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그 최고참, 여전한 기량 유지 비결
38라운드로 진행된 2021 K리그1, 성남 수문장 김영광은 3420분이 넘는 시간 동안 홀로 골문을 지켰다. 아무리 체력 소모가 적은 골키퍼 포지션이라지만 리그 전체를 통틀어 최고참인 베테랑 선수에겐 쉽지 않은 기록이었다. 시즌 종료 이후 연말 시상식에서 전 경기, 전 시간 출장을 기념하는 상을 수상했다.
"더 열심히 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그런 상을 받으면 더 몸 관리를 하게 된다. 김병지 선배님이 그랬듯, 나도 내가 최고의 컨디션을 보일 수 있는 몸 상태를 유지하려 애쓴다. 몸무게는 86.5kg 정도, 체지방은 11kg, 골격근은 44kg 정도여야 한다. 지방이 너무 없어도 힘이 안 나더라. 어릴 땐 선배들 따라 술을 몇 잔 마셨지만 체질에 맞지 않아 지금은 안 마신다. 탄산음료는 '제로 칼로리'만 마신다. 요즘은 좋은 제품이 많이 나와서 즐길 수 있다(웃음)."
철저한 몸 관리를 위해 수시로 체중계와 체성분 측정기에 오른다. 그는 이처럼 몸 관리에 집중하는 것에 대해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20시즌을 뛰었고 이제 한국 나이로 40세다. 주변에서 '이제는 좀 편하게 해라'라는 말도 한다. 그래도 나는 어릴 때 절실함을 그대로 가져가려 한다"면서 "지금 소홀하게 해서 나중에 후회할 내 모습이 너무 싫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정말 나는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눈곱만큼도 없다. 그만큼 혹독하게 운동을 했다. 다시 하라면 못할 것 같다. 치열했던 시간들이 있었기에 이렇게 오랫동안 뛰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번 시즌 38경기에 출전하면서 46골을 실점하고 13회의 무실점 경기를 펼쳤다. 객관적 전력 면에서 다소 열세로 평가받는 성남이 K리그1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데는 김영광의 선방이 큰 몫을 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는 "나 혼자 잘한 것이 아닌 팀원들과 함께 만든 기록"이라며 "골키퍼가 아무리 난다 긴다 해도 필드 플레이어들과 조합이 잘 맞아야 실점을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성남의 K리그1 잔류 분수령이었던 37라운드 광주와 경기, 김영광의 선방이 빛난 경기였다. 전반 초반부터 시작된 광주의 매서운 공격을 김영광이 연속 선방으로 막아냈다. 세이브 이후 흐른 볼이 이상하게도 계속 광주 선수들에게 연결됐지만 김영광은 모든 슈팅을 막았다.
그는 "경기 전 감독님이 '영광이가 막아준 날엔 다 이겼다'는 말씀을 하셨다. 집중력을 더 끌어올렸던 것 같다"며 "첫 슈팅을 막고 공이 흘렀는데 계속 흰색 유니폼(광주 선수들)이 달려오는 것이 보이더라. 무조건 막겠다는 생각으로 몸이 먼저 움직였던 것 같다"고 말했다. 결국 이날 경기는 성남이 무실점 경기를 펼쳤고 1-0으로 승리하며 K리그1 잔류를 확정 지었다.
#성남과 인연, 41번 달게 된 사연
2002년 전남 드래곤즈 유니폼을 입고 프로 무대에 발을 내디딘 김영광은 울산 현대, 경남 FC, 서울 이랜드 등을 거쳐 2020시즌을 앞두고 성남에 입단했다. 그는 현 소속팀 성남과 특별한 인연을 공개했다.
"오랫동안 활동을 했지만 데뷔 직후부터 잘했던 것은 아니다. 특히 골키퍼 포지션이 어린 나이부터 경기에 출전하기 어렵지 않나. 벤치에서만 경기를 지켜보다 주전으로 발돋움했던 경기가 성남종합운동장에서 했던 경기다. 당시 성남은 국가대표급 선수들이 즐비한 강팀이었는데 좋은 경기력을 보였고 그 이후 쭉 주전으로 활약했다. 그랬던 운동장에 돌아오게 됐고 신인의 마음으로 돌아가자는 생각에 당시 달았던 41번을 선택했다."
김영광은 현 성남 사령탑인 김남일 감독과 남다른 인연을 자랑한다. 그는 "데뷔 때부터 한 팀에서(전남) 선후배로 활약했다"면서 "대표팀에서도 함께 생활했고 올림픽(2004 아테네) 대표팀에서도 감독님이 와일드카드로 선발돼 함께한 경험도 있다. 내가 어려운 시기에 손을 내밀어 주셔서 성남에서 뛰게 됐다. 동료였던 적이 있으니까 내가 어떻게 운동하는지 아셔서 선택을 해주신 게 아닐까. 나에게 믿음을 주셨으니 그만큼 내가 열심히 해서 보답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성남 유니폼을 입고 가장 강렬하게 남는 기억으로 2020시즌 마지막 경기를 꼽았다. 당시 성남은 하위권으로 떨어지며 강등 위기에 몰렸지만 극적인 역전승으로 1부리그에 살아남았다.
"다른 경쟁 팀들이 선전하면서 우리 상황이 더 어려웠다. 팬, 선수, 코칭스태프 등 모두 간절한 상황에서 역전승이 나왔다. 경기를 마치고선 감동적인 음악이 흘러나오는데 눈물이 저절로 흘렀다. 그동안 우승했을 때도 안 울었는데 잔류 확정에 울었다(웃음). 그 카리스마 넘치는 감독님도 우셨다. 감독님도 우셨는데 나라고 참을 수 있었겠나."
#'K리그는 팬 프렌들리다'
김영광은 팬들과 가장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선수로 잘 알려져 있다. 경기 전후로 골대 뒤에 위치한 팬들과 인사를 나누고 소셜미디어,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도 적극적으로 소통을 이어간다. 최근엔 팬들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에 후원을 하며 화제를 모았다.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축구 관련 글을 게시할 때면 '#K리그는 팬 프렌들리다'라는 해시태그를 설정하기도 한다.
"프로스포츠는 팬 없이 존재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어릴 때는 나도 나 혼자만 생각하기 바빴는데 어느 순간 성숙해지면서(웃음) 팬들을 먼저 생각하게 됐다. 'K리그는 팬 프렌들리다'라는 나름의 캠페인 같은 것을 진행했는데, 어느 순간 나 혼자 지속하게 됐다(웃음). 항상 팬들에게는 감사한 마음뿐이다."
스물한 번째 시즌을 앞두고 있는 시점, 그 또한 현역 생활 이후를 생각할 수밖에 없는 시기다. 김영광은 "자연스레 종종 은퇴 이후에 대해 떠올릴 때가 있다"며 "은퇴 후에도 팬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는 "자세한 계획은 일부러 세우지 않는다"고 말한다. "선수 생활 중에도 '이런저런 활동을 병행해볼까' 하는 생각을 하지만 이내 마음을 접는다. 다른 곳 쳐다보지 않고 오로지 축구에만 집중하고 싶다. 나는 지금도 축구를 너무 사랑한다. 은퇴 이후 계획은 그때 가서 차근차근 생각하고 싶다"고 설명했다.
[인터뷰 우수리] 김영광은 '순천 주먹'? 그가 밝히는 진실
장기간 K리그와 대표팀을 오가며 골문을 지켜온 김영광은 특유의 카리스마로도 팬들에게 환호를 받는다. 경기장에서만큼은 열정적인 모습으로 경기에 임한다. 그는 "특히 프로 초년기에는 의욕만 앞선 모습을 보였던 적도 있는 것 같다. 당시엔 가끔 내 안에 '악마'가 살았다"며 웃었다.
김영광이 어린 시절 성장한 지역에서 '무서운 사람'이었다는 축구계 '루머'가 있다. 그는 인터뷰 중 "축구선수가 되지 않았다면 극과 극으로 갈렸을 것 같다"며 "축구를 하기 전 꿈은 검사가 되는 것이었다(웃음). 아니면 '어둠의 세계'로 갈 수도 있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김영광이 전남지역 주먹이었다'는 소문에 입을 열었다. 그는 "먼저 말씀 드리고 싶은 게 있다. 절대 내가 사고뭉치나 불량스러운 학생은 아니었다"며 "싸움을 좀 하기는 했다. 내가 덩치도 크고 하다 보니 시비를 걸어오는 경우가 좀 있었다. 운동부 생활을 하다 보면 또 그런 일들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가 밝히는 학생들 간 다툼이 잦았던 시기는 중학생 시절이었다. 김영광은 "2학년 때 2교시 끝나고 매점에서 빵을 사 먹으려고 줄을 길게 서면 항상 줄과 상관없이 맨 앞에서 새치기를 하는 3학년 선배가 있었다. 안 그래도 서로를 의식하고 있던 상황이었던 것 같은데 결국 그 선배랑 싸우게 됐고 그 일화가 퍼지면서 '순천통합짱'이라는 소문까지 났던 것 같다. 부끄럽다"며 웃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순천을 떠나 광양에서 고등학교를 다녔지만 순천지역에서 연락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그는 "지금은 모르겠지만 그 시절에는 순천에 '거친' 친구들이 많았다. 그런데 나를 아는 친구들이나 후배들이 '김영광 이름을 대면 편하게 지냈다'고 하더라(웃음). 고등학교 때는 거의 조용히 지냈다"고 회고했다. 이어 "지금도 가끔 축구계 후배들이나 친구들이 '깡패였다더라'라며 장난을 치는데 절대 그런 건 아니다(웃음). 불량한 학생은 아니었다는 걸 확실히 해두고 싶다"고 강조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