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속작 ‘공산당 미화 의혹’ 촬영 중단 “‘설강화’ 강행 불가피” 관측…디즈니+ 업고 해외 시청자 노려
#대중들은 왜 분노하나
드라마 ‘설강화’를 향한 대중들의 분노는 고작 방영 1, 2회 만에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다. 이미 2020년 연말부터 2021년 초까지 tvN ‘철인왕후’와 SBS ‘조선구마사’ 사태로 쌓여있던 분노가, 그 사태 이후에도 변하지 않는 한국 방송 제작사들을 향해 폭발한 것이다. 원작 중국 웹소설의 작가가 혐한 성향을 대놓고 드러내고 있음에도 굳이 해당 작품을 수입한 뒤 자국 역사와 실존인물을 적극적으로 왜곡·희화화하는 데 앞장서거나, 왜곡을 넘어선 ‘선택적 판타지’를 내세워 창작의 자유를 주장하던 일의 반복이 결국 대중들의 수용치를 넘어섰던 셈이다.
‘설강화’는 이미 제작 전부터 우려가 이어졌던 작품이다. 1980년대 서슬 퍼런 군사정권 감시 하에서도 민주화를 향한 목소리가 높았던 시기, 남파공작원인 남주인공과 대학 신입생인 여주인공 간의 러브스토리가 ‘설강화’ 이야기의 큰 줄기를 이룬다. 여기서 남주인공이 자신을 쫓는 안기부 요원들을 피해 도주하던 중, 여주인공이 그를 운동권 학생으로 착각해 도와주는 것이 비판의 화두에 올랐다. ‘대학 내 민주화운동 진영에 간첩이 섞여 들어가 있었다’는 것은 당시 정부와 안기부가 외치던 주요 조작 레퍼토리다. 게다가 실제 조작의 피해자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단순히 남녀주인공의 로맨스를 위한 장치로 사용했다는 지적이다.
안기부 요원에 대해 입체적인 측면을 부여한다는 이유로 서브 남자주인공인 안기부 팀장에 대해 시대의 또 다른 희생자이자 자신만의 정의를 구현한다는 새롭게 미화된 아이덴티티를 부여했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영화 ‘군함도’가 ‘좋은 조선인, 나쁜 일본인’의 이분법적 시각에서 벗어나 ‘나쁜 조선인’을 집어넣어 ‘나쁜 일본인’의 존재감을 희석한 것처럼, ‘좋은 안기부’라는 완충재를 통해 안기부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불식하는 식이다. 단순히 선악의 고정역할 탈피라는 시도 자체를 떠나 ‘좋은 안기부’의 가해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스토리 역시 시대의 피해자들에겐 “허울만 좋은 왜곡”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왔다.
#깊은 성찰·연구는 ‘없었다’
‘설강화’는 2020년 6월 시나리오가 유출되면서 사실상 최근 논란이 됐던 역사 왜곡 드라마 가운데 가장 먼저 갑론을박이 벌어진 작품이기도 하다. 당시 가제는 ‘이대기숙사’로 시놉시스는 현재 공개된 ‘1980년대 남파 간첩과 여대생의 사랑 이야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짧게 유출된 내용만으로도 후일 방영 시 논란이 있을 것을 간파한 다양한 배우 팬덤은 “제발 우리 배우가 이 작품을 맡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우려의 글을 올리기도 했다. 배우 팬덤끼리 분쟁이 벌어질 때 “너희 배우 차기작 ‘이대기숙사’(설강화)”라는 말을 던지는 것이 모욕이 될 정도였다.
최초 논란이 불거진 뒤부터 7월에 촬영을 마칠 때까지 ‘설강화’ 제작진이 적극적으로 수정한 부분은 여주인공의 이름뿐이었다. 초기 공개된 작품 속 그의 이름은 ‘은영초’였는데, 영초라는 이름은 민주화운동 시기 운동권으로 활약했던 ‘영초언니’, 즉 천영초 씨의 이름을 딴 것으로 파악됐다. 그의 남편 역시 민주투사였으나 1974년 민청학련 사건에서 간첩 혐의를 뒤집어쓰고 모진 고문을 받은 뒤 이후 영양실조로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여주인공의 이름을 실존하는 민주화 운동가의 이름에서 딴 뒤 그의 상대역으로 간첩을 붙였다는 것을 두고 “제작 의도가 불순하다”는 지적이 일었다. 영초라는 이름이 2021년 기준으로도 남녀불문 매우 특이한 이름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우연히’ 민주화운동 시기를 배경으로 한 작품에 그 이름을 딴 여성 캐릭터를 만든다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에 JTBC 측은 “천영초 선생님과 무관하나 선생님을 연상케 한다는 지적이 나온 만큼 수정하겠다”며 여주인공의 이름을 ‘은영로’로 수정했다. 그 외의 것은 단순히 “허위사실을 기정사실인 양 포장해 여론을 호도하는 행위”였던 만큼 구체적인 반박이나 해명 없이 “향후 드라마 전개 과정에서 오해의 대부분이 해소될 것”이라는 단순한 입장문으로 종결했다. 12월 21일 공개한 이 세 번째 입장문에는 그 직전 민주화운동 관련 단체들이 비친 직접적인 우려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아 “제작진의 ‘뚝심 있는’ 불통을 그대로 보여줬다”는 비판이 일기도 했다.
#버틸 수밖에 없는 상황?
JTBC 측은 세 번째 입장문을 냄과 동시에 1, 2화 방영 당시 막아뒀던 네이버 ‘실시간톡’과 공식 홈페이지의 시청 소감 게시판을 다시 열었다. 33만 명을 넘어 정부의 답변을 기다리고 있는 방영중단 청와대 국민청원과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쏟아진 700여 건의 민원에 대해서도 ‘일단 작품을 보면 모두 해소될 문제’라는 것이 JTBC의 입장이다.
청와대 국민청원부터 방심위 민원, 그리고 협찬·제작지원사의 철회에 이르기까지 SBS ‘조선구마사’ 사태와 판박이임에도 정면돌파에 나선 JTBC에 대해 업계 관계자들은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짚었다. 작품에 대한 자신으로 강행을 선택했다기보다는 물러설 곳이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분석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드라마 제작사 관계자는 “JTBC의 경우 ‘설강화’의 후속작인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도 원작의 공산당 미화 논란이 불거지면서 현재 촬영이 잠정 중단된 상태다. 올 한 해 드라마로 큰 재미를 보지 못한 상황에서 두 작품이 연이어 위기를 맞았기 때문에 대중들의 반응과는 상관없이 그냥 강행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JTBC의 배수진과 맞물려 ‘설강화’를 독점 스트리밍 중인 디즈니 플러스(+) 측은 이 상황을 관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디즈니 본사와 디즈니+ 양측에 ‘설강화’ 방영 중단을 촉구하는 이들의 항의 이메일이 빗발치고 있지만 ‘설강화’는 홍콩, 일본, 싱가포르, 한국, 대만 등 5개 국가 및 지역에서 시청 상위권을 점유하고 있다. 특히 해외 시청자들의 유입이 중요한 디즈니+로서는 JTBC가 모든 집중 포화를 맞고 있는 상황에서 굳이 나서서 스트리밍을 중단할 이유가 전혀 없는 입장인 것이다.
이에 대해 앞선 관계자는 “최근 국내외 OTT 플랫폼 가운데 디즈니+는 유독 ‘킬러 콘텐츠’가 없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자막 문제도 그렇지만 애니메이션이나 마블 스튜디오 작품을 제외하면 볼 게 없다는 게 국내 시청자들 사이에서도 지배적인 시각이었다”라며 “그런 가운데 해외에도 강력한 팬덤이 있어 신규 유입률을 높일 수 있는 블랙핑크의 지수를 앞세운 ‘설강화’가 그럭저럭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 그런 만큼 디즈니+에 국내 대중들의 항의는 큰 영향을 주지 못할 것”이라고 짚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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