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신문이 창간한 1992년 당시 번듯한 대기업이었지만 현재 이름은 물론 존재조차 희미해진 기업이 있다. 1997년 IMF 외환위기라는 전대미문의 큰 파고가 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회사가 공중에서 해체돼도 특별한 일이 아니던 시절, 그곳에 묵묵하게 생업을 이어가던 임직원들이 있었다. 그들은 새로운 오너를 맞아 새로운 질서에 적응하거나 구조조정 등으로 직장을 떠나야만 했다.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대기업 임직원에서 하루 아침에 절벽 위에 선 셈이다. 불운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모두가 꺾이지는 않았다. 그 와중에서도 능력을 인정 받아 최고경영자(CEO)까지 오른 이들이 있다.[일요신문] 김신 SK증권 사장은 불운을 딛고 CEO로 성장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쌍용그룹 출신의 김 사장은 쌍용그룹 붕괴 후 몇 차례 새로운 오너를 맞이했다. 오너가 바뀐다는 것은 위기이자 기회다. 김 사장은 기회를 살렸다. 현재는 증권가 장수 CEO 반열에 올랐다. 김 사장은 영업력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으며 소통과 인간관계를 중요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1963년생인 김신 사장은 전주 해성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한 후 1987년 쌍용투자증권에 입사했다. 쌍용투자증권의 전신은 효성그룹이 1973년 설립한 효성증권이다. 쌍용그룹은 1983년 효성증권을 인수해 사명을 쌍용투자증권으로 바꿨고, 1986년에는 기업공개(IPO·상장)를 진행했다.
1997년 IMF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쌍용그룹은 쌍용자동차 등 주요 계열사를 매각했다. 쌍용투자증권 역시 1998년 미국 투자회사 H&Q에 매각됐고, 매각 후 굿모닝증권으로 사명이 변경됐다. 2002년에는 신한금융그룹이 굿모닝증권을 인수해 신한증권과 합병시킨 법인 굿모닝신한증권이 탄생했고, 2009년 현재의 신한금융투자로 사명을 변경했다.
김신 사장은 신한금융으로 회사 경영권이 넘어간 후에도 채권영업팀장 등을 역임하면서 직장생활을 이어갔다. 김 사장은 1999년부터 채권 영업을 시작한 채권 브로커 1세대로 불린다. 당시만 해도 증권가에서 채권 영업을 전담하는 직원이 많지 않았지만 2000년대 접어들면서 ELS(주가연계증권) 판매가 늘어나 채권 전문가의 몸값도 상승했다. ELS는 특정 주권의 가격이나 주가지수 수치에 연계한 증권이다. 통상적으로 투자금 대부분을 우량채권에 투자하고, 일부를 파생상품에 투자한다.
김신 사장은 도전에 나선다. 2004년 당시 사세를 확장하고 있던 미래에셋증권으로 이직해 장외파생운용팀장, 장외파생본부장, 전략기획본부장, 경영서비스부문장 등을 지냈다. 2000년대 중반 미래에셋증권 ELS 관련 언론보도에서 김신 사장의 이름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능력을 인정받은 김 사장은 2010년 5월 미래에셋증권 대표이사 부사장에 취임해 최현만 당시 미래에셋증권 대표이사(현 미래에셋증권 회장)와 공동대표 체제를 이뤘다. 김신 사장은 채권 브로커 출신의 첫 증권사 대표이사로 알려졌다. 당시 김 사장은 미래에셋증권의 매출을 2010년 사업연도(2010년 4월~2011년 3월) 1조 4238억 원에서 2011년 사업연도(2011년 4월~2012년 3월) 2조 2431억 원으로 끌어올리는 등 실적 성장을 이끌었다.
경영자로서 입지를 굳힌 김신 사장은 2012년 4월 현대증권 대표이사 사장으로 영입됐다. 당시 현대증권은 장외파생상품본부를 신설하는 등 파생상품 경쟁력 강화에 나섰다. 현대증권이 김 사장을 영입한 이유도 그가 파생상품 관련 전문가였기 때문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당시 현대증권 매각설이 끊이지 않았고, 노사갈등마저 불거지는 등 내부 분위기는 좋지 않았다. 현대그룹 측은 현대증권 싱가포르 현지 법인 설립을 추진했지만 노조가 이를 반대해 갈등을 빚고 있었다. 이때 김 사장이 임직원들에게 이메일을 통해 “임직원들이 반대한다면 (싱가포르 법인 설립을) 재검토할 수 있다”고 밝히면서 파문이 일었다.
현대그룹은 2012년 윤경은 당시 현대증권 부사장을 현대증권 각자대표로 선임했다. 일각에서는 윤경은 대표 취임을 놓고 김 사장의 권한을 축소하기 위한 것으로 분석했다. 결국 김 사장은 2013년 5월 현대증권 대표에서 사임했다. 공식적인 사임 이유는 ‘일신상의 사유’지만 오너와의 갈등이 영향을 미쳤다는 뒷말도 적지 않았다.
김신 사장은 2013년 12월 SK증권 대표이사 사장으로 취임하면서 세 번째 회사 대표를 맡게 된다. SK증권은 2012년과 2013년 각각 116억 원, 580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는 등 실적이 좋지 않았다. 김신 사장도 위기감을 느꼈는지 2014년 신년사에서 “SK증권이 처한 어려움이 있다면 그 어려움의 원인을 정확히 진단해보고 극복하는 한 해를 만들고자 한다”며 “비용과 수익구조를 효율적으로 가져가 건강한 회사를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다행히 SK증권은 2014년 95억 원의 영업이익을 거두며 흑자전환했다.
SK증권은 이후로도 나쁘지 않은 실적을 거뒀지만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이전까지 SK증권은 SK C&C 자회사였지만 2015년 지주회사 SK(주)와 SK C&C가 합병하면서 SK증권도 SK(주) 자회사가 됐다. 문제는 공정거래법상 일반지주회사가 금융 자회사를 지배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결국 SK증권은 2018년 J&W파트너스에 매각됐고, 사명은 SK증권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김 사장은 SK증권 피인수 후에도 사장직을 이어갔고, 2020년에는 연임에도 성공했다. 김 사장은 SK그룹 인맥을 이용해 SK증권이 SK바이오팜, SK바이오사이언스, SK아이이테크놀로지 등의 IPO 인수단으로 참여할 수 있게 이끌었다. 덕분에 SK증권의 실적은 상승세에 있지만 SK그룹에 대한 높은 의존도는 넘어야 할 숙제로 거론된다.
김신 사장이 오너 교체를 몇 차례나 겪었음에도 성공적인 커리어를 보낸 배경으로는 그의 소통 능력과 인맥이 꼽힌다. SK증권은 ‘CEO 행복카페’와 ‘행복포차’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김 대표는 CEO 행복카페에서 비슷한 이력의 직원 그룹과 대화를 나누고, 행복포차에서는 직원들과 격의 없는 식사를 한다. 다만 최근에는 코로나19로 인해 프로그램이 잠정 중단됐다. 김 사장은 2016년 신년사에서도 “소통으로 협력하고 목표방향을 공유할 뿐만 아니라 인재중시 및 비용수익구조 효율화에 앞장서겠다”고 소통을 중요시하는 모습을 보였다.
김신 사장은 증권가에 막강한 인맥을 둔 것으로도 유명하다. 김 사장은 정영채 NH투자증권 사장, 박정림 KB증권 사장, 황성엽 신영증권 사장 등과 서울대학교 경영학과 82학번 동기다. 임재택 한양증권 사장, 윤수영 전 키움증권 부사장은 쌍용투자증권 입사동기다. 김 사장이 채권 영업에 뛰어난 능력을 보인 것도 인맥의 힘이 작용했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