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각 국민의힘의 ‘서진’ 민주당의 ‘동진’ 막을 필살기…경선 기간 남은 앙금이 등판 시기 변수
제2의 후단협(후보단일화협의회)은 없다. 대선판을 뒤엎는 게임 체인저의 등장도 불가능하다. 후보자질론을 둘러싼 공방은 있어도 후보교체론은 없다는 얘기다. 남은 것은 대선 플랜B로 거론됐던 후보의 합류 여부다.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홍준표 국민의당 의원이 그 대상이다. 이들의 합류는 이재명 민주당·윤석열 국민의당 대선 후보에게 천군만마다. 엎치락뒤치락하는 양강 주자의 판세를 흔들 다른 의미의 게임 체인저라는 뜻이다.
이낙연·홍준표 카드 키포인트는 ‘호남 역할론’과 ‘영남 구심점’이다. 여의도 안팎에선 “양강 후보 중 누가 먼저 이낙연·홍준표를 삼고초려할지가 연말·연초 판세의 분수령”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급한 쪽은 수세에 몰린 이재명 후보다. 대선 초반에서 중반으론 넘어가는 길목에서 꺼낸 카드는 영남권 공략. 그는 12월 9일부터 3박 4일간 TK(대구·경북) 구애에 나섰다. 진보 금기어인 박정희부터 전두환까지 공과를 논했다. 여의도에선 “영남 보수 흔들기에 나선 것”이라는 해석이 우세했다.
진보진영 대선 승리 방정식은 영남 표 잠식·비영남 표 독식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이 그랬다. 노 전 대통령과 문 대통령이 16대와 19대 대선 때 부산·울산·경남(PK)에서 얻은 득표율은 30% 안팎이었다. 두 전·현직 대통령 고향은 경남 김해와 거제다. 노 전 대통령은 당시 부산 29.9%, 울산 35.3%, 경남 27.1%를 기록했다. 문 대통령은 부산 38.1%, 울산 38.1%, 경남 36.7%를 얻었다. 여권 한 관계자는 “민주당 후보의 영남권 득표율이 상승하면, 보수 후보의 영남권 득표율은 (그 상승분의) 두 배나 빠지는 셈”이라고 말했다.
이 후보는 PK 후보였던 두 대통령과는 달리, TK(경북 안동) 출신이다. PK뿐 아니라 TK 보수 표심도 노릴 수 있다는 뜻이다. TBS 의뢰로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12월 10∼12일까지 조사한 결과(13일 공표, 이하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에 따르면 이 후보의 TK 지지도는 25.5%였다. PK 지지도는 36.3%에 달했다. 두 지역에서 윤 후보 지지도는 57.8%(TK), 45.9%(PK)로 나타났다.
18대 대선 때 박근혜 전 대통령 TK와 PK 득표율은 80.1%와 59.8%였다. ‘영남권 대세론’을 형성하기엔 윤 후보의 현 지지도가 낮은 셈이다. 특히 보수의 상징인 TK의 낮은 지지도는 뼈아프다. 국민의힘 한 관계자는 “보수 후보가 TK 민심을 얻지 못하고도 당선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했다. 보수진영 대선 플랜B인 홍준표 의원의 지역구는 대구 수성을이다. 홍 의원의 합류가 중요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반면 호남 표심은 윤 후보에게 유리하게 흘러가고 있다. 거의 모든 여론조사마다 두 자릿수 지지도를 기록해서다. TBS·KSOI 조사에서도 윤 후보는 호남에서 18.7%를 기록했다. 이 후보의 지지도는 62.0%였다. 이대로라면 박근혜 전 대통령이 18대 대선 때 호남에서 기록한 ‘10.5% 돌파’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 한 의원은 “윤 후보의 호남 득표율이 30%에 육박하면, 승리는 우리 편”이라고 했다. 윤 후보 호남 득표율 30%는 곧 이 후보의 호남 대세론이 실패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대일 구도였던 18대 대선에서 석패했던 문 대통령의 호남 득표율은 88.9%에 달했다. 현재와 마찬가지로 당시가 양강 구도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후보의 호남 지지도는 20%포인트 이상 낮다. 당 한 관계자는 “호남 지지도는 우리도 고민”이라고 했다. ‘홍준표 등판’이 이 후보의 TK 지지도 제어용이라면, ‘이낙연 등판’은 윤 후보의 호남 확장세를 꺾는 필살기인 셈이다.
최근 윤 후보가 호남 지지도 제고에 공을 들이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DJ(김대중 전 대통령)맨인 박주선 전 의원을 비롯해 호남에 뿌리를 둔 김동철 전 의원과 유종필 전 관악구청장 등을 껴안았다. 특히 이 과정에서 여당 복당이 유력했던 이용호 의원까지 영입했다. 민주당 조직강화특별위원회(조강특위) 한 관계자는 이 의원이 입당한 12월 7일 오전까지만 해도 “며칠 내로 정리될 것”이라고 긍정적인 신호를 보냈다. 하지만 이 의원의 최종 선택은 ‘국민의힘 선대위 합류’였다. 이를 위해 윤 후보가 직접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보수진영 한 관계자는 “호남 인사들을 얼굴 마담으로만 쓰지 않고 중직을 맡긴 게 핵심”이라고 했다. 박주선 전 의원은 동서화합미래위원회에서 활동한다. 김동철 전 의원과 유종필 전 구청장은 특별고문으로 임명했다. DJ 정부 개국공신인 김한길 전 의원은 선대위 산하 새시대준비위원회에 합류했다. 윤석열 후보는 여당 내 반이재명 그룹인 이낙연 전 대표와 정세균 전 국무총리 인사들도 접촉하고 있다. 당에선 “국민통합을 내건 윤 후보가 여야를 망라한 반이재명 그룹에 대한 규합에 나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로써 이낙연·홍준표 등판은 한층 중요해졌다. 관전 포인트는 이들의 등판 여부를 비롯해 구원투수 시점, 대선 역할론 등이다. 여권에선 이낙연 전 대표를 제외한 친노(친노무현)·친문(친문재인) 인사들에게 총동원령을 내렸다. 친노 좌장인 이해찬 전 대표를 비롯해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 등이 이재명 지원사격에 나선 것이다. 이들은 “(국민의힘 선대위는) 오합지졸이 아니고 오합지왕(이해찬)”, “이재명은 완성형이 아닌 생존형, 정치 생명이 위태로울 정도의 하자 없다(유시민)” 등의 스피커 역할을 하며 공중전에 뛰어들었다. 여기에 차기 서울시장 후보로 꼽히는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까지 이재명 선대위에 합류했다.
여의도 안팎의 시선은 이낙연 전 대표에게 쏠렸다. 이재명 원팀 선대위의 마지막 퍼즐이기 때문이다. 이낙연 전 대표 합류 여부가 ‘화학적 결합이냐, 분열이냐’를 가르는 중대 분수령이라는 뜻이다. 현재 여당 복수 의원들은 이낙연 합류를 위해 물밑에서 움직이고 있다. 수도권 재선 의원은 “연내 합류가 최상의 시나리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표는 이재명 선대위와 거리 두기를 하고 있다. 이낙연 조기 등판설이 나오자 일부 핵심 측근들이 격분했다는 이야기도 뒤를 이었다.
다만 이 전 대표 측근들과는 달리, 민주당 의원들은 이 후보와 이 전 대표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양측의 메신저를 맡은 의원들 사이에선 “이 전 대표의 두문불출이 깜짝 효과 극대화를 위한 게 아니겠느냐”는 말도 나온다. 가장 효과적인 등판 시점을 놓고 당 수뇌부와 이 전 대표가 조율하고 있다는 것이다. 친문 핵심 윤건영 민주당 의원은 이낙연 등판에 대해 “머지않았다”고 전망했다. 범주류 한 관계자도 “등판을 위한 몸풀기에 들어갔다”고 했다. 이미 당 내부에선 이낙연 호남 역할론이 제기된 상태다.
변수는 대선 경선 기간 남은 앙금이다. 특히 이 후보가 내년 3·9 재보궐 선거에 ‘민주당 무공천’ 방침을 언급한 이후 양측의 균열은 더 깊어졌다. 이 전 대표 지역구였던 ‘정치 1번지’서울 종로는 보궐선거 5곳(서초갑, 경기 안성, 대구 중·남구, 충북 청주상당) 가운데 최대 격전지로 꼽힌다. 이 전 대표는 민주당 대선 경선 기간, 국회의원직을 사퇴하면서 배수진을 쳤다. 경선 때 이 후보가 ‘책임정치’ 일환으로 무공천 방침을 시사하자 이낙연계 의원들은 일부 언론과 인터뷰에서 “(사퇴한) 이 전 대표의 진정성을 비하하는 행태”라고 날을 세웠다. 의원직을 사퇴한 이 전 대표는 현재도 민주당 서울 종로 지역위원장직을 유지하고 있다.
보수진영에선 ‘홍준표 등판’도 긍정적으로 본다. 대선 경선 이후 백의종군을 선언했던 홍 의원은 12월 15일 대구 선대위에 고문으로 합류했다. 그는 “백의종군과 마찬가지로 아무런 역할이 없다”고 확대 해석을 경계했지만 여의도 안팎에선 ‘홍준표 역할론’을 위한 고리를 만든 것이란 분석도 제기됐다. 앞서 홍 의원은 국민의힘 선대위 구성이 표류하던 12월 2일 서울 모처에서 윤 후보와 3시간 40분간 비공개 회동을 했다. 윤 후보와 홍 의원이 따로 독대한 것은 11월 5일 경선이 마무리된 지 27일 만이었다.
윤석열·홍준표 만찬 회동 직후 국민의힘 선대위 구성의 진도는 가팔라졌다.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은 12월 4월 윤 후보 요청에 화답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갈등도 해소됐다. 홍 의원은 직후 “(윤 후보가) 나를 이용해서 대선 캠프를 완성했다면 그 또한 훌륭한 책략”이라고 했다.
보수진영 한 관계자는 “적어도 대선판에 재를 뿌리는 일은 없다는 시그널이 아니겠느냐”며 “홍준표 역할론은 시작됐다”고 했다. 민주당 한 전략통도 “홍 의원이 막판 합류할 것으로 본다”고 했다. 하지만 김종인 위원장과 홍 의원이 악연인 만큼, 어느 정도의 활동 공간이 생길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홍 의원도 등판설에 대해 “배 떠났다”고 일축했다.
윤지상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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