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친구에게 “연말에 송년회 겸 동창끼리 모이는 건 나도 대찬성인데 나를 위해서 만난다는 게 무슨 의미니?”라고 물었다. 그러자 전화를 한 친구는 “요즘 언론에서 영화계가 어렵다고 다들 난리던데 너 안 어렵니?”라고 되물으며 의아해했다.
친구에게 “물론 영화계, 특히 극장 쪽 친구들은 많이 힘들지만 그래도 나는 드라마도 준비하고 그래서 그렇게 어렵지만은 않아. 견딜 만해”라고 답했다. 그러자 모임을 주도하는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야, 그냥 너 어려운 걸로 해. 그리고 우리가 어려운 너를 위로하고 응원하는 차원에서 고기 사줄 테니까 너는 그냥 와서 맘껏 고기 먹고 소주 마시고 그래. 너는 어려운 거고 우리는 친구로서 너를 응원하는 거야. 그리고 너 이번 모임은 무조건 나와야 해, 안 나오면 절대로 안 돼.”
친구는 이 말과 함께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고 한참을 웃었다. ‘이 자식들 별의 별 구실을 다 만들어서 모임의 의미를 정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가슴 한편에 참 고맙고 따뜻한 느낌이 들었다.
살다 보면 아무리 친한 사이여도 자주 연락하고 빈번히 만나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내 죽마고우들은 그저 내 안위가, 내 사업이 걱정됐나 보다. 게다가 방송이나 신문에서 영화산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보도를 접하고 내 친구들은 자연스럽게 나를 떠올리며 걱정했나 보다.
영화산업이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하니 친구인 나도 좋은 상황만은 아닐 것이라 판단하고 “올해 송년회는 우리 친구 원동연을 위로하고 응원하는 모임으로 하자”고 정한 것 같다.
징조가 있었다. 지난 추석 단 한 번도 개별선물을 보내지 않았던 친구모임에서 자그마한 추석선물을 보내왔다. 당연히 모든 친구들에게 보낸 것으로 알았는데 내가 다른 일정으로 참석하지 못했던 모임에서 친구들이 이번 추석에 나에게 조그마한 선물을 보내자고 결정한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그때도 똑같이 말했다.
“야, 나 살 만해. 어렵지 않아.”
하지만 그때도 친구들의 마음을 읽고 가슴이 짠했다. 연말이다. 무수히 많은 송년회와 모임이 예정돼 있었다. 그러나 코로나19 확산으로 아마도 대부분 모임은 2022년 신년회를 기약하며 취소되고 있을 것이다. 연말 특수를 기다리던 자영업자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착잡하기도 하다.
많은 모임이 취소되고 있지만 그래도 동창모임은 4인 이내에서 진행하려고 한다. 그냥 동창들이 날 응원하고 격려하며 소주잔을 부딪치면서 우정을 느끼고 싶다. 1년에 한두 번 만나는 모임이다. 술자리에서 내가 화제 중심이 되는 시간은 5분 안팎일 것이다. 나머지 시간은 대선 이야기로 채워질 것 같다. 그래도 그 친구들만은 만나고 싶다. 내가 지지하는 사람을 너무 싫어하는 친구가 내 멱살을 잡는데도 이 친구들은 만나고 싶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된 지 2년이 다 돼간다. 처음엔 팬데믹이 아무리 길어도 1년 안엔 끝날 줄 알았다. 그런데 2년이 다 돼가는 현재 우리는 가장 많은 확진자 수를 경험하고 있다. 어떤 전문가는 앞으로도 꽤 긴 시간 팬데믹 고통을 겪을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한다. 언제쯤 이 고통의 시간이 끝날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다.
정말 답답하고 안타깝고 고통스럽다. 이럴 때일수록 사람들이 서로를 응원하고 다독이며 살았으면 좋겠다. 그런 위로나 격려라도 없으면 너무 외롭고 힘들 것 같다. 다음주 친구들이 사주는 고기를 먹고 소주를 마실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말할 것이다.
“고맙다 이놈들아…. 너희들이 내 크리스마스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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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동연 영화제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