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쿄의 아리아케 콜로세움 앞에서 소녀시대의 포즈를 취하고 있는 일본 팬들. 연합뉴스 |
국내에서 걸그룹 팬 층이 주로 20~30대 남성인 점과 달리 일본 팬은 주로 10대 중반에서 20대 초반 여성이라 한다. 카라와 소녀시대 진출 초기부터 공영방송 NHK와 후지TV, <여성자신> 등 일본 언론은 ‘오시리 댄스(엉덩이 춤) 카라’와 ‘비캬쿠(美脚·아름다운 다리) 소녀시대’라고 보도하며, 한국 걸그룹을 닮고 싶은 일명 ‘워너비(Wannabe)족’ 젊은 여성들이 일본 내 한국 걸그룹 열풍을 이끈다는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실제 올 1월 카라 5인조 멤버가 출연한 도쿄TV 드라마 <우라카라>는 10대 여성이 가장 시청률이 높았던 것으로 드러난 바 있다. 이 드라마는 심야에 방영되었음에도 시청률이 8%나 됐다.
빼어난 춤과 라이브, 화려하고 흐트러짐 없는 군무 등으로 칭송받는 한국 아이돌에 비해 일본 아이돌은 다소 실력이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그도 그럴 것이 아이돌 훈련 시스템이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시장에서는 데뷔 때부터 이미 완성된 프로급 가수를 선호하는 편이라면, 일본은 데뷔 후부터 노래와 춤 솜씨를 쌓아간다고 보면 된다.
가령 일본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걸그룹 ‘AKB48’의 경우 48명의 멤버들은 소속사가 저마다 다른데, 공동 프로듀서의 훈련 아래 경합을 벌여 인기 순으로 앨범 참가 여부가 결정된다. AKB48은 2009년부터는 멤버 전원과 연습생을 대상으로 해마다 인기투표를 실시하고 있다. 판매되는 CD 안에 투표권이 한 장씩 들어 있는데, 팬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멤버에게 투표하고 결과가 나오면 인기순으로 다음 싱글 곡을 부를 멤버를 정한다. 인기가 없으면 가차 없이 밀려나는 서바이벌 방식이다 보니 멤버 간 경쟁이 매우 치열해 불화설 도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 수년간 일본에서는 한국 아이돌 기획사의 장기 전속계약, 까다로운 계약 해지 등 이른바 노예계약 등 성공 뒤에 가려진 K-pop의 어두운 이면이 줄곧 화제가 됐다. 1970년대 후반 일본에서도 핑크레이디, 캔디즈 등 걸그룹 아이돌이 계약과 스케줄 관리 등의 문제로 소속사와 마찰을 빚어 해체하는 소동이 줄줄이 일어난 적이 있어서 한국 아이돌 관련 뉴스를 보고 더러 이때를 회상하는 일본 중장년층 팬도 있다고 한다.
▲ 지난해 5월 카라가 도쿄에서 일본 데뷔곡으로 결정된 ‘미스터’를 선보이는 모습. 연합뉴스 |
또 올 1월 수익금 배분을 둘러싸고 해체소동이 일어났던 카라도 집중적으로 보도됐다. 여성지를 중심으로 ‘카라 멤버들이 일본진출 초기 숙박비가 안드는 사우나에서 강제로 묵었다’는 설과 ‘멤버 일인당 한 달 수입이 단돈 1만 엔(약 14만 원)에 불과하다’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일본 언론의 이런 부정적 내용의 보도가 의도와는 상관없이 오히려 인지도 상승효과를 가져온 것도 사실이다. 6월 17일자 인터넷 포털 <라쿠텐 연예뉴스>는 일본 내 카라의 인기를 중심으로 K-pop의 저력을 검토하는 요지의 기사에서 “노예계약이나 성접대 파문, 성형의혹 등 한국 연예계의 선정적인 이슈가 유럽 등에서 화제를 낳고 있다”며 “시각을 달리하면 이조차도 K-pop을 알릴 긍정적 기회”라고 했다. 즉 논란을 빚는 이슈도 일본에서 그랬던 것처럼, 해외에 나가면 특수하고 흥미로운 배경으로 인식돼 더 화제에 오른다는 것이다. 이 기사는 “K-pop이 일본에 이어 세계 시장을 석권할 날도 머지않은 것 아니냐”고 내다보고 있다.
K-pop의 열풍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올 6월 초 걸그룹 티아라는 일본 매니지먼트사 J-Rock과 3억 5000만 엔(약 47억 원)이란 파격적인 액수로 전속 계약을 맺었다. 7월에 열릴 쇼케이스에도 공연 입장 관객 정원 2500명을 무려 46배나 넘는 신청자가 쇄도했다고 한다.
높은 인기 덕에 K-pop을 잡으려는 일본 업계의 다툼도 한층 치열해지고 있다. 일간지 <사이조>에 따르면 포스트 동방신기로 거론되는 샤이니의 일본 매니지먼트와 마케팅을 놓고 관련업계가 물밑 경쟁을 치열하게 벌였다고 한다. 또 빅뱅의 진출계약을 두고서는 대형 음반회사 유니버셜뮤직저팬, 연예프로덕션인 버닝프로덕션 간에 다툼이 치열해 이를 조정하느라 일본음악사업자협회가 골머리를 썩었다는 후문이다. 유니버셜뮤직저팬은 카라의 일본 매니지먼트를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반면 일본 아이돌의 해외진출 성적은 타이완을 제외하면 신통치 못하다. 2000년대 초중반 발매한 6개의 앨범이 전부 일본 내 밀리언셀러 판매를 기록한 우타다 히카루 등도 미국 진출에 실패했다. 2000년대 중반을 주름잡았던 걸그룹 모닝구무스메는 한때 원조교제 동거설 등이 불거져 나왔는데, 최근에는 K-pop 아이돌의 춤을 따라하며 노래연습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나마 비주얼 록그룹 밴드 ‘베르사이유(versailles)’ 등만이 유럽 진출에 성공해 간신히 체면을 유지하는 상황이다. 일본 만화나 애니메이션의 높은 인기를 등에 업고 애니메이션 주제가 등을 불러 인기를 얻는 수준이다. 비주얼 록이란 코스프레나 화장을 하고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유명한 X-Japan 등이 시조다.
J-pop 평론가 우가야 히로미치 씨는 “일본 음악업계는 일본이 미국에 이어 세계 제2위 음반 소비시장이라는 점에 안주해왔다”며 “그간 행보를 보면 해외 진출할 생각이 전혀 없었음을 알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일본 국내 활동으로도 큰돈을 벌 수 있는데, 뭣 하러 굳이 해외까지 나가느냔 인식이 있다는 업계 전반에 깔려있단 지적이다.
조승미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