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그 낮고 단조로운 가락에 이끌려 아무런 생각 없이 그 노래를 부르다가 엄마에게 걸려 혼이 난 노래였다. 무슨 그런 노래를 부르냐고, 엄마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고 싶으냐고. 엄마의 질책이 이해가 됐기 때문에 아무런 반항 없이 야단을 맞았던 기억까지 불러내며 나는 줄줄 눈물을 흘렸었다.
어떤 노래는 가사가 아니라 가락이고, 가락에 따라 가사가 해석되기도 한다. 분석심리학자가 꿈을 해석하는 것처럼 가사가 내포하는 이성적인 의미보다 무의식적인 의미가 더 중요할 때가 있는 것이다. ‘엄마’와 ‘죽음’과 ‘산’이 반복적이고 처연한 가락을 만나고 있는 그 노래를 낮게 읊조리면 그 행위는 내게 이별과 상실의 상처를 보듬고 치유하는 에너지가 됐다.
박창근이 ‘엄마’를 불렀을 때 바로 그 기억의 창고가 다시 열렸다. 엄마, 엄마, 엄마. 간곡하게 부르는 것만으로 노래가 되다니. 낳아주고 길러주고 바람막이가 되고 울타리가 되어준 가난한 엄마의 진면목을 알아본 생의 노래, 엄마 닮은 노래는 화려할 필요가 없지 않겠는가.
박창근이 노래할 때 느끼는 것은 그가 일부러 감성에 호소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감성에 호소하려 하면 마음이 열리는 경우보다 오히려 마음의 벽에 부딪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을 감성팔이라 하는 이유는 감성이 목적을 갖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심전심은 진심에서 온다. 나는 진심에서 뭔가에 미친 사람을 좋아한다. 미쳐서 몰입하는 사람, 무엇이든 그 자체를 즐기는 사람을 보면 마음이 거기 머문다. 그 자체로 좋은 것, 그것을 나는 순수라고 부른다.
그저 노래가 좋아서 노래를 하고, 노래를 지팡이 삼아 장님처럼 더듬거리며 자기 촉으로 길을 찾아온 순수해 보이는 그가 영광의 순간에 마이크를 잡고 사투리를 써가며 편하게 말을 한다. ‘제가 변변치가 않아요’라고. 겸손을 예의로 가지고 있는 오만한 사람의 말이 아니라 상처와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사랑하면서 바람결에 아집을 흩어버릴 수 있게 된 사람의 말, 힘을 빼고 살 수 있게 된 사람의 말이었다.
우리는 스스로 변변치 않음을 아는 사람에게 편안하게 다가간다. 신경림 시인의 문장대로 못생긴 사람은 얼굴만 봐도 즐거운 것이다. 잘날 필요도 없이 힘을 빼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며 살게 되기까지 우리는 얼마나 많은 힘을 주고 살아왔고, 그 때문에 우리 삶은 얼마나 힘든 소화불량을 겪어야 했는지.
사실 나는 박창근을 몰랐다. 친구가 이런 가수가 있다며, 네가 좋아할 거라고 들어보기를 권해 들은 노래가 바로 ‘다시 사랑한다면’이었다. 도대체 그 노래를 왜 그렇게 반복하고 반복해서 듣게 됐을까. 스미고 또 스미게 만드는 그의 감성 때문인가, 나의 감성 때문인가, 노래의 감성 때문인가.
“이젠 알아요. 너무 깊은 사랑은 외려 슬픈 마지막을 가져온다는 걸.”
깊은 사랑과 격정적 사랑을 구분하지 못했던 젊은 날, 나는, 우리는 얼마나 긴 시간을 방황했는지. 사랑해서 기대하고, 기대해서 몰아붙이고 실망하고 투사했던 그 슬프고 아팠던 날까지 사랑이었음을 고백하면서 내 명치 끝에 걸려있었던 지나간 사람을 축복해줄 수 있는 힘까지 생겼다고 느꼈다. ‘그’를 풀어줌으로써 내가 풀리는 것이다. 이럴 때 노래는 기도고 명상이다.
사실 연애할 때 느끼는 격한 감정은 사랑이라기보다 ‘나’의 집착이고, 콤플렉스의 반응이고, 억압된 그림자가 올라오는 것일 수 있다. 그러나 또 그 격정을 경험하고 나서야만 얻게 되는 정화의 에너지가 있으니 어쩔 것인가. 그런 감정 속에서 방황했던 고뇌의 날까지 축복할 수밖에. 그러고 나서 삶이 사랑이 된 후엔 비로소 고백할 수 있으리라. “버려도 되는 가벼운 추억만 서로의 가슴에 만들기로 해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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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향 수원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