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중 다섯 스토킹·이별 범죄…‘우범자’ 권재찬 ‘전조증상’ 김병찬·이석준 등 경찰이 빌미 제공 논란도
2021년 반드시 기억해야 할 이름들이다. 이름·얼굴·나이 등 신상정보 공개된 피의자의 수가 2021년 처음으로 두 자릿수인 10명을 기록했다. 역대 최다다. 2016년 5명(5건), 2017년 3명(2건), 2018년 3명(3건), 2019년 5명(5건), 2020년 8명(8건)으로 증가해온 추세가 2021년엔 10명(9건)에 이르렀다. 2021년에는 스토킹 살인, 교제 살인, 보복 살인 등 약자를 대상으로 한 강력범죄가 많았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2021년 첫 번째 신상정보가 공개된 피의자는 김태현으로 노원구에서 세 모녀를 살해했다. 온라인 게임에서 만난 피해자를 스토킹하다 3월 23일 피해자의 집으로 찾아가 피해자의 여동생과 어머니, 그리고 피해자까지 일가족을 차례로 죽이는 참극을 저질렀다.
검찰은 김태현에게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구형했지만 10월 12일 서울북부지법 형사13부는 살인·절도·특수주거침입 등 5개 혐의로 구속 기소된 김태현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이에 검찰과 김태현 측이 모두 항소하면서 서울고등법원 형사6-3부에서 2심이 진행 중인데 검찰은 이번에도 사형을 구형했다. 2심 선고는 2022년 1월 19일 오후 2시 30분에 열릴 예정이다.
5월에는 인천의 한 노래주점에서 손님을 살해하고 유기한 허민우의 신상정보가 공개됐다. 4월 22일 새벽 2시쯤 허민우는 자신이 운영하는 인천시 중구 신포동 소재의 노래방에서 손님으로 온 피해자를 살해했다. 이후 피해자의 신원이 확인되는 것을 피하려 지문을 훼손하고 머리를 돌로 내려치기는 등 시신을 훼손해 부평구 철마산 중턱에 유기했다.
1심 재판에서 인천지법은 살인과 사체훼손, 유기 등 혐의로 구속 기소된 허민우에게 징역 30년을 선고하고 벌금 300만 원과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 10년 부착을 명령했다. 허민우와 검찰이 모두 항소하면서 항소심 공판은 서울고법에서 열렸다. 12월 23일 열린 2심 선고공판에서 서울고법 형사13부는 징역 1심과 같은 징역 30년에 벌금 300만 원을 선고하고 위치추적 전자장치 10년 부착을 명령했다.
매년 5명 이하이던 피의자 신상정보 공개가 2020년 8명으로 늘어난 결정적 계기는 텔레그램 박사방 및 n번방 사건이었다. 조주빈을 비롯해 모두 6명의 신상정보가 2020년에 공개됐다. 이런 흐름은 2021년에도 이어졌다. 이번에는 ‘남자 n번방’ 사건이다.
6월 9일 김영준의 신상정보가 공개됐는데 그는 소개팅 애플리케이션 등에 여성 사진을 게시한 뒤 이를 보고 연락해 온 남성들에게 여성으로 가장해 영상통화를 하며 ‘몸캠’ 영상을 녹화해 유포 및 판매했다. 피해자가 1000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11월 29일에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9부 심리로 열린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징역 15년형을 구형했고 선고공판은 2022년 1월 14일에 열릴 예정이다.
6월 23에는 미성년자 성 착취물 6954개를 제작해 유포한 최찬욱의 신상이 공개됐다. 최찬욱은 2016년 5월부터 2021년 4월까지 SNS(소셜미디어)를 통해 알게 된 피해자들의 성 착취물을 제작했다. 피해자 대부분이 만 11~만 13세 남자 아이들이다. 또한 피해 아동 14명의 영상을 SNS를 통해 유포했고, 초등학생 2명을 5회에 걸쳐 유사 강간하고 또 다른 초등학생 1명은 강제 추행했다.
12월 23일 열린 1심 선고공판에서 대전지법 제11형사부는 징역 12년을 선고했다. 검찰은 징역 15년을 구형했다. 또한 위치추적 전자장치 10년 부착, 신상정보 공개·고지 10년,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 등 취업제한 10년도 명령했다.
7월에는 백광석과 김시남의 신상정보가 공개됐다. 이들은 7월 18일 오후 3시경 백 씨와 사실혼 관계였다가 별거 중인 여성의 자택에 침입해 여성의 중학생 아들을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사실혼 관계이던 이들은 5월부터 별거에 들어갔지만 백 씨가 수시로 여성의 집을 찾아가 ‘너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빼앗겠다’ 등의 협박을 지속했고 결국 여성의 아들을 살해했다.
12월 9일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는 백광석과 김시남에게 각각 징역 30년, 27년을 선고했다. 백광석과 김시남에게 사형을 구형했던 검찰이 바로 항소했고 백광석과 김시남도 항소해 곧 2심 재판이 이어진다.
9월 2일에는 강윤성의 신상정보가 공개됐다. 8월 26일 저녁 9시 30분쯤 자신의 집에서 40대 여성을 살해한 뒤 27일 오후 전자발찌를 끊고 도주한 강윤성은 29일 새벽 3시쯤 50대 여성을 또 살해했다. 첫 피해자인 40대 여성에게 돈을 빌려 두 번째 피해자인 50대 여성에게 빌린 돈을 갚으려 했지만 40대 여성은 돈을 빌려주지 않아서, 50대 여성은 빚을 갚으라고 독촉해 살해한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첫 살인과 두 번째 살인 사이에 또 다른 여성에게도 연락을 취해 만나서 돈을 빼앗으려 했지만 다행히 이들의 만남이 이뤄지지 않았다.
강윤성은 성폭행과 강도 등 전과 14범으로 징역 15년을 받고 복역하다 5월에 가출소했다. 그런데 불과 4개월여 만인 8월에 두 여성을 살해했다. 강윤성의 1심 재판은 서울동부지법 형사합의12부에서 진행 중인데 12월 2일 재판부가 국민참여재판 신청을 받아들였다.
11월 24일에는 김병찬의 신상정보가 공개됐다. 김병찬은 11월 19일 오전 11시 30분쯤 서울 중구 소재의 한 오피스텔에 거주 중인 30대 전 여자친구를 찾아가 흉기로 찔러 살해했다.
전형적인 스토킹 살해 사건으로 김병찬은 피해 여성을 1년 동안 스토킹하며 집과 차량에 10여 차례 침입했으며 폭행도 일삼았다. 피해자는 부산에 살던 2020년 12월 김병찬을 주거침입 혐의로 경찰에 신고했으며 2021년 1월 서울로 이사 온 뒤 6월부터는 다섯 차례나 경찰에 스토킹 범죄를 신고했다. 5번의 신고 가운데 4번이 10월 7일부터 살인이 벌어진 11월 19일 사이에 집중적으로 이뤄졌지만 경찰은 피해자를 보호하지 못했다.
11월 9일 법원이 ‘100m 이내 접근 금지’ ‘정보통신을 이용한 접근 금지’ ‘스토킹 중단 경고’ 등의 잠정조치를 내렸지만 이는 오히려 열흘 뒤인 11월 19일 김병찬이 보복 목적으로 살인을 저지르는 동기가 되고 말았다. 법원의 잠정조치가 피해자를 보호하기는커녕 더 위험에 몰아넣고 말았다.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는 12월 16일 김병찬을 특정범죄가중처벌법(특가법)상 보복살인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특가법상 보복살인죄의 형량은 사형,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으로 살인죄(5년 이상 징역)보다 무겁다.
12월 9일에는 권재찬의 신상정보가 공개됐는데 그는 인천에서 중년 여성의 금품을 빼앗은 뒤 살해했으며 공범과 함께 시신을 유기한 뒤 공범까지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권재찬은 12월 4일 인천시 미추홀구 소재의 한 건물에서 50대 여성을 살해한 뒤 피해자의 카드로 수백만 원의 현금을 인출했다. 피해자의 시신은 이후 인천 미추홀구 인하대역 인근 주차장에 주차된 권재찬의 차량 트렁크에서 발견됐다.
권재찬은 50대 여성을 살해한 뒤 “시신이 부패할 수 있으니 야산에 땅을 파러 가자”며 40대 남성을 을왕리 인근 야산으로 유인해 살해했다. 이 남성은 50대 여성 살인에는 가담하지 않았지만 시신유기를 도운 공범이었다.
경찰 조사 과정에서 권재찬은 두 건의 살인이 모두 말다툼을 하다 우발적으로 벌어졌다고 주장했지만 경찰은 권재찬이 50대 여성을 살해하기 전에 미리 신용카드 비밀번호를 알아낸 점 등을 토대로 금품을 노린 계획 범행으로 보고 있다. 인천 미추홀경찰서는 12월 8일 권재찬을 강도살인과 사체유기 등의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피해자와 연락이 끊기면서 피해자의 딸은 실종 신고를 하고 경찰에 권재찬이 의심된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에 경찰은 권재찬과 직접 통화를 해서 피해자와 만난 일이 있느냐고 물었고 경찰 수사가 시작된 것을 파악한 권재찬은 바로 다음날 공범인 40대 남성을 살해하고 도주를 시도했다. JTBC 인터뷰에서 피해자의 유족은 경찰이 사전 정보도 없이 전화를 걸어 수사 상황을 알려준 셈이라고 밝혔다.
권재찬은 1992년 강도상해로 징역 6년, 1998년 특수강도 강간죄로 징역 5년을 선고받은 바 있다. 2003년에도 강도살인, 밀항단속법 위반 등 5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지만 항소심에서 감형돼 징역 15년을 복역한 뒤 2018년 3월 출소했다. 그리고 3년 만에 살인범이 됐다. 그런데 피해자의 실종신고가 들어와 수사를 시작해 권재찬이 용의선상에 올랐음에도 경찰은 그가 강도살인으로 징역 15년을 복역했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권재찬은 경찰청 예규에 따라 심사위원회 의결을 거쳐 ‘우범자’로 지정돼 2023년 3월까지 재범 우려가 있는 고위험자로 분류됐었다. 경찰은 우범자의 경우 3개월에 한 번씩 주소지 등의 정보를 수집해 왔는데 2021년 1월 강력범죄 출소자 정보수집 기간을 5년에서 2년으로 줄이면서 권재찬의 정보수집 기간도 2020년 2월 종료됐다. 이번에도 경찰은 피해자를 막지 못했고 추가 범행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지적까지 받고 있다.
12월 14일에는 이석준의 신상정보가 공개됐다. 이석준은 12월 10일 오후 2시 30분쯤 전 여자친구가 거주 중인 서울 송파구 소재의 한 빌라에 찾아가 전 여자친구의 어머니와 남동생에게 흉기를 휘둘러 전 여자친구의 어머니는 사망했고 동생은 중태에 빠졌다.
전 여자친구의 아버지는 12월 6일 딸이 감금돼 있는 것 같다고 신고를 했고 결국 대구에서 함께 발견됐다. 그렇지만 경찰은 이석준의 신병을 확보하지 않고 그냥 귀가 시키고 전 여자친구만 경찰 신변보호 대상으로 분류해 스마트워치를 지급했다. 그리고 불과 4일 뒤 이석준이 전 여자친구의 가족을 상대로 참혹한 범죄를 저질렀다. 경찰은 당시 이석준이 긴급체포의 요건에 해당되지 않았다고 밝혔지만 이번에도 피해자를 제대로 보호하지 못했다.
피해자는 이석준이 자신을 성폭행하고 휴대전화로 몰래 촬영까지 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이석준이 동의하에 성관계를 가졌다고 진술하자 대구 수성경찰서는 휴대전화를 육안으로 살펴본 뒤 디지털 포렌식하기 위해 휴대전화를 임의제출 받기만 했다.
이석준이 송파구 소재의 전 여자친구 집 주소를 알기 위해 흥신소를 활용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흥신소 관계자도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됐다. 서울 송파경찰서는 12월 17일 오전 이석준을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보복살인, 형법상 살인 미수, 살인 예비, 감금, 재물손괴 등 총 7개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2021년 신상정보가 공개된 10명의 피의자를 보면 이 가운데 5명(김태현 김병찬 이석준 백광석 김시남)은 스토킹 및 교제 살인 사건이었고, 2명(강윤성 권재찬)은 금품 관련 살인 사건이었다. 또한 2명(김영준 최찬욱)은 ‘남자 n번방’ 사건이었으며 1명(허민우)은 손님과의 다툼이 발단이 된 살인 사건이다. 스토킹 및 교제 살인 사건이 전체의 절반이고 금품 관련 살인 사건까지 포함하면 여성 등 약자를 대상으로 한 살인사건 피의자가 7명이나 된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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