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11월 13일 어머니는 아들 친구로부터 비보를 전해 듣고 급히 병원으로 달려갔다. 병실에 누워있는 아들의 모습은 참혹했다.
얼굴부터 발끝까지 온몸에 붕대가 감겨있고 간신히 숨만 내쉬고 있었다.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아들은 어머니를 불렀다.
"어머니 전 이제 곧 죽을 거예요. 저랑 약속해주세요. 그리고 꼭 지켜주세요."
죽는 순간까지 지켜달라던 약속은 무엇일까. 그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김영문(20), 이승철(22), 최종인(22). 세 친구는 평화시장의 재단사다. 그들의 꿈은 착실히 일해서 자기 가게를 차리는 것. 그런데 어느 날 한 친구를 만나면서 인생이 180도 달라진다.
바바리코트에 빵모자를 쓰고 옆구리엔 두꺼운 책을 끼고 다니던 그 친구는 그 시절 누구도 감히 말하기 힘들었던 이야기를 꺼내 들었다.
"우리가 평화시장을 한번 바꿔보자."
1970년 당시 초현대식 쇼핑몰이었던 평화시장. 그러나 건물 내부 400여 개 봉제공장의 작업환경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참혹했다.
1만여 명의 노동자가 일하는 공장건물에 환풍기가 단 하나도 없었고 '닭장'이라 불릴 만큼 비인간적 환경에서 일주일에 거의 100시간을 일하고 있었다.
전태일과 친구들은 노동청에 진정서를 내고 기자들을 만나 평화시장의 살인적인 노동환경을 고발했지만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그들이 택한 마지막 방법은 근로기준법 화형식으로 지키지도 않는 근로기준법 책을 불태우며 평화시장의 참혹한 노동실태를 세상에 알리자는 것이었다.
전태일 열사가 온몸으로 외친 '그날'에 대해 세 친구의 증언을 통해 들어보고 그날 이후 50년간 지켜온 '태일이와의 약속'에 대해 들려준다.
이민재 기자 ilyoo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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