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야권 단일정당을 위해 뛰고 있는 ‘국민의 명령’ 문성근 대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유쾌한 백만 민란 국민의 명령’이라는 시민정치운동단체를 만들게 된 계기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어떻게 하면 야권이 총단결을 하나, 고민을 많이 했다. 정치인들에게 내 생각에 대해 틈틈이 제안을 드렸다. 그러다가 지난해 6·2 지방선거 개표를 보며 결심하게 됐다. 야권이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었다.
―제안서를 가지고 야권 각 정당과 논의를 한 것인가.
▲시민사회 활동가, 민주당, 민노당, 참여당, 진보신당 등 정당지도부를 직접 찾아가 운동의 취지를 말씀드렸다. 정당권에선 ‘좋은 일이다,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하셨고, 시민사회단체에선 ‘이게 가능한 일이냐’에 대한 우려를 많이 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정체성 보장제도’를 도입한 연합정당 성격의 통합정당을 구체적으로 제안한 이후부터는 실현 가능성에 대해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정체성 보장제도’를 통해 통합정당을 만든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한 지붕 다섯 가족’을 생각하면 된다. 야권 다섯 개 당(민주당, 민노당, 참여당, 진보신당, 창조한국당)이 당을 통째로 가지고 들어오자는 거다. 당원명부, 당령도 유지하고 정책연구원도 유지하는 상태에서 광범위하게 공동 공약을 만들자는 것이다. 도저히 합의가 되지 않는 사안은 ‘어그리 투 디스어그리’(agree to disagree)하자는 거다. 즉 합의가 안 된다는 사실에 대해 인정을 하고 강제적 당론을 채택하지 말자는 것이다. 정책적 차이는 공정하게 경쟁을 하자는 것이다.
―제1야당인 민주당과의 논의는 어느 정도 진행된 것인가.
▲손학규 대표도 이 제안에 대해 상세히 알고 있다. 손 대표가 춘천에 칩거하던 시절에 직접 찾아가 충분히 설명을 드렸다. 손 대표가 큰형 친구니까 평소 ‘형님’이라고 한다. 손 대표 역시 통합이 우선이라는 생각에 공감하고 있다.
―‘친노 정당’인 국민참여당 유시민 대표와도 교감을 나누었나.
▲충분히 말씀드렸고 유시민 대표 역시 취지를 잘 알고 있다. 당의 혁신 가능성에 대한 의문은 있는 듯하다. 우리의 계획대로 ‘온오프’를 결합한 민주적인 정당을 설계해서 추진해 나아간다면 참여당도 충분히 합류를 검토할 것으로 믿는다.
―내년 대선에서 ‘단일 정당’과 함께 ‘단일 후보’를 만들어야 할 텐데.
▲연합정당 성격의 통합정당이 만들어진다면 당연히 그 안에서 경선이 벌어질 테고 단일 후보가 만들어지지 않겠나.
“손학규 대표나 유시민 대표 모두 경선을 통해 후보가 선출되면 한 분이 다른 분을 지지할 수 있을까”라는 추가 질문을 했더니 그는 “당연히 그렇게 되는 것 아니냐”며 “우선은 연합정당을 만들어 총선을 잘 치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야권단일정당’을 만들기 위한 방법에 대해 여러 날 고민을 한 듯했다. 이에 대한 그의 생각은 일목요연했고 구체적 설명도 이어졌다. 문성근 대표를 ‘정치의 길’로 이끈 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질문을 이어 보았다.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한 지 두 해가 지났다.
▲노 전 대통령의 유서를 이해하는 데 1년 9개월이 걸렸다. 그 유서를 마을 방송을 통해 내가 맨 처음 읽었는데, ‘집 가까운 데 작은 비석 하나 세워라, 오랜 생각이다’ 이 말이… 당시엔 ‘아니, 대통령이 이 나라가 얼마나 싫었으면 국립묘지를 거부하시는 걸까’ 이렇게 이해했었다. 그랬는데 지난 6·2 지방선거 당시 김두관 (경남지사) 후보 지원유세를 하며, 개표방송을 보며 ‘아차, 그게 아니었구나’ 싶었다. 봉하마을에 내려가 사신다는 것 자체가 지역구도 극복에 도움이 되려는 생각이었다. 죽어서도, 그곳에 묻힘으로 해서 지역구도를 극복하는 데 기여하겠다는 생각이셨던 거다. 그게 오랜 생각이었던 거다. 그걸 1년 만에 깨달았다.
문 대표는 이어 “서거 당일 아침에 CCTV 화면을 보면 길거리의 풀을 뽑으시는 모습이 있다. 유서도 컴퓨터에 써놓고 그 무서운 결심을 하신 분이 어떻게 저러실 수가 있을까 싶었다. 그게 어떤 심정이길래 그럴 수가 있었을까…. 이것을 지난 3월에 깨달았다. 바로 삶과 죽음은 자연의 한 조각이라고 하신 말씀이었다. 내 육체는 끝이 나지만 노무현은 역사 속에 살아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며 진한 회한을 삼켰다. 그는 “유서 속의 ‘운명이다’라는 대목이 결국 체념적 운명이 아니라는 것을 그때서야 깨달았다”고 덧붙였다.
―문재인 이사장의 책이 큰 화제를 모았는데.
▲책을 열심히 읽어보았다. ‘당신은 풀려났지만 난 꼼짝 못하게 됐다’는 마지막 문장이 참으로 와 닿았다. 운명이라는 것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하고 계시다는 것이 절절이 보였다. 나는 노무현재단 회의에서도 뵙고, 자주 뵙는 입장이라 더 무슨 얘기를 하기 어렵다. 4·27 재보선 이후 문 이사장 역시 야권통합을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혀주셔서 국민의 명령 입장에서도 천군만마를 얻은 셈이다.
―책 내용 중 문성근 대표가 2003년 가을 대북 특사로 방북했던 내용이 논란이 되기도 했다. 방북 사실에 대해 이전에 공개한 적이 있었는지.
▲없었다. 문재인 이사장께서 처음으로 공개하신 것이다. 우리나라의 가장 중요한 통치행위 중 하나이기 때문에 그 내용에 대해선 공개하지 않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한다. 다만 ‘왜 나를 보내셨을까’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내 나름대로 짐작하고 있을 뿐이다.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를 지지하면서 남북관계를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을 늘 했었고 이를 노 후보도 알고 계셨다. 또 하나는 국민들께선 잘 모르시는데, 89년 4·2 공동성명 당시 문익환 목사(문성근 대표의 아버지)가 방북해서 김일성 주석하고 두 차례에 걸쳐 8시간 정도 토론을 했다. 당시 북쪽에서는 60년대 초반부터 고려연방제를 주장했었는데 이를 문 목사의 설득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문화교류, 경제협력, 이산가족만남을 정치협상과 병행 추진한다’는 것과 ‘고려연방제의 전 단계를 도입할 수 있다’는 획기적인 남북대화 방침의 변화가 있었다. 이것이 11년 후 정상회담을 통해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당국자 간 합의로 이어진 것이다. 이 내용을 당시 노태우 대통령에게 건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었고 결국 김대중 대통령이 11년 전 있었던 합의 내용을 그대로 이어가 6·15 공동성명으로 안착된 거다. 이 내용을 너무나 잘 알고 있던 노무현 대통령이 특사로 나를 적임자로 생각하지 않았나 싶다.
―노 전 대통령이 특사로 보내며 당부한 이야기는 무엇이었나.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대북송금특검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면서 곤란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남북관계를 발전시켜야 된다는 진정한 마음이 있다는 것을 전달하고 싶어 하셨고, 이 마음을 전해달라는 당부를 했었다.
―당시 방북 과정과 친서 내용에 대해선 공개할 수 없는지.
▲그건 아니다.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여권 내 일각에서는 이 과정을 공개하라고 압박을 하기도 했는데.
▲대체 정치를 하겠다는 건지, 외교를 하겠다는 건지 모르겠다. 그야말로 핵심적인 외교 사안이며 통치철학에 관한 일인데… 그건 집권당으로서의 자세가 아니다.
―얼마 전 이명박 정부의 대북 비밀 접촉 사실이 공개되기도 했다.
▲(한숨을 쉬며) 그에 대해선 하고 싶은 말이 없다. 노코멘트 하겠다. 하지 말자(웃음).
인터뷰 말미에 노무현 정부 시절 문 대표와 함께 ‘친노 영화인’으로 손꼽혔던 명계남 씨에 대한 질문을 던져봤다. 그의 목소리에서 착잡한 심경이 배어 나오는 듯했다.
―얼마 전 명계남 씨가 대부업체 광고에 출연해 안타까움을 사기도 했는데.
▲다시 연기 활동을 하려고 하는데 제재가 상당했다. 어떻게 살고 있는지 대충 알고는 있지만 연락은 하지 않고 있다. 생활은 안 되고 빚은 너무 많고…. 명계남 씨는 영화 제작하면서 빚도 많이 졌다. 연기자로서 활동을 못하니 수입원이 없고 상당히 힘든 상태다. 워낙 (명계남 씨는) 정치적인 욕망을 가진 사람도 아니었다. 일단은 생업이 가능하도록 일을 하는 게 우선이다.
문성근 대표는 끝으로 “직접 정치권으로 나설 생각은 없는가”라는 질문에 “국민의 명령을 성공시키는 데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하겠다”며 말을 아꼈다. 정치적인 색채를 떠나 그의 실험적 정치시민사회운동이 향후 어떤 결실을 맺게 될지 궁금해진다.
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