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쿡앤쇼’와 아이폰 도입 등 스피드 경영으로 인정받았던 이석채 KT 회장이 꿈의 이동통신이라 일컬어지는 4G LTE 서비스에 대해선 유독 잠잠해 궁금증을 낳고 있다. |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는 LTE 서비스 시작을 알리며 대대적인 마케팅에 돌입하고 있다. 특히 LG유플러스의 경우 ‘만년 3등’에서 벗어날 뿐 아니라 업계 선두로 올라서겠다는 야심까지 드러내 보이고 있다. 한데 ‘통신 공룡’ KT가 웬일인지 4G의 대세인 LTE에 대해서는 무척 조용하다. 이석채 회장이 ‘쿡앤쇼’와 아이폰 도입 등에서 보인 빠른 판단력과 신속한 추진력을 이번에는 찾아볼 수 없다. 어떤 영문인지 그 내막을 들여다봤다.
통신업계뿐 아니라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LTE에 대한 관심은 매우 뜨겁다. 지금의 3G 영상통화는 말이 영상통화지 화질과 음질, 속도가 사용자들을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끊기기 일쑤고 움직임도 원활하지 못하다. 또 3G 통신에서는 휴대전화로 활용하고 즐길 수 있는 콘텐츠들을 내려 받거나 올리기 위해서는 꽤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 4G LTE 환경에서는 이런 불편함이 사라질 전망이다.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는 LTE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알리면서 잠재 수요층을 미리 확보하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내비치고 있다. 심지어 LG유플러스는 이상철 부회장이 직접 직원들에게 일일이 편지를 보내는 등 독려하고 있다. ‘3등의식’을 버리고 4G시대에서는 통신 1위로 올라서자는 것이다. LG유플러스는 이를 위해 LTE망을 구축하는 데 조 단위가 넘는 어마어마한 액수를 투자할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다른 통신사들의 선점 경쟁이 뜨거워지는 가운데 ‘통신공룡’으로 불리는 KT는 웬일인지 LTE 서비스에 대해 홍보는커녕 미온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대신 KT는 자사의 와이브로를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지난해 9월 30일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이석채 KT 회장은 “두 기술은 완벽한 보완관계”라면서 LTE와 와이브로가 대체 관계가 아닌 보완 관계라는 견해를 밝혔다. 그런가 하면 올 초 신년 기자간담회에서는 LTE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내비치기도 했다. 표현명 KT 사장 역시 마찬가지였다. 현재의 네트워크와 단말기 등이 LTE를 온전히 서비스하기에는 무리라는 이유에서다.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가 LTE에 사활을 걸고 있는 반면 KT는 지난 6월 23일 HTC의 와이브로폰을 출시하면서 올해까지는 와이브로에 주력할 뜻을 밝혔다.
그러나 통신시장에서는 이미 LTE가 대세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런 분위기를 KT는 애써 외면하고 있는 듯한 눈치다. 지난 23일 HTC의 와이브로폰 신제품 발표 현장에서 표 사장은 “중요한 건 LTE냐 와이브로냐가 아니라 고객에게 가장 빠른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라며 자사의 와이브로 네트워크가 지금으로서는 더 낫다는 것을 암시했다.
하지만 와이브로에 큰 관심을 갖는 이는 많지 않다는 평가다. 물론 KT의 와이브로 가입자 수가 올 초 40만 명 수준에서 최근 48만 명에 달할 만큼 늘긴 했다. 하지만 이는 “저렴한 요금제와 공짜폰 등의 덕이 크다”는 것이 통신업계 관계자의 말이다.
이 같은 추세를 의식해서인지 KT는 당초 내년쯤 상용화할 것으로 알려져 있던 LTE 서비스를 오는 11월 시작할 뜻을 밝혔다. 그렇다고 와이브로를 포기한다는 것은 아니다. 23일 표 사장은 “11월에 스마트폰과 함께 LTE 상용 서비스를 시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모뎀이 아니라 휴대폰 단말기가 중요한 만큼 경쟁사와 비교해 뒤처지지 않을 것”이라며 늦게 출발했다고 해서 큰 피해는 없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렇다면 왜 KT는 대세로 인식되는 LTE보다 와이브로를 더 강조하고 나서는 것일까. 여기에는 KT의 말 못할 속사정이 숨어 있다는 것이 많은 통신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KT의 주장대로 LTE와 와이브로는 같은 4G다. 그러나 와이브로는 실용성 측면에서 사용자들에게 외면당하고 있다. 스마트폰이 활성화되기 이전에 이미 ‘경이로운 속도’를 자랑해왔지만 콘텐츠가 부족해 거의 쓰는 사람이 없었다. 예전의 KT의 이동통신 인터넷인 ‘매직엔’등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요즘 스마트폰으로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애플리케이션과 인터넷에 비하면 초라하기 짝이 없다.
게다가 KT의 와이브로는 달리는 차 안, 지하공간에서는 이용하기 어려웠다. 끊기기 일쑤여서 사용자들의 불만을 자아냈다. 통신업계 또 다른 관계자는 “콘텐츠도 부족하고 이용하기도 쉽지 않아 통신시장에서 홀대받은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 관계자는 “다양한 애플리케이션과 콘텐츠를 이용할 수 있는 스마트폰이 출시되면서 와이브로는 무용지물이 됐다”고 단정했다.
그럼에도 KT가 와이브로를 버리지 못하는 까닭은 엄청난 투자비용 탓이 크다. KT가 와이브로에 쏟아 부은 돈은 조 단위가 넘을 것이라는 게 통신업계의 정설이다. 한 IT업체 팀장급 인사는 “조 단위를 쏟아 부은 사업을 쉽게 접기는 힘들 것”이라고 전했다.
와이브로는 원래 4세대 통신기술을 선점하겠다며 국가 차원에서 의욕적으로 전개한 국책사업이었다. 우리나라가 디지털 이동통신방식 중 하나인 코드분할다중접속방식(CDMA)을 전 세계적으로 상용화시킨 것처럼 초고속 이동통신망인 와이브로를 전 세계적인 추세로 키워보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속도만 염두에 두었을 뿐 그에 따른 콘텐츠와 지속적인 연결 상태를 어떻게 유지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다. 가입자가 늘지 않은 것은 당연지사. 미국 수출 길도 터보려 했으나 정작 미국인들은 와이브로에 무관심했다.
▲ 라이벌은 날개 다는데… SK텔레콤 관계자들이 프리미엄 LTE 국내 최초 상용화를 기념하는 카운트 다운 행사를 갖고 있다(왼쪽). LG유플러스도 4G LTE 상용 전파를 쏘아 올리며 본격적인 4G LTE 시대 개막을 알렸다. 왼쪽에서 세 번째가 이석채 회장의 업계 라이벌인 이상철 부회장이다. |
그럼에도 막대한 투자비 때문에 KT는 와이브로를 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와이브로는 KT에 ‘계륵’이라고 할 수 있다.
또 하나, KT가 LTE가 통신시장 대세라는 것을 알면서도 전력투구하지 못하는 이유는 2세대(2G) 서비스를 종료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KT는 당초 지난 6월 말 2G 서비스를 종료할 예정이었다. 2G 서비스 가입자들에게 수시로 안내 문자 메시지를 발송하고 전화도 해 3G로 전환할 것을 촉구했다.
한 2G 서비스 사용자는 “6월에는 하루에도 서너 번씩 2G 서비스가 종료될 것이라는 문자와 전화에 시달렸다”며 “이건 숫제 협박도 아니고, 고객은 안중에도 없이 자기들 마음대로 종료하고 말고 하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다른 사용자들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일부 가입자들은 ‘종료 시점’보다 ‘종료 확정’이라는 말만 들었다고 알리기도 했다. 이들은 KT의 2G 서비스 종료 안내 전화가 지금도 종종 걸려온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결국 KT의 6월 말 2G 서비스 종료는 무산됐다. 가입자 수(81만 명)가 너무 많고 통지기간이 짧다는 이유로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가 유보한 것이다.
이석채 회장은 당초 2G 서비스 중단에 대한 보상은 없다고 못 박은 바 있다.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왜 보상을 해야 하느냐는 논리였다. 고객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결국 KT는 2G 가입자 중 자사 3G로 전환하는 사람들에게 2년간 월 6600원 요금 할인, 아이폰 3G 단말기 등 24종 무료 지급, 마일리지 승계 등의 보상책을 내놓았다. 심지어 타사로 이동하는 가입자에게도 가입비 환급, 단말기 비용 3만 원, 대리점 왕복 교통비 1만 원 현금 지급 등을 제시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큰 효과를 보지는 못하고 있다.
KT가 가입자들의 입장은 아랑곳없이 일방적으로 2G 서비스를 종료하려 했던 것은 1.8㎓ 주파수 대역을 사용하는 2G 서비스를 종료하고 여기에다 LTE망을 구축하려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2G 서비스 종료가 무산됨에 따라 LTE망을 깔기 힘들어졌다.
만약 KT가 2G 서비스를 신속하게 종료하지 못한다면 LTE망을 구축하는 시점이 그만큼 늦어지는 셈이다. 2G 서비스 종료와 관계없이 LTE망을 새로이 구축하려면 오는 8월 주파수 경매에서 1.8㎓ 대역을 따야 하는데 이는 장담하지 못할 일이다.
LTE망 구축은 늦어지고 와이브로는 사장될 위험에 처해 있고…. KT 입장에서는 애가 탈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뒤늦게 KT는 파격적인 요금제와 스마트폰 와이브로 무제한 등의 방식으로 고객을 유치하려 애쓰고 있지만 역부족으로 보인다. 비록 가입자 수가 조금씩 늘고 일부에선 호응이 좋다고 하지만 ‘반짝효과’에 그칠 것이라는 의견이 적지 않다. 속도 면에서 와이브로는 LTE의 절반 수준밖에 안 된다. 3G보다는 3배 정도 빠른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보다 더 빠른 LTE가 본격적으로 상용화되면 와이브로의 운명은 불을 보듯 뻔하다.
통신 관련 벤처기업 임원은 “일종의 재고정리 아니겠느냐”며 최근 와이브로에 대한 KT의 엄청난 ‘물량공세’를 해석했다. 이 임원은 또 “제4이동통신사업자에게 와이브로 네트워크를 빨리 넘기는 것도 한 방법”이라면서 “이마저도 쉽지 않은 것이 와이브로가 자칫 옛날의 시티폰 신세로 전락할지 모른다는 얘기가 있다”고 덧붙였다. 1990년대 중반 무선호출기 이후 ‘시티폰’이라는 이동통신수단이 탄생한 적이 있다. 출시 초기에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지만 연결이 힘들고 통화가 어려워 성장 정체되다 휴대전화가 본격적으로 양산되면서 하루아침에 사라지고 말았다.
문제는 LTE 서비스 시작을 계기로 통신시장에서 이석채 회장의 입지에 흠집이 생기고 있다는 점이다. 이 회장의 임기는 올해 말로 끝난다. 이전까지 이 회장의 연임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연임 여부를 앞두고 ‘아이폰으로 공들여 쌓은 탑이 LTE로 무너질 수도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가뜩이나 이 회장은 ‘아이폰 도입 외에 딱히 눈에 띌 만한 성과가 없다’는 평가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일부 IT·통신 전문가들은 “통신과 IT 시장에서는 1분 1초가 대단히 중요하다”며 “누가 시장을 선점하고 치고 나가느냐에 성패가 달렸다”고 말했다. “늦게 출발하면 회복하기가 무척 힘들다”는 것이 IT·통신업계에서는 불문율이다. ‘만년 3등’인 LG유플러스의 이상철 부회장이 강한 의욕을 보이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정보통신부 장관 출신인 두 CEO(최고경영자) 이석채 회장과 이상철 부회장은 통신업계에서 오랫동안 라이벌로 통했다. 지금까지는 이상철 부회장이 이석채 회장에게 밀렸지만 이는 주파수 대역 등 환경적인 요인이 컸다. 하지만 이 부회장은 새로운 환경에서 출발하는 4G시대에는 기필코 역전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그동안 ‘스피드경영’, ‘신속한 결정력과 추진력’이 이석채 회장의 리더십과 경영 스타일의 장점으로 꼽혀 왔다. 그러나 4G LTE에서는 이런저런 이유로 통신 3사 중 대응이 가장 늦어지고 있다. 1분 1초가 급박한 통신시장 환경에서 이석채 회장은 어떤 승부수를 내놓을까. 연임 여부와 통신강자의 입지가 이 회장의 이번 승부수에 달려 있을 듯하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