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첫 논란 이후 세 차례 공식입장 내며 “왜곡·미화는 허위사실” 반복만
21일 JTBC는 공식입장문을 내고 "'설강화' 방송 공개 이후 사실과 다른 내용을 바탕으로 논란이 식지 않고 있어 입장을 전해드린다"며 "'설강화'의 극중 배경과 주요 사건의 모티브는 군부정권 시절의 대선 정국이다. 이 배경에서 기득권 세력이 권력 유지를 위해 북한정권과 야합한다는 가상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설강화'는 권력자들에게 이용당하고 희생당했던 이들의 개인적인 서사를 보여주는 창작물"이라고 밝혔다.
이어 "'설강화'에는 민주화운동을 주도하는 간첩이 존재하지 않는다. 남녀 주인공이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거나 이끄는 설정은 지난 1, 2회에도 등장하지 않았고 이후 대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며 "현재 많은 분들이 지적해주신 '역사 왜곡'과 '민주화 운동 폄훼' 우려는 향후 드라마 전개 과정에서 오해의 대부분이 해소될 것"이라고 일축했다.
그러면서 "부당한 권력에 의해 개인의 자유와 행복이 억압받는 비정상적인 시대가 되풀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제작진의 의도가 담겨있다"며 "회차별 방송에 앞서 많은 줄거리를 밝힐 수 없는 것에 아쉬움이 남지만 앞으로의 전개를 지켜봐달라"고 덧붙였다.
JTBC 측은 방송 전 일시 폐쇄했던 포털사이트 실시간 대화창과 공식 시청자 게시판을 다시 공개하며 "다양한 목소리를 청취할 계획"이라고도 밝혔다. 그러면서 "JTBC가 핵심적으로 추구하는 가치는 콘텐츠 창작의 자유와 제작 독립성"이라고 강조하며 자신들에게 부정적인 여론을 저격하기도 했다.
JTBC의 입장은 처음 '설강화' 논란이 불거진 지난 3월, 두 차례에 걸쳐 낸 입장문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1차 입장문에서 JTBC 측은 "'설강화'는 민주화 운동을 폄훼하고 안기부와 간첩을 미화하는 드라마가 결코 아니다. 80년대 군사정권을 배경으로 남북 대치 상황에서의 대선정국을 풍자하는 블랙코미디이며 그 회오리 속에 희생되는 청춘남녀들의 멜로드라마"라며 "미완성 시놉시스의 일부가 온라인에 유출되면서 앞뒤 맥락없는 특정 문장을 토대로 각종 비난이 이어졌지만 이는 억측에 불과하다"고 해명했다. '남파 간첩이 민주화 운동을 주도한다' '학생운동을 선도했던 특정 인물을 캐릭터에 반영했다' '안기부를 미화한다' 등의 비판이 작품의 내용 및 제작의도와 전혀 무관하다는 것이었다.
이어 두 번째 입장문에서는 좀 더 구체적으로 반대 여론을 반박했다. '민주화 운동 폄훼 논란'에 대해서는 1차 입장문과 같은 말을 반복하면서 ""남녀 주인공이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거나 이끄는 설정은 대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80년대 군부정권 하에 간첩으로 몰려 부당하게 탄압받았던 캐릭터가 등장한다"며 "'설강화'의 극중 배경과 주요 사건의 모티브는 민주화운동이 아니라 1987년 대선 정국이다. 군부정권, 안기부 등 기득권 세력이 권력유지를 위해 북한 독재 정권과 야합해 음모를 벌인다는 가상의 이야기가 전개된다"고 해명했다.
이어 "이런 배경 하에 남파 공작원과 그를 쫓는 안기부 요원이 주요 캐릭터로 등장한다. 이들은 각각 속한 정부나 조직을 대변하는 인물이 아니다. 정권 재창출을 위한 부정한 권력욕, 이에 적극 호응하는 안기부에 대한 비판적 관점을 부각시키는 캐릭터들이므로 간첩활동이나 안기부가 미화된다는 지적도 '설강화'와 무관하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이 시간 이후부터는 미방영 드라마에 대한 허위사실을 기정사실인양 포장해 여론을 호도하는 행위를 자제해주시길 부탁드린다. 좋은 작품을 만들고자 하는 수많은 창작자들을 위축시키고 심각한 피해를 유발하는 행위라는 사실을 인지해주셨으면 한다"고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
1~2차 입장문과 3차 입장문에 이르기까지 JTBC의 입장은 전혀 달라진 바가 없지만 중간에 변수가 하나 생겼다. 작품 공개 후 '설강화'가 빌려온 시대적 배경의 희생자들이 직접 작품에 대한 우려를 밝힌 것이다. 그럼에도 JTBC는 3차 입장문에 이르러서도 이에 대해 전혀 고려하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며 단순히 대중들의 비판 여론이 자신들의 창작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는 점만을 강조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12월 20일 민주열사박종철기념사업회 이현주 사무국장은 MBC라디오 '표창원의 뉴스하이킥'과 가진 전화 인터뷰에서 '설강화'를 두고 "우려가 기우이길 바랐는데 역사적으로 너무 무책임하고, 너무나 명백한 왜곡 의도를 지닌 드라마"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 사무국장은 "드라마의 주요 키워드가 안기부, 간첩, 민주화운동 이렇게 세 가지인데 우리가 기억한 80년대 안기부는 민주화운동을 요구하는 사람들, 또 민주화 운동과 관련 없는 사람들도 잡아다가 고문을 통해 간첩으로 조작한 너무나도 공포스러운 기관"이라며 "이런 시대에 대한 기억이 너무나도 명백하고 여기에 대한 피해자들이 아직도 고통 속에 살고 있는데 이런 키워드로 드라마를 만든다는 것 자체가 역사적 고증, 진실을 바탕으로 하지 않는다면 또 다른 가해자의 편을 들어서 피해자들에 고통을 주는 그런 드라마로밖에 만들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굉장히 걱정이 컸다"고 짚었다.
민주화운동에 간첩이 섞여 있었다는 것은 당시 시대에서 안기부와 정권이 외치던 주요 레퍼토리이기도 했다. 이를 단순히 남녀주인공의 로맨스를 위한 장치로만 활용했다는 점에 대한 비판도 이어졌다. 이 사무국장은 "작중 간첩인 대동강1호(정해인 분)를 숨겨주는 여대 학생(지수 분)이 민주화운동에 참여하다 결국 군대에 끌려간 자신의 오빠를 간첩과 동일시 한다"며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는 자는 간첩'이라는 당시 국가기관과 안기부 주장은 옳았다는 정당성을 부여하는 구조"라고 꼬집었다. 실제로 '설강화' 공개 후 이 점을 지적하는 대중들에게 보수 성향의 네티즌들은 "민주화 운동을 이끈 이들 사이에 간첩이 숨어있었던 것이 역사적 사실"이라는 주장으로 맞불을 놓기도 했다.
또 '안기부 미화는 없다'는 JTBC의 주장과 달리, 작품 속 서브 남자주인공인 안기부 팀장이 간첩을 쫓는 과정에서 발생한 가까운 이의 희생을 겪으면서 그의 행동에 희생자로서의 정당성이 생겼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와 더불어 북풍 조작 사건을 다루며 정의를 추구하는 안기부 직원에 조명을 비추면서 '혼자서 진실을 꿰뚫고 정의를 구현하는 존재'이자 시대의 또 다른 희생자라는 새롭게 미화된 아이덴티티를 '설강화'가 부여했다는 것이다.
창작의 자유가 보장돼야 한다는 점에서는 이견이 없지만, '설강화'에 대해서는 일반 대중 뿐 아니라 그 시대의 한복판에 서 있었던 산증인들도 우려를 표하고 있다는 사실이 간과돼선 안 된다는 게 대중들의 지적이다. 이는 세 번에 걸쳐 입장문을 내면서도 앵무새처럼 "왜곡과 미화는 없었고 모든 것은 잘못 알려진 시놉시스에 허위사실이 덧붙여지면서 불거진 오해"라는 말만 반복할 뿐인 JTBC에게 집중 포화가 날아들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방송사 측은 "끝까지 가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만큼, 해외 독점 스트리밍을 담당하고 있는 디즈니플러스의 입장과 '방영 중단' 국민청원에 대한 청와대 측의 두 번째 답변에 대중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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