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원재료 해외 의존 해결 대안으로 꼽히지만 중국이 시장 선점, 물량·수익성 확보가 관건
#한국 배터리산업의 가장 큰 약점
글로벌 전기차 수요 증가로 인해 배터리 소재 가격이 출렁이고 있다. 한국광물자원공사에 따르면, 지난 12월 20일 기준 코발트 톤(t)당 가격은 전년 동기 대비 123.41% 오른 7만 195달러를 기록했다. 중국 동부 저장성의 공장들이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가동을 중단하면서 코발트 가격이 3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 이 밖에 니켈 톤당 가격은 40.47% 오른 1만 9370달러로 집계됐다. 킬로그램(kg)당 리튬 가격은 210위안(약 3만 9265원)으로 464% 급증했다.
소재 가격이 큰 폭으로 오른 가운데 공급망도 불안하다. 12월 16일 로이터통신 보도에 따르면, 세계 흑연 생산의 70%를 차지하는 중국 내부에서도 흑연 부족 현상이 심화될 것이라 내다봤다. 세계 1위 배터리업체 CATL도 흑연 공급에 사활을 걸었으나,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어내진 못한 상황이다. 중국이 2022년 베이징동계올림픽 개최 시기에 맞춰 대기의 질을 끌어올리기 위해 대기 오염물질 배출량이 큰 업종의 생산량을 줄이도록 지시하면서 흑연 공급이 더 어려워졌다는 것이 중국 전기차 기업 관계자의 전언이다.
이런 가운데 한국 배터리 산업에서도 ‘제2의 요소수 사태’가 벌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적지 않다. 배터리 정보업체인 벤치마크 미네랄 인텔리전스(BMI)는 2020년 세계 흑연 공급이 수요를 약 2만 톤 웃돌았지만, 2022년에는 수요가 공급을 약 2만 톤 초과할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 배터리산업의 중국산 흑연 의존도는 99%에 달한다. 흑연은 전기차 배터리의 음극재 원료고, 이를 대체할 물질은 거의 없다. 중국산 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무역 갈등이나 지정학적 요인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앞서 2021년 10월 중국이 전력난 등을 이유로 요소수 수출을 사실상 중단하면서 한국에선 요소수 품귀 사태를 겪은 바 있다.
실제 핵심 원재료를 해외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은 한국 배터리산업의 가장 큰 약점으로 꼽힌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4대 핵심소재의 해외 의존도는 평균 63.9%에 이른다. 배터리 원가의 절반을 차지하는 양극재의 경우 해외 의존도가 50% 수준이다. 반면 세계 배터리 시장을 두고 경쟁하고 있는 중국은 사정이 다르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중국은 전 세계 양극재 시장(57.8%)을 비롯해 음극재(66.4%), 분리막(54.6%), 전해질(71.7%) 등 배터리를 구성하는 4대 핵심소재에서 과반 이상의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이와 관련, 스콧 얄함 S&P 글로벌 플래츠 배터리 메탈 벤치마크 가격책정 책임자는 “중국, 유럽, 미국의 제조사들이 배터리 시장에 공격적으로 진입하고 있는 가운데, 한국이 끝까지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는 핵심 소재 공급망 안정화, 차세대 배터리 기술력 개발 등 수입 원자재 의존도를 낮추려는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2025년쯤 시장 활성화 전망
한국 배터리 기업들은 소재 공급망 리스크를 해소하기 위해 폐배터리 사업에 힘을 싣고 있다. 사업은 리튬·니켈·코발트 등 경제적 가치가 있는 금속을 폐배터리에서 추출하는 ‘재활용’과 폐배터리를 재정비해 에너지저장장치(ESS) 등 다른 용도로 활용하는 ‘재사용’으로 나뉜다. 최근 LG화학과 LG에너지솔루션은 북미 최대 배터리 리사이클 업체인 ‘라이-사이클’에 총 600억 원을 투자해 지분 2.6%를 확보했다. 2021년 10월 SK온은 한국산업기술시험원(KTL)과 협약을 맺고 ‘사용 후 배터리’ 성능을 검사하는 방법과 체계를 구축하기로 했다. 폐배터리를 활용한 ESS를 개발해 건설현장에서 적용할 수 있도록 규제 샌드박스 실증 특례를 신청하기도 했다.
삼성SDI는 폐배터리 재활용 전문기업 피엠그로우에 지분 투자를 했고, 폐배터리 재활용 선두 기업으로 평가받는 성일하이텍과도 협업을 진행하고 있다. 2021년 7월 성일하이텍은 헝가리에 유럽 최대 규모의 전기차 폐배터리 재활용 공장을 완공했다. 중국 화유코발트와 함께 세운 포스코HY클린메탈은 폐배터리에서 리튬을 추출하는 등 리튬 생산량을 2025년 연 11만 톤, 2030년까지 연 22만 톤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대자동차는 올해 초부터 울산공장에서 폐배터리를 재사용한 ESS와 태양광 발전을 연계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다만 이미 중국에서 폐배터리 시장을 선점하고 있는 데다 곧바로 수익성을 기대하긴 어렵다. 노무라종합연구소에 따르면, 중국 폐배터리 업계는 지난해부터 수익을 내기 시작했다. 규모의 경제를 시현하는 동시에 낮은 인건·운송비 등으로 비용을 낮춘 효과라고 연구소 측은 분석했다.
반면 유럽은 아직 수익성을 확보하지 못했다. 지난해 1kWh의 배터리를 재활용할 때마다 약 20달러의 손실을 봤다. 현대차를 비롯해 LG에너지솔루션, SK이노베이션, 삼성SDI 등도 아직 수익성을 확보하진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8년 기준 리튬이온배터리 재활용 시장에서 중국의 비중은 69%였다. 한국이 19%, 미국과 유럽, 일본 등이 나머지를 차지했다.
해외 폐배터리 물량을 소화하기도 쉽지 않다. 폐배터리는 위험 물질을 다량 함유하고 있고, 높은 전압 때문에 감전이나 화재·폭발 가능성이 크다. 특히 전기차 폐배터리는 폭발 등의 우려로 해상운송안전규칙과 해상운송보완규칙 등에 따라 재처리 없이 해상운송을 할 수 없어 완전 분해 후 절연 소재 상자에 넣어 운송을 해야 한다. 해체 작업비가 추가로 투입되고 운송비가 높을 수밖에 없다. 실례로 제주도는 폐배터리 처리비용으로 골치를 앓고 있다. 폐배터리 1개 운송비만 138만 원, 2만 1000개의 도외처리를 위한 운송비만 290억 원 소요되기 때문이다.
민간 기업의 국내 시장 폐배터리 물량 확보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환경부는 지자체가 폐배터리를 책임지고 매각하도록 하는 ‘전기자동차 배터리 반납에 관한 고시’ 개정안을 2022년 1월 1일부터 적용할 계획이다. 이에 따르면 현재 전국 4개 권역에서 시범 운영 중인 ‘전기차 폐배터리 회수·재활용 거점센터’를 민간 매각이 허용되는 2022년 1월부터 정식 운영할 방침이다. 지자체는 공개 경쟁입찰을 통해 폐배터리를 폐기물 재활용업자 등에 판매하게 된다. 사실상 정부 주도의 공공유통체계를 구축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와 관련, 배터리업계 관계자는 “리사이클 전문업체와 국내 사업장 폐배터리 리사이클링 협력을 진행하고 있지만, 아직 폐배터리 시장이 열렸다고 보긴 어렵다”며 “현재는 2025년쯤부터 폐배터리 시장이 활성화될 것에 대비하는 단계고, 국내에서도 관련 생태계가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향후 사업 미래에 대해서 언급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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