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8과 11’. 2021년 기준 미국과 한국의 유니콘(기업가치 1조 원 이상의 비상장 스타트업) 기업 수다. 미·중은 전 세계 유니콘의 약 70%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2021년 전 세계 유니콘의 51%(480개)가 새롭게 탄생했지만, 이 중 한국 기업은 단 1개만 포함되는 데에 그쳤다. 2020년 국내 스타트업 신설 법인은 12만 개를 돌파했고, 2021년 투자 금액은 12조 5505억 원에 달할 정도로 활발하다. 하지만 스타트업의 70%는 창업 후 5년 이내 ‘죽음의 계곡’을 넘지 못하고 사업을 접고 있다. 세계 경제의 패러다임 변화 속 신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창의성으로 무장한 유니콘 발굴이 급선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유니콘에 도전하는 국내 스타트업의 현황과 개선 방안을 모색해보고자 한다.[일요신문] 스타트업이라고 하면 흔히 IT 기반의 사업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스타트업이 반드시 IT에 국한될 일은 아니다. 국내에 ‘MK1’ 클래식 스포츠카를 제조하는 스타트업이 등장했다. 바로 국내 최초 커스텀 오더 스포츠카 제조사 ‘알비티모터스(RBT Motors)’다. ‘MK1’은 미국 완성차기업 포드의 대표 머슬카인 머스탱 1세대 모델이다. 머스탱은 지난 50년 동안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스포츠카이자, 카레이서로 명성을 떨친 캐럴 셸비가 직접 만든 브랜드다. 자동차 역사에서 가장 치열하고 화려했던 1960년대 ‘르망24 전쟁’에서 포드가 페라리를 꺾을 때 선봉장이 비였다. 알비티모터스는 ‘MK1’의 신화를 국내에서 다시 쓸 수 있을까.
#IT 개발자에서 수제 스포츠카 CEO로
1982년생인 이성조 알비티모터스 대표는 크라이스트처치 폴리테크닉공과대학을 졸업한 후 프로그래머로서 뉴질랜드에서 지냈다. 2010년 크라이스트처치 대지진을 겪으면서 2011년 한국으로 입국했다. 이후 한국 게임회사에서 IT 기술 개발자로 8년을 일했는데, 우연히 소형생산 자동차 규제가 완화된다는 소식을 듣고선 큰 결심을 한다. 2019년 2월 직원 2명과 함께 알비티모터스를 설립했다.
회사 창립 2년 8개월 만에 첫 결실이 나왔다. 2021년 10월 알비티모터스가 국토교통부로부터 국내 1호 소량생산 자동차 인정서를 받았다. 사업의 첫 테이프를 끊게 된 셈이다. 앞서 2월 ‘자동차관리법시행규칙’ 일부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한국에서도 소량생산 자동차시장이 열리게 됐다.
사실 그간 한국에선 자동차 제조업을 영위하는 스타트업의 등장이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2015년 자동차관리법을 개정해 소량생산 자동차 별도 인증제를 도입했지만, 많은 절차와 비용과 시간 등으로 인해 대기업 외에는 자동차 제조의 벽을 뚫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테슬라의 성공으로 신생 기업의 완성차 시장 진출 장벽이 깨진 해외와 대조되는 부분이다. 뒤늦게 2019년 정부는 관련 법령 개선을 추진하고, 소량생산 자동차 제작과 시장 활성화를 지원하겠다고 밝히면서 변화의 초석을 마련했다.
알비티모터스 사업 영역은 복고를 새롭게 즐기는 뉴트로(New-tro) 문화와 맞닿아 있다. 첫 양산 예정 차량인 MK1은 1960년대 아메리칸 머슬카 머스탱으로서 대표적인 올드카이자 클래식카다. 글로벌 완성차 기업들도 올드카를 전기차 콘셉트카로 부활시키고 있다. 영국 프리미엄 소형차 미니(Mini), 독일 국민차 원조 비틀(Beetle)이 대표적이다. 최근 현대차그룹도 포니와 ‘각그랜저’로 불리는 그랜저 초기 모델을 콘셉트카로 선보이면서 대중의 관심을 끌고 있다.
이런 가운데 2022년 알비티모터스는 ‘마의 3년’을 지나 죽음의 계곡으로 접어드는 중요한 시기를 맞이한다. 연구개발과 프로토타입(시제품) 테스트, 정부 인증 등을 마쳤으니 스포츠카 양산을 통한 사업화 안착이라는 숙제를 풀어야 한다. 서울 마포구 상암동 에스플렉스센터에 위치한 알비티모터스 본사에서 이성조 대표를 만나 그 이야기를 들어봤다.
#K-테슬라를 꿈꾸는 ‘알비티모터스’
―자동차에 대한 관심이 남다른 것 같다.
“뉴질랜드 삶이 큰 영향을 끼쳤다. 공임비가 비싸서 정비소에 맡기기보다는 직접 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강했다. 자가 정비 문화가 정착한 나라다 보니까 자료를 구하기 쉬웠다. 자동차에 오디오를 설치하다가 합선으로 인해 발전기를 고장을 낸 적도 있다. 그렇게 자동차 ‘덕질’에 빠졌다. 한국에 와서도 정비소 리프트를 빌리고 차를 사다가 분해를 시작했다. 일종의 스터디였다. 한국에선 저를 신기하게 바라봤지만, 전 왜 정비소에 가느냐고 반문하면서 공구를 사 모으기 시작했다.”
―관심사가 창업 아이템으로 이어졌다.
“2017년 소량생산 자동차 항목이 법안에 명시된 것이 결정적이었다. 사업을 하면 가능할 것 같긴 했지만, 한국에서 자동차 제조 스타트업이 ‘가능할까’라는 고정관념이 있긴 했다. 그러다 지금의 창립 멤버들과 2018년 11월쯤 ‘한번 해볼까. 인생을 걸어볼까’라며 이야기한 것을 곧바로 실천으로 이어졌다.”
―IT 출신이면서 제조업을 택한 이유가 궁금하다.
“세계 자동차 시장을 관심 있게 봤다. 정석처럼 보이던 기존 자동차 제조산업 루트들이 깨지고 있었다. IT 출신이 아니었다면 시작도 안 했을 것이고, 고정관념으로 인해서 차가 나오지도 않았을 수 있다. 테슬라도 창업 초기 10명이 안 됐다. 정부 주도하의 국가기간산업이 아닌 투자자가 끌고 갔다. 코치빌더 등 커스텀 자동차 디자인을 다양하게 공급하는 곳처럼 새로운 기술에 쉽게 도전할 수 있었다. 반면 대기업 양산차는 쉽게 결정해서 도전하기 쉽지 않다. 우린 100대만 팔아도 충분히 유지가 되는 회사다.”
―시장을 개척하는 입장이다.
“국내 최초로 커스텀 오더 자동차 제조사로 인정받은 곳이다. 북미, 유럽에선 이미 200개 안팎의 업체가 있을 정도로 활발한 시장이지만, 국내에선 우리가 유일하게 시장을 개척했다. 스타트업은 브랜드 힘이 없다. 첫 양산 차량으로 스포츠카를 택한 것도 시장 이목을 끌 수 있고, 소유욕을 자극할 수 있겠다고 판단해서다. 임직원이 3명에서 시작해 현재 14명으로 늘었다. 2022년엔 25명까지 확대하고 싶다. 전라남도 영암군에 공장과 연구개발실이 있다. 규모는 각각 300평, 60평 정도다. 2022년 상반기 공식적으로 MK1 양산이 시작될 예정이다.”
―차별점과 경쟁력은 무엇인가.
“동일한 디자인의 머스탱을 사려면 1967년산을 사야 한다. 유지 보수가 쉽지 않다. 두 달 뒤에 부품이 도착한다든가. 공식 서비스를 받기도 어렵다. 배출 가스 규제로 인해 기존에 인증받은 차량도 퇴출되는 상황에서 오리지널 클래식카를 즐기긴 어렵다. 레스토모드(Restomod). 디자인은 그대로 가되, 내부는 현대식으로 바꿨다. 감성에 실용성을 더했다.”
―지속 성장 가능성에 물음표가 붙는 것은 사실이다.
“기본적으로 양산차가 아니다. 전기차 등 친환경 미래차로 가더라도 마니아층 수요가 줄어들까. 카메라 시장만 보더라도 라이카가 아직도 잘 팔리고 있다. 고성능 하이앤드급 프레스바디를 대중을 위해서 만들진 않는다. 그 시장이 왜 유지될까를 보면 추구하고자 하는 소유욕이 명확하다. 2019년 11월 중국 선전, 청두(사천성)에 있는 딜러사 2곳과 계약했을 때가 기억에 남는다. 딜러사들은 ‘스포츠카는 자동차 사업이 아니다. 사치품(명품) 사업이다. 명품 시장은 어떤 어려움, 경제적 이슈가 있어도 항상 성장하는 시장’이라고 평가했다.”
―사업 확장에 대한 고민이 있을 것 같다.
“인공지능, 자율주행, 빅데이터 등의 기술을 어디에 적용할 수 있느냐를 봐야 한다. 형태를 만드는 회사가 있어야 부가적인 기술이 따라간다. 현재 글로벌 모빌리티 시장은 부가적인 것들에 집중하는 형태다. 우리는 차체 등 기본적인 집중하다가 부가적인 기술을 연구할 것이다. 비전센서모듈에도 관심을 많이 두고 있고, 샘플을 만들고 있다. 이 밖에도 전기 오토바이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을 진행하고 있고, 프로토타입(시제품)은 어느 정도 끝났다. 2022년 7월 양산 계획이다. 전기차 OEM도 2022년부터 파일럿 모델을 생산할 수 있도록 논의 중이지만 공개할 단계는 아니다.”
―대기업 계열인 두산 모빌리티와 협업을 진행하고 있다.
“2021년 1월 두산모빌리티로부터 수소연료전지 모듈을 납품받았고, 전기 오토바이에 탑재할 예정이다. 주행 테스트는 계속하고 있고, 2022년 1월에 완성 버전을 공개한다.”
―사업 초기 위기를 어떻게 극복했나.
“무시, 냉대, 핀잔. 사업을 시작하고 외부에 나갔을 때 느꼈던 감정이다. 처음엔 ‘차는 만들 수 있어?’, 시제품이 나왔을 땐 ‘인증받고 이야기하자’, 인증 후엔 ‘시장성 있나’라며 질문만 한다. 2022년도에도 자금 확보가 중요하다. 한 스텝 더 올라가려면 시설을 확장하고, 인력을 확충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론 머스크는 테슬라 창업자가 아닌 투자자다. 시장에서 무시와 냉대를 받았던 테슬라가 결국엔 성공했다. 같이 일하는 식구(직원)들 덕분에 버티고 있다. 시장이 애초에 없다 보니까 인력풀이 엄청 작다. 노력 끝에 숨어있던 다양한 분야의 재야 고수들을 한 분 한 분 모셔왔다.”
―정부 정책과 관련해 바라는 점은 무엇인가.
“법이 만들어지고 가는 방향은 좋지만, 현실적으로 바라봐줬으면 좋겠다. 전기차, 튜닝이나 미래차 산업이 아니면 지원을 받을 수가 없다. 스포츠카 소량생산이 메인 사업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특히 중앙정부가 친환경차에 집중하다 보니까 지방자치단체도 그걸 따라간다. 전라북도 김제시에는 특장차 산업단지가 있다. 덕분에 그 회사들이 모이면서 시장이 생겼다. 소량생산 자동차는 특화된 지역이 없다. 유럽에선 특정 지역을 중심으로 산업이 생기고 활성화되는 게 많다. 지자체장들께서 이 사업에 관심을 주시길 부탁드린다.”
―장기적인 목표가 궁금하다.
“장기적으로는 우리나라에선 알비티모터스를 떠올릴 수 있을 정도의 시설과 규모를 가지는 것이다. 숨겨진 목표는 르망24에 참여해 완주하는 것이다. 아직까지 완주를 성공한 국내 제조사는 없다. 특히 차에 태극기를 달고서 한국을 알리고 싶다. 물론 목표 달성을 위해선 시장 자본 마련이 제일 중요하다. 투자 열풍이 불고 있고, 대중들의 시선도 변했다. 테슬라나 루시안, 리비안 등이 한국에서 나오려면 지원과 관심이 필요하다.”
―끝으로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무엇인가.
“이 시장에 많이 뛰어들었으면 좋겠다. 이 시장이 크려면 우리 같은 회사가 10개, 100개가 돼야 한다. 선의의 경쟁을 할 것이고, 서로 부족한 부분을 도울 수 있다. 독점 체제보단 견제가 있어야 성장이 있다. 국토부로부터 인증받은 노하우를 전달해주고도 있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선의의 마음으로 자문을 해주고 싶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