이 된다면 대선 필패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 역시 윤 후보 측에서는 심각하게 고려했다.
그러나 김 위원장이 너무 큰 간판을 차지하는 것은 윤 후보 측의 분명한 부담이다. 대선 국면에서는 정당보다 후보 이미지가 승패를 더 크게 좌우했던 게 대한민국 헌정사인데 김 위원장의 전면부 등장은 후보 이미지를 주연이 아닌 조연으로 끌어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고육지책으로 윤 후보 측은 권력 분점을 통한 민주주의 회복을 슬로건으로 내걸면서 이를 방어하고 있다. 상왕을 모신 것이 아니라 후보와 소수 측근들이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던 승자 독식의 비민주적 정당 운영을 대선 준비 단계부터 확 바꾸는 것이 윤석열 정치라는 것이다.
윤 후보 측은 법률가인 윤 후보가 오랫동안 헌법에 입각한 법치주의 정신을 강조해왔고 이번 대선이 바로 이 정신의 실현 무대라는 점도 내세우고 있다. 권력개혁을 위한 별도 위원회를 후보 직속 기구로 출범한다는 안을 갖고 있다는 점도 윤 후보 측은 얘기하고 있다. 국민의힘 한 중진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정치는 지극히 현실적인 것이다. 김 위원장과의 동행이 시작됐다면 최대한 김 위원장의 장점을 활용하고, 김 위원장과의 동행에서 불거질 수밖에 없는 단점 노출은 좋은 논리를 차용해 최대한 순화시키면 된다. 김 위원장과 호흡을 잘 맞춰 집단지성, 협치, 대화와 토론이라는 민주정치의 중요 요소들을 보여주고 있다는 신호를 잘 발산한다면 상왕 프레임은 잘 극복될 수 있을 것이다.”
최경철 매일신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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