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교체 여론 여전히 높고 윤·안 단일화 가능성도 배제 못해…TV토론 총력전·문재인 정부와 차별화 속도
대선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로 가장 많이 거론되는 세 가지는 ‘인물, 구도, 바람’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정권교체론이라는 ‘구도’, 지지율 한 자릿수에 불과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바람’을 타고 청와대까지 입성한 대표적 사례다. 인물의 경우 어느 선거에서나 부동층 표심을 좌우하는 변수로 꼽혔다.
3‧9 대선을 앞두고 지금까진 구도가 판세를 주도해왔다. ‘정치신인’ 윤석열 후보가 정권교체 여론을 바탕으로 줄곧 여론조사 1위를 기록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윤 후보는 검찰총장 사퇴 이후인 2021년 4월부터 12월까지 일요신문이 여론조사기관 조원씨앤아이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자세한 사항은 여론조사기관 또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이하 여론조사 동일)에서 모두 이 후보를 앞섰다.
하지만 2022년 신년 여론조사 대부분에선 이 후보 ‘골든크로스’가 뚜렷했다. 일요신문과 조원씨앤아이 여론조사(관련기사 [신년 여론조사] ‘대선후보 지지도’ 이재명 38.4% vs 윤석열 38.3%…TK도 박빙)에서도 이재명 후보는 38.4%, 윤석열 후보는 38.3%였다(유권자 1034명 대상으로 12월 26일부터 12월 28일까지 사흘간 실시, 95% 신뢰수준에 ±3.0%포인트).
오차범위 밖에서 이 후보가 앞선다는 결과들도 나왔다. KBS가 의뢰해 한국리서치가 2021년 12월 29일부터 사흘간 실시한 여론조사(95% 신뢰수준, 표본오차 ±3.1%포인트)에서 이재명 후보는 39.3%로 윤석열 후보(27.3%)를 10%포인트(p)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12월 20일 발표한 같은 조사에선 이재명 33.7%, 윤석열 34.2%로 오차범위 내 초접전 양상을 보였는데, 불과 열흘 만에 격차가 크게 벌어졌다.
SBS가 의뢰해 넥스트리서치가 2021년 12월 30일부터 31일까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이 후보 34.9%, 윤 후보 26%로 둘의 격차는 8.9%p(95% 신뢰수준, 표본오차 ±3.1%p)였다. 여론조사상 정권교체론이 정권재창출보다 여전히 높게 나타나는 걸로 봐서 ‘구도’는 윤 후보에게 유리했지만 계속된 악재로 지지율이 하락한 것으로 분석된다. 한 국민의힘 중진 의원은 신년 여론조사 결과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이번 대선은 지려고 해도 지기 어려운 선거였다. 정권교체론을 견인하는 부동산 민심은 하루아침에 좋아질 게 아니다. 윤석열 후보는 그야말로 천운을 가진 후보나 다름없었다. 기본만 해도 이기는 선거였는데, 계속 지지율을 까먹었다. 유권자들이 ‘구도’보다는 ‘인물’을 택하는 쪽으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인물만 놓고 보면 이제 막 정치를 시작한 윤 후보가 쉽지 않다는 건 인정한다. 서둘러 진영을 정비해 다시 구도를 부각시킨 뒤, 안철수 단일화 등의 바람을 일으켜야 승산이 있다.”
민주당은 잔칫집 분위기다. 이 후보를 ‘원톱’으로 내세운 선거 전략이 통했다는 자평이 쏟아졌다. 민주당 선대위 관계자는 “선대위부터 지방조직까지 소통이 너무나 원활하다. 어딜 가더라도 손발이 착착 맞는 장면이 나오고 있다. 완성된 무대에 이 후보가 나와서 마이크만 잡으면 되는 상황”이라면서 “윤 후보가 국민들에게 불안감을 주고 있는 반면, 이 후보는 정책 행보로 대조적인 모습을 보였다. 민주당의 이재명이 아닌, 이재명의 민주당을 강조한 결과”라고 해석했다.
하지만 위기감이 사라진 건 아니다. 정가에선 이 후보의 ‘골든크로스’ 원인을 국민의힘 내홍으로 꼽는다. 이 후보가 잘해서라기보다는, 반사이익 효과를 봤다는 의미다. 이마저도 윤 후보의 하락한 지지율을 이 후보가 흡수했다고 보긴 어렵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윤 후보를 떠난 유권자들의 상당수가 아직 표심을 정하지 못한 것 같다”면서 “제1야당 후보인 윤 후보가 언제든 반등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실제 윤 후보 지지율 하락에도 불구하고 이 후보 지지율은 30%대를 뚫고 오르지는 못하는 상태다. 앞서 SBS 여론조사에서 이 후보는 34.9%를 기록했지만 이는 한 달 전 결과보다 0.5%p 떨어진 수치다. 윤 후보가 7.3%p나 하락하면서 이 후보가 앞섰던 셈이다. 3‧9 대선 1차 변곡점이었던 신년 초 결과에선 웃었지만 최대 분수령인 설 연휴 여론조사를 앞두고 이재명 선대위 내부에서 ‘안심하긴 이르다’는 기류가 팽배한 이유다.
이재명 후보 측 한 인사는 “어차피 선거는 51 대 49 싸움이다. 지금 결과에 일희일비해선 안 된다. 보수는 우리를 찍지 않고, 중도층은 표류하고 있다”면서 “빨리 40%대로 올라서서 ‘대세론’을 형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당 선대위 고위 관계자 역시 “여론조사 격차를 좀 더 벌려야 한다. 통상 15%p 차까지 벌어지면 그 어떤 변수가 생겨도 뒤집어지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여권에선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 주가 상승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안 후보가 완주한다면 한결 수월한 선거가 될 수 있다는 기대도 있지만 자칫 2021년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 재판이 될 수 있다는 우려다. 오세훈 시장은 선거 초반 지지율에선 약세를 보였지만 ‘정권심판론’이라는 구도에 ‘안철수 단일화 이벤트’ 바람을 앞세워 ‘당 대신 인물’을 부각시킨 박영선 민주당 후보를 눌렀다.
민주당 선대위 고위 인사는 1월 3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안철수 후보가 완주를 외치고 있지만 결국 윤석열 후보와 단일화를 시도하지 않겠나. 선거 막판 이슈가 국민의힘으로 쏠릴 가능성이 높다. DJP 연합이나, 정몽준-노무현 단일화 사례에서 알 수 있듯 단일화 성사 시 우리에겐 악재”라면서 “이 후보로선 그 전까지 지지율을 최대한 끌어 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 후보 측은 선거 유세 및 TV 토론 등을 통해 ‘일하는 이재명’ 홍보에 총력전을 기울인다는 계획이다. 특히 TV 토론에서 다른 후보들보다 우위에 있다는 자신감이 역력하다. 여기에 문재인 정부와의 차별화에도 속도를 낼 것으로 전해진다. 정권교체 여론이 높다는 것을 염두에 둔 스탠스로 읽힌다. 불리한 구도의 출구전략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 민주당 선대위 고위 인사는 “바람은 외부적인 요인이라 어쩔 수 없다”면서도 “인물과 구도를 어떻게 우리에게 유리하게 가져갈지가 이번 대선 승패를 좌우할 것”이라고 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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