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원 성립 비율 0.82% 불과…까다로운 절차·심사 무기한 등 걸림돌, 국회의원 인식 변화 요구도
국민동의청원은 △공개 요건 충족 △요건 검토 △성립 요건 충족 △소관위원회 심사, 4단계를 거친다. 청원이 공개되기 위해선 청원인이 SNS, 메신저를 활용해 청원일로부터 30일 이내에 100명 찬성을 받아야 한다. 이 요건을 채워도 청원이 바로 공개되는 것은 아니다. 청원 내용에 국회기밀 또는 수사‧재판 등의 구제절차 진행 여부 등이 확인돼야 한다. 이 요건 검토는 7일 이내로 이뤄진다.
성립 요건은 국회 소관위로 회부되기 위해 필요한 기준이다. 요건 검토를 마친 날부터 30일 이내 5만 명 동의가 그 내용이다. 2021년 12월 9일 이전 제출된 청원은 동의 10만 명이 기준이었다. 소관위는 회부된 청원 내용의 적절성과 기존 법률과의 충돌 여부 등을 심사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본회의에 부의된 청원안은 국회의원 투표를 통해 법률로 제정된다.
청원이 입법으로 이어지는 국민동의청원은 국민의 관심사를 드러낸다. 2020년 사회를 뜨겁게 달궜던 이른바 ‘텔레그램 N번방 사건’과 관련한 청원이 세 차례 동의 10만 명을 달성한 게 대표적이다.
2021년엔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현안 관련 청원이 눈에 띄었다. 2021년 5월 24일 공개된 차별금지법 제정에 관한 청원이 그 예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한 청원인은 성별이나 성정체성 등의 이유로 차별받지 않고 평등하게 대우받기 위해 이 법안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주목할 만한 점은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 청원도 두 차례나 동의 10만 명을 기록했다는 것이다. 차별을 반대하고 평등을 주장하는 목소리 못지않게 표현과 사상의 자유가 억압되는 상황을 우려하는 견해도 컸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국가의 안전과 개인의 자유가 충돌한 사례도 있다. 2021년 5월 10일 공개된 국가보안법 폐지 청원이다. 청원인은 반국가활동을 규제하는 국가보안법이 폐지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안법이 이승만 정부와 군사독재 정권 유지 수단으로 쓰이며 개인의 표현 및 사상의 자유를 억압했기 때문이라는 게 청원인의 설명이다.
반면 북한이 여전히 대한민국 체제 붕괴를 노리고 있고, 몇 차례 개정으로 법이 악용될 여지가 줄어들었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이 유지돼야 한다는 청원도 등장했다. 이 역시 동의 10만 명을 받았다.
국민동의청원 의의는 앞선 사례처럼 국민적 관심사가 높은 의제를 입법 기관인 국회에 알려 법을 만드는 데 있다. 또 입법 과정에 국민이 직접 참여할 수 있다는 점도 순기능으로 꼽힌다.
간호사 1인당 담당 환자 수 축소에 관한 청원을 제출한 현지현 의료연대본부 정책국장은 “간호사 1인당 환자 수 법제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지만, 어떤 방식으로 국회에 전달하면 좋을지 고민이었다”며 “10만 명 청원 동의로 국민 관심도도 표현하고 입법의 필요성을 설명하는 기회를 가졌다”고 평가했다.
보완해야 할 부분도 적지 않다. 우선 청원 공개 요건이 까다롭다. 30일 이내 100명 동의를 얻기가 쉽지 않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이는 통계자료에서도 드러난다. 2021년 12월 15일 기준으로 참여연대 발표 자료를 보면 국민동의청원이 생긴 2020년 1월부터 제출된 총 청원이 3543건이다. 그중 미공개로 그친 청원이 3222건이다. 공개 요건을 충족한 청원은 9.1% 정도다. 5명의 지지를 얻으면 되는 영국이나 청원위원회 심의만 거치면 되는 독일에 비해 엄격한 기준이다.
낚시행위 제한 근거 조항 개정에 관한 청원을 제출한 유원기 씨는 “낚시인의 이익을 대변하는 단체가 없는 낚시 업계에서 동의 10만 건은 모으기 쉽지 않다”며 “힘들게 모았음에도 심사가 어떻게 진전되는지 알 수 없다”고 허탈함을 내비쳤다.
청원 심사를 임기 내에서 무기한 연장하도록 하는 제도도 문제로 꼽힌다. 장기간 심사가 필요한 청원은 추가연장을 요구할 수 있는데, 연장 기한 제한이 없다. 이러다 보니 심사가 지지부진하거나 급한 현안에 밀린다는 비판이 있다. 또 청원안은 국회 임기 만료와 동시에 자동으로 폐기된다. 20대 국회에 성립된 청원 7건 중 5건은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민선영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간사는 “심사 기한 제한은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무제한 연장하는 독소조항 자체는 없애야 한다”며 “이는 모든 청원이 법제화돼야 한다는 주장이 아니라 국회가 법률 심사 및 보고 의무를 다하고 있음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국민동의청원에 대한 국회의원의 인식 변화도 요구된다. 현지현 정책국장은 “소관위에 회부돼도 국회의원이 해당 청원에 관심이 없으면 주인 없는 법이 된다고 들었다”며 “간호인력 인권 향상을 위한 법률 역시 보건복지위원회에 계류된 지 오래됐다”고 비판했다.
차별금지법(평등법)을 발의한 이상민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표심을 따져 민감한 사안은 의견 표명을 꺼리는 일부 국회의원이 있다”며 “예민한 문제일수록 더 적극 얘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법사위가 심사를 무기한 연장하면서 책무를 게을리 하기에, 심의기간 내에 심사가 이뤄지지 않으면 본회의에 넘기는 법안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국민동의청원을 활성화하기 위해선 의원 수를 늘려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민선영 간사는 “국회의원 300명이 600조 넘는 예산을 심의하기만으로도 벅차다”며 “최소 360명까지는 국회의원을 늘려 청원 심사에 더 힘을 쏟도록 하는 방안도 필요하다”고 했다. 또 “다만 의원정수 확대는 국민적 반감이 높은 사안인 만큼, 국회가 법률을 심사하고 심사 과정을 적극 알려 국민 신뢰를 회복하는 과정이 먼저 필요하다”고 보탰다.
지웅배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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