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 피터 파커를 딛고 ‘영웅’ 스파이더맨으로…리미터 해제한 ‘웹 스윙’ 액션도 백미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은 지난 2019년 개봉한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의 엔딩 이후 첫 번째 쿠키 영상에서부터 이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영웅을 가장한 빌런 미스테리오(제이크 질렌할 분)가 스파이더맨의 정체를 공개하며 그를 참사를 일으킨 가해자로 지목하는 바로 그 장면에서부터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MCU의 대부분 이야기가 위기에서 시작된다지만 이번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의 위기는 관객들에게 이전 작품보다 좀 더 현실적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졸지에 피터 파커(톰 홀랜드 분)라는 정체가 강제로 공개된 스파이더맨은 ‘친절한 이웃’에서 대참사의 원흉으로 꼽히며 어딜 가든 대중들의 시선 폭격을 맞게 되는 처지에 놓인다. 원치 않는 스포트라이트에 괴로워하는 모습은 영웅과 유명인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허세를 품고 있었던 ‘스파이더맨: 홈커밍’때와는 확연히 다른 면모이기도 하다.
장본인 뿐 아니라 주변에까지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되는 것도 현실적이다. 미스테리오의 폭로 이후 피터의 애인인 엠제이(젠데이아 분), 친구 네드(제이콥 배덜런 분), 큰엄마인 메이(마리사 토메이 분)까지 ‘스파이더맨 일당’이라는 낙인이 찍혀 크고 작은 피해를 입게 된다. 스스로가 겪는 고통은 기꺼이 감수하겠지만 주변인의 괴로움을 외면할 수 없었던 피터는 결국 닥터 스트레인지(베네딕트 컴버배치 분)를 찾아가 자신을 알고 있는 모든 이들의 기억 속에서 ‘스파이더맨이 피터 파커라는 사실’을 지워달라고 요청하기에 이른다.
시작은 미스테리오의 거짓말에서 비롯됐지만 사태를 참사로 키운 것은 피터의 이 소원이었다. 소원을 이뤄주기 위해 주문을 외우던 중 뜻하지 않게 멀티버스가 열리면서 다른 차원에서 스파이더맨과 맞섰던 숙적들이 피터의 세계에 나타나게 된다. 여기서의 ‘다른 차원’은 현실에선 토비 맥과이어의 ‘스파이더맨 트릴로지’(2002~2007)와 앤드루 가필드의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시리즈’(2012~2014) 속 세계를 가리킨다. 이에 따라 MCU 톰 홀랜드의 스파이더맨이 ‘스파이더맨 트릴로지’ 속 빌런인 그린 고블린, 닥터 옥토퍼스, 샌드맨과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빌런 일렉트로, 리저드 등과 맞대결을 펼치는 진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빌런들의 세계관이 넓어진 만큼 더욱 과감해진 액션 스케일도 눈에 띈다. 다른 시리즈에 비해 ‘웹 스윙’이 빈약하다는 비판을 들었던 설움을 떨쳐내기라도 하듯, 아이맥스 스크린이 부족할 정도로 그야말로 폭발적인 액션 신을 선보인다. 리미터가 해제된 제작진들이 살풀이처럼 풀어내는 '미쳐버린 액션신' 중, 중반부 미러 디멘션 신과 마지막 전투 신은 이 작품을 왜 큰 스크린으로 봐야하는지를 굳이 부연하지 않아도 눈으로 깨닫게 해주는 증거 그 자체가 되기도 한다.
다소 부족했던 액션 신 외에도 MCU의 스파이더맨은 앞선 선배 스파이더맨과 달리 질풍노도 사춘기적인 면모가 두드러진다는 점에서 선배 팬들에게 비판을 받아온 바 있다. ‘마블 코믹스 사상 가장 박복한 히어로’를 꼽으라면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는 스파이더맨의 아이덴티티와 대비해서도 MCU 스파이더맨은 타노스의 손가락으로 인해 가루가 됐다는 점을 제외한다면 딱히 큰 굴곡 없는 히어로 인생을 보내온 것도 사실이다. 그렇기에 MCU 스파이더맨은 이미 심적으로 성숙한 스파이더맨(Man)이 아니라 스파이더 보이(Boy)라는 기존 팬들의 지적 역시 수긍 가능한 부분이었다.
앞서 ‘홈커밍’이나 ‘파 프롬 홈’에서 그의 곁에는 스승이자 유사 부자 관계를 형성했던 아이언맨이 있었다. 이로 인해 그의 성공이나 활약은 스파이더맨 자체의 것이라기 보단 주변의 지원과 애정이 받쳐줬기에 존재할 수 있었던 것으로 다소 폄하되는 일도 종종 있어왔다. 아이언맨이 ‘어벤져스: 엔드 게임’에서 사망한 이후에도 스파이더맨에게 ‘새로운 아이언맨’이나 ‘토니 스타크의 후계자’ 같은 명칭이 따라 붙을 것인지에 관심이 모이기도 했다.
이 같은 일련의 스텝을 밟아 도착한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은 소년이 영웅이 되는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점에서 MCU 스파이더맨의 팬은 물론, 기존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팬들도 어느 정도 만족시킬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 작품에서 피터는 시리즈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인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말을 스스로 깨달으면서 누구의 지시 없이도 ‘피터 파커’로서 성장하고, 책임을 지고, 히어로로서 자신만의 결정을 내리며 ‘완전한 히어로’로 홀로 서게 된다.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부터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에 이르기까지 MCU 스파이더맨의 발자취를 그대로 따라왔던 팬들이라면 이번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이 더욱 애틋하게 느껴질지 모른다. 영웅이 늘 TV에서 보는 것처럼 멋지고 정의로운 것만은 아니라는 성장통을 넘어서 비로소 새로운 어벤져스의 페이지를 열 피터 파커의 시작을 함께 하는 셈이니 말이다. 그만큼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은 올 연말 MCU 팬들에게 가장 가치있는, 그리고 스파이더맨 시리즈 팬들에겐 가장 받고 싶었을 크리스마스 선물 패키지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첫 ‘멀티버스’를 연 작품으로 내년 상반기 개봉이 예정된 ‘닥터 스트레인지 인 멀티버스 오브 매드니스’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쿠키 영상은 두 개, 특히 마지막 쿠키를 놓치지 말 것. 148분, 12세 이상 관람가. 12월 15일 개봉.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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