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월, 일본 주류회사 산토리는 100개 한정으로 최고급 위스키 ‘야마자키 55년(700mL)’을 출시했다. 1964년 이전에 증류해 55년간 숙성시킨 싱글몰트 위스키로, 산토리에서 발매된 것 중 가장 오래된 숙성기간을 자랑한다. 가격은 한 병에 300만 엔(약 3100만 원)이었다.
이 위스키는 같은 해 8월, 홍콩 경매장에 등장했다. 낙찰 가격은 무려 79만 5000달러(약 9억 5000만 원). 요컨대 3000만 원에 산 것이 불과 몇 달 사이 9억 원을 호가한 셈이다.
흔히 ‘재패니즈 위스키’로 불리는 일본산 위스키는 세계적으로 인기가 많다. 야마자키 위스키의 경우 일본 내에서도 숙성기간에 따라 1억 5000만 원, 3억 7000만 원 등 고가에 낙찰되며, 놀랍게도 10억 원 이상의 가격에 팔리기도 한다.
급등세는 대기업의 위스키에만 해당되는 건 아니다. 사이타마현 지치부시에 거점을 둔 벤처위스키사는 ‘이치로즈 몰트’라는 시리즈를 선보인 바 있다. 이 시리즈도 홍콩 경매장에 나와 54병 세트가 약 10억 원에 낙찰됐다. 발매 당시 가격은 한 병당 15만 원선. 54병으로 환산하면 810만 원이니, 100배 이상 가격이 뛰었다.
일본 투자정보 사이트 ‘켄비야’는 “위스키의 수익률이 역대 최고치를 갈아치우면서 투자 대상으로서 급부상하고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그동안 ‘주류 재테크’하면 와인이 유명했지만, 섬세함 때문에 보관이 힘들다는 단점을 지닌다. “그에 비해 위스키는 품질을 유지하기가 쉽다”는 설명이다. 즉, 장기투자에 적합하다고 할 수 있다.
‘위스키 교과서’의 저자 하시구치 다카시 씨는 최근 ‘일본산 위스키 가격이 급등한 이유’를 크게 세 가지로 분석한다. 첫째는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어디서나 전 세계 정보를 바로 손에 넣을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희귀한 위스키’에 대한 정보가 공유되면서 각국의 부유층들이 투자 대상으로 구입하는 기회가 늘어났다.
또한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도 배경이다. 위스키는 상품화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일례로 17년산이라고 표기돼 있는 상품은 캐스크(나무통)에서 17년 이상 숙성한 원주(原酒)만을 사용한다. 특히 일본의 장기 숙성 위스키는 2008년 이전 생산량이 매우 적기 때문에 상품화가 어렵고, 공급이 부족한 상황이다.
세 번째 이유는 ‘차이나머니(중국 자본)’의 영향력 증대다. 예전에는 위스키 경매가 주로 영국이나 미국에서 이뤄졌지만, 현재는 홍콩 경매장의 거래가 증가하고 있다. 하시구치 씨에 의하면, 가격 급등 현상은 일본산 위스키뿐만 아니라 (스코틀랜드의) 스카치위스키에서도 나오고 있다. 그 가운데 일본산 위스키에 관심이 집중되는 배경은 현재 위스키 붐을 차이나머니가 이끌고 있어서다. 하시구치 씨는 “일본산 위스키를 좋아하는 중국인 부유층이 늘어나고 있는 반면, 공급량이 적어 가격이 크게 상승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유독 ‘야마자키’가 인기를 끄는 까닭은 ‘일본 위스키 No.1’이라는 이미지가 강한 데다, 메이커인 산토리가 50년, 55년 등 장기 숙성한 희소성 높은 상품을 발매한 것이 화제가 되면서 주목도가 높아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다만 야마자키라고 해서 모두 가격이 오른 것은 아니다. 같은 야마자키라 해도 10년산이나 12년산은 10만~20만 원대 등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구입이 가능하다.
이와 관련, 하시구치 씨는 “한정품도 가격이 오르는 것이 있고 안 오르는 것이 있다”면서 “주식시장과 같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모든 위스키가 높은 가격에 팔리는 것은 아니며,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른다. 절정에 샀다면 오히려 가격이 내려갈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주간여성프라임에 의하면 “해외에서는 특히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생 이후)라 불리는 젊은 고위 경영진들 사이에서 위스키 투자가 인기”라고 한다. 이에 따라 “위스키의 본고장인 스코틀랜드에서는 한번 폐쇄했던 증류소의 재가동도 늘고 있다”고 매체는 덧붙였다.
영국 부동산컨설팅업체인 ‘나이트프랭크사’가 2020년 발표한 보고서도 흥미롭다. 요컨대 한정판 위스키를 포함한 고급품(보석, 시계, 미술품 등)의 가치 변화를 정리한 자료다. 보고서를 살펴보면, 투자대상이 되는 진귀한 위스키의 경우 과거 10년간 수익률이 540%로 다른 고급품들을 제치고 단연 높았다.
일각에서는 “위스키 투자가 장기적으로 금과 견줄 만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대중적인 투자 상품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일본의 한 위스키 애호가는 “몇 년 전부터 야마자키, 히비키 등 고급 위스키가 정가의 배 이상으로 팔리는 ‘이상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며 “솔직히 유명한 위스키를 구입하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굳이 노린다면 신흥 증류소의 첫 출시 제품을 1만 엔(약 10만 원)대에 사서 가격이 오르기만을 기다리는 것”이라고 털어놨다.
실제로 그는 “과거 애음 목적으로 지치부시 증류소의 이치로즈 몰트 한정판을 큰맘 먹고 14만 엔에 산 적이 있다”고 한다. 묵혀뒀더니 50만 엔으로 급등했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돈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인정받았다는 기쁨이 컸다. 다만 위스키 애호가들은 결국엔 못 참고 마셔버리기 때문에 투자와는 거리가 멀다.”
"지위의 상징" 일본산 비단잉어도 '억' 소리!
부동산을 비롯한 현물자산, 예금 및 주식 같은 금융자산 등은 익숙한 투자 대상이다. 한편, 깜짝 놀랄 만한 대상도 투자용으로 주목받는 것이 있다. 그중 하나가 이른바 ‘헤엄치는 보석’이라 불리는 일본산 비단잉어다.
2018년 일본 히로시마에서 개최된 경매에서는 비단잉어 한 마리가 무려 2억 300만 엔(약 20억 9000만 원)에 낙찰돼 화제를 모았다. 당시 낙찰자는 중국인 부호로 알려졌다. 비단잉어는 관상용으로 품종 개량된 잉어로 색깔이 비단처럼 아름답고 화려한 것이 특징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해외 부유층들 사이에서 비단잉어가 ‘지위의 상징’처럼 여겨지며 큰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이에 일본 양식장에서는 ‘잉어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갖가지 노력을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