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이’한 1심 유죄 이민걸·이규진 2심 선고 임박…‘직권 가진 공무원이냐’ 논란, 무죄로 뒤집힐 수도
‘사법농단’ 의혹 사건으로 기소된 전·현직 법관은 모두 14명으로 이 가운데 5명은 이미 무죄가 확정됐다. 1명은 1심과 2심에서 모두 무죄가 나와 대법원에 사건이 계류 중이며 2명은 1심에서 무죄를 받고 2심 재판 중이다. 이렇게 1, 2심에서 무죄가 나온 사례도 3명으로 14명 가운데 8명은 현재 무죄 상태다. 단 2명만 1심에서 유죄가 나와 2심 재판 중인데 2심에서 무죄로 재판 결과가 뒤바뀔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그리고 나머지 4명은 여전히 1심 재판이 진행 중인데 이들이 사법농단의 핵심 인사들이다.
12월 30일 대법원 1부(주심 박정화 대법관)는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기소된 이태종 수원고법 부장판사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 부장판사는 서울서부지법원장이던 2016년 검찰이 서부지법 소속 집행관사무소 사무원의 비리수사를 시작하자 수사 확대를 막으려 사무국장 등에게 영장청구서 사본을 보고하게 하고, 수사 받은 관련자들을 불러 진술 내용과 검찰 확보 증거 등을 수집한 혐의로 기소됐다. 그렇지만 대법원 판결을 통해 사법농단 연루 전·현직 법관 가운데 무죄가 확정된 5명째 인사가 됐다.
2021년 10월 대법원에서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의 무죄가 확정됐다. 유 전 연구관은 박근혜 전 대통령 재임 시절 비선 의료진이었다고 알려진 김영재 원장 부부의 특허소송 진행 상황을 문건으로 작성하도록 지시한 혐의로 기소됐지만 무죄를 선고받았다. 11월 25일에는 신광렬, 조의연, 성창호 부장판사의 무죄가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이들은 2016년 ‘정운호 게이트’ 당시 법원에 접수된 영장청구서와 수사기록을 법원행정처에 누설한 혐의로 기소됐었다.
아직 유죄가 확정된 사례는 없지만 1심 재판에서 유죄 판결이 나온 경우는 있다. 사실 이것만으로도 ‘법관 무패’ 흐름이 깨진 매우 이례적인 판결이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에서 근무했던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과 이규진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은 직권남용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서울중앙지법 형사32부(부장 윤종섭)는 국민의당 의원들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 재판부의 심증을 파악한 혐의로 기소된 이 전 실장에게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 옛 통합진보당(통진당) 지방의회 의원들의 지위 확인 소송 재판에 개입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이 전 상임위원에게는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다만 함께 기소된 심상철 당시 서울고법원장(수원지법 성남지원 원로법관), 방창현 당시 전주지법 부장판사(수원지법 성남지원 부장판사)는 증거 부족 등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심 전 원장은 통진당 행정소송 2심 사건의 특정 재판부 배당 개입 혐의, 방 부장판사는 통진당 사건 재판장으로서 법원행정처의 요구로 배석판사에게 판결문 수정을 지시한 혐의로 기소됐다.
현재 서울고법 형사13부(최수환 최성보 정현미 부장판사) 심리로 2심이 진행 중인데 검찰은 9일 결심 공판에서 방창현 부장판사와 심상철 전 서울고법원장에게 각각 1년 6개월과 1년의 징역형을 구형했다. 또한 검찰은 12월 20일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과 이규진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에게 각각 징역 2년 6개월을 구형했다. 이들 네 법관에 대한 항소심 선고 공판은 1월 27일에 열린다.
사법농단 의혹에 연루된 전·현직 법관의 재판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이들 법관들이 직권남용죄 성립 요건인 해당 직무권한을 갖고 있는 공무원이냐다. 재판을 통해 이들의 혐의가 인정될 경우 자칫 헌법 103조 ‘판사는 독립적으로 재판한다’를 부정하는 ‘헌법상 법관 독립 원칙의 위배’가 될 수도 있다.
이민걸 전 실장과 이규진 전 상임위원에게 유죄를 선고한 서울중앙지법 형사32부 윤종섭 부장판사는 법원행정처의 법관에 대한 재판사무 지적권을 인정한 데 반해 2021년 8월에 열린 임성근 전 부장판사 항소심 재판에서 서울고법 형사3부(부장 박연욱)는 “임 전 부장판사의 행위는 부적절한 재판 관여지만 이 행위가 직권남용죄가 성립할 때 필요한 공무원의 직무권한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서울고법 형사3부(부장 박연욱)는 이례적으로 판결문 각주에 다른 재판부 판결 사건번호까지 직접 적시하며 하급심 판결에 대해 ‘법원행정처의 법관에 대한 재판사무 지적권을 인정하게 되면 헌법상 재판의 독립에 정면으로 위배한다’고 지적했다. 이로 인해 1월 27일로 예정된 이들의 항소심 선고에 법조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게다가 윤종섭 부장판사로 최장 3년인 근무 관행을 깨고 서울중앙지법에 6년째 유임된 인물로 2021년 법원 정기 인사 당시부터 화제가 된 바 있다.
한편 2022년에도 관련 재판은 계속된다. 우선 앞서 언급한 임성근 전 부장판사는 1심에 이어 항소심인 2심에서도 무죄를 받고 현재 재판이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사법농단 논란의 핵심인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의 혐의로 아직도 1심 재판이 진행 중인데 12월 22일 무려 185차 공판이 열렸다. 2022년 1월 186차 공판부터 다시 열리기 시작한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은 126차 공판까지 열린 상황으로 역시 아직 1심이 진행 중이다. 임 전 차장의 경우 서울중앙지법 형사36부 윤종섭 부장판사가 재판을 맡고 있어 선고 내용에 특히 더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은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장을 연이어 지내며 양 전 대법원장의 재판 및 인사 개입 등에 공모한 혐의를 받고 있다. 두 전 대법관의 재판은 양승태 대법원장의 재판과 함께 진행돼 여전히 1심 재판 중이다. 과연 2022년에는 양승태 대법원장과 임종헌 전 처장, 그리고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 등의 1심 재판이 끝날 수 있을자조차 확실치 않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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