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기소했던 윤석열 후보에 수감 내내 원망 ‘보수층 결집 악영향’…여권, 내부 비판론 나와 내홍 불씨 될 수도
12월 24일 정부는 2022년 신년을 앞두고 12월 31일자로 3094명에 대한 특별사면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날 명단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포함돼 눈길을 끌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7년 3월 31일 국정농단 사건으로 구속돼, 약 4년 9개월간 수감 중이다. 전직 대통령 중 가장 오랜 기간이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농단과 국가정보원 특활비 상납,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공천 개입 등의 혐의로 징역 22년이 확정됐다. 사면이나 가석방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87세가 되는 오는 2039년에 만기 출소가 가능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임기 동안 정치인 사면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견지해왔다. 지난 12월 20일과 21일 진행된 법무부 사면심사위원회 전체회의에서도 박 전 대통령은 사면 대상자 포함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은 어깨 질환과 허리디스크 등 기존 지병 외에도 최근 치과와 정신건강의학과 등의 치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1월 22일부터 삼성서울병원에 입원했다. 특히 박 전 대통령은 음식물을 씹지 못할 정도로 치아 상태가 나빠졌으며, 극심한 스트레스로 정신적인 불안 증세를 보이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처럼 박 전 대통령의 건강 상태가 급격히 악화됐다는 소식을 보고 받고 문 대통령이 자체적으로 결단을 내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은 12월 24일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 브리핑을 통해 “우리는 지난 시대의 아픔을 딛고 새 시대로 나아가야 한다”며 “이번 사면이 생각의 차이나 찬반을 넘어 통합과 화합, 새 시대 개막의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또한 “박 전 대통령의 경우 5년 가까이 복역한 탓에 건강상태가 많이 나빠진 점도 고려했다”며 “사면에 반대하는 분들의 넓은 이해와 혜량을 부탁드린다”고 덧붙였다.
이번 박 전 대통령 특사 결정이 차기 대선에 어떤 파장을 미칠지 정치권은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다. 각 당 대선 후보들도 입장을 내놨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문재인 대통령의 국민통합에 대한 고뇌를 이해하고, 어려운 결정을 존중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금이라도 국정농단 피해자인 국민들께 박 전 대통령의 진심어린 사죄가 필요하다”며 “현실의 법정은 닫혀도, 역사의 법정은 계속됨을 기억하시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우리 박 전 대통령의 사면이 늦었지만 환영한다”며 “건강이 안 좋으시다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빨리 건강을 회복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윤 후보가 서울중앙지검장 재직 당시 박 전 대통령의 형집행정지를 불허한 것에 대해서는 “제가 불허한 것이 아니고 형집행정지위원회에서 결정을 했고, 검사장은 법에 따라 그것에 따라야 한다”며 “전문가와 의사들이 형집행정지 사유가 안 된다고 해서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치권은 윤석열 후보가 후폭풍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다고 점친다. 윤석열 후보는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당시 박영수 특검팀에서 수사팀장을 맡아 수사를 진두지휘, 박근혜 전 대통령을 구속기소한 바 있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문재인 정부에서 서울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에까지 오르며 승승장구했다.
박 전 대통령이 직간접적으로 윤 후보에 불편한 심경을 내비칠 경우 전통적 보수층 표 결집에 균열이 생길 수 있다는 전망이다. 박 전 대통령 사정을 잘 아는 정치권 한 관계자는 “박근혜 전 대통령은 구속 수감된 내내 윤석열 후보에 대한 원망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사면을 받았다고 윤 후보를 용서하리라고 보기 힘들다”며 “윤 후보 입장에서는 박 전 대통령 사면이 그리 달갑지는 않은 상황일 것”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정권교체가 달린 대선정국에서 박 전 대통령이 정치적 행보를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박 전 대통령은 입원 중인 삼성서울병원에서 출소 절차를 밟고, 당분간은 입원 상태를 유지하며 치료에 전념할 것으로 보인다. 당분간 외부인 접촉이 쉽지 않은 만큼 침묵을 지키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럼에도 메시지를 내지 않는 모습 자체가 윤석열 후보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 야권의 또 다른 관계자는 “때로는 백 마디 말보다 침묵이 더 많은 것을 내포하는 법이다. 정치권에서 요청이 와도 박 전 대통령은 ‘저는 할 말이 없다. 잘하시리라 믿는다’ 등 원론적 입장만을 낼 것으로 보인다. 그런 답변이 윤석열 후보의 보수 지지층 결집에 좋은 영향을 주겠느냐”고 반문했다.
민주당은 ‘사면은 대통령 고유의 권한’이라면서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정가에선 진보진영 및 중도층 일부의 이탈 가능성도 점친다.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는 박 전 대통령 사면에 대해 “강력히 유감을 표한다”면서 “적어도 촛불로 당선된 대통령이 사면권을 행사해서는 결코 안 될 사안”이라며 문 대통령을 비판했다. 실제 민주당 지지자들 중에서도 이번 사면을 둘러싸고 공방이 뜨거운 모습이다.
민주당이 사면에 대해 “사전에 몰랐다”면서 선을 긋고 나선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민주당은 송영길 대표와 이철희 정무수석이 사면을 놓고 논의했다는 보도에 대해서도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당내에서도 사면에 대한 비판이 흘러나왔다. 민주당 선대위 총괄특보단장인 안민석 민주당 의원은 “역사적으로 잘못된 결정이 될 것”이라면서 “국민적 동의와 반성이라는 전제가 곧 충족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이는 ‘박근혜 사면’을 놓고 민주당 내홍이 벌어질 수도 있음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한편 이번 발표에는 한명숙 전 국무총리 복권도 포함됐다. 한 전 총리는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지난 2015년 대법원에서 징역 2년과 추징금 8억 8300여만 원이 확정된 뒤 2017년 만기출소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사면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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