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만의 방영 ‘의미’ 크지만 중국 내 불량 연예인 및 팬덤 규제, 코로나 재유행까지 겹쳐 ‘한류 비즈니스’ 제약
2010년대 초·중반 중국 시장을 중심으로 한류 관련 사업을 다양하게 진행했던 한 연예 관계자는 드라마 ‘사임당 빛의 일기’의 중국 TV 방영에 대한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다. 기본적으로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대유행)이 결정적인 한계다. 넷플릭스를 타고 2020년부터 일본에서 4차 한류 열풍이 불고 있지만 그 흔한 일본 현지 팬미팅 등의 행사조차 못하고 있다. 게다가 중국은 요즘 거센 연예계 정풍 운동까지 진행되고 있어 더 심각한 상황이다.
1월 4일 중국 후난(湖南)위성TV의 IPTV 채널 ‘망고TV’와 후난위성TV 계열사인 지방 방송사 ‘후난오락’에서 드라마 ‘사임당 빛의 일기’ 더빙 버전 방영을 시작됐다. 한국 드라마가 중국 방송을 통해 방영된 것은 2016년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로 중국 당국이 한한령을 발동한 이후 6년여 만이다. 지난 6년 동안 중국 방송사는 물론이고 중국 내 모든 정식 플랫폼에서 한국 드라마는 사라졌었다.
‘사임당 빛의 일기’를 방송한 망고TV가 드라마 ‘사임당 빛의 일기’ 판권을 구입한 것은 2017년으로 당시 계획은 한국과 동시 방영이었다. 망고TV는 중국 후난성 최대 방송사로 중국에서는 메이저로 손꼽히는 곳이다. ‘대장금’을 중국에 처음 소개한 방송사도 바로 망고TV다.
‘사임당 빛의 일기’는 2017년 1월 26일부터 5월 4일까지 SBS를 통해 28부작으로 방영됐는데 사드 한한령만 아니었다면 같은 시기에 망고TV를 통해 바로 중국에서도 방영됐을 것이다. 그렇지만 망고TV의 ‘사임당 빛의 일기’ 중국 동시 방영은 무산됐고 5년여 만인 2022년 1월에서야 방영이 가능해졌다.
‘사임당 빛의 일기’가 언제 중국 방송을 통해 방영되느냐는 중국 한한령의 종식과 바로 맞닿아 있는 문제였다. 바로 ‘대장금’으로 중국에서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있는 이영애가 주연을 맡은 작품이기 때문이다. ‘대장금’을 통해 각인된 이영애의 사극 이미지가 ‘사임당 빛의 일기’로 이어지면서 중국 시장에서 큰 관심을 불러 모았지만 사드 한한령을 넘지 못했다.
이로써 중국의 사드 한한령은 끝이 난 것으로 보인다. 중국 당국은 처음부터 한한령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았지만 암묵적으로 한류 콘텐츠의 중국 유입을 봉쇄해 왔다. 그런데 2021년 12월 3일 나문희, 이희준 주연의 영화 ‘오! 문희’가 6년 만에 중국에서 정식 개봉한 한국 영화가 된 데 이어 이번에는 드라마 시장까지 다시 열린 셈이다.
문제는 그 이상의 의미는 제한적이라는 점이다. 지난 6년 동안 한류 콘텐츠의 중국 유입이 전면 차단돼 있는 상태였다면 그 문이 열린 점이 상당한 의미를 가질 수 있겠지만 이미 불법적인 루트를 통해 한류 콘텐츠는 중국에 꾸준히 유입돼 왔다. 한국 방송사에서 방영한 드라마는 물론이고 넷플릭스 사용이 금지된 상황에서도 ‘오징어 게임’ 등이 불법 유통돼 큰 인기를 모았었다. 사드 한한령이 한류 콘텐츠의 중국 유입을 막는 게 아니라 정식 수출 길만 막아 불법 시장을 확대시키는 결과만 초래하고 말았다.
한한령이 완벽하게 극복되면 한국 드라마 판권이 정식으로 중국 방송사로 수출되고 한국 영화가 중국 극장에서 정식으로 개봉되면서 일정 부분의 수익 증대를 기대할 수 있다. 그렇지만 연예계가 진정으로 원하는 부분은 한국 스타들의 중국 현지 진출 및 활동이다. 사드 한한령 이전에는 다양한 한국 연예인이 중국 현지에서 활동하며 상당한 수익을 창출해왔다.
기본적으로 코로나19 때문에 중국 현지 활동이 쉽지 않은데, 더 큰 장애물이 있다. 바로 중국은 시진핑 국가주석이 주도하는 ‘홍색 정풍 운동’, 다시 말해 연예계 정풍 운동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시발점은 2021년 초 대리모 스캔들에 휩싸인 여배우 정솽이 세금 탈루로 2억 9900만 위안(약 534억 원)이라는 천문학적 벌금을 부과 받으며 연예계에서 퇴출된 사건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배우 자오웨이의 세금 탈루 의혹, 배우 장저한의 일본 야스쿠니 신사 방문, 그룹 엑소 전 멤버 크리스(중국명 우이판)의 강간 사건 등이 이어지며 연예인에 대한 중국 여론이 급격히 나빠졌다.
2021년 5월에는 유제품회사 멍뉴의 ‘우유 27만 병 폐기 사건’이 벌어졌다. 아이돌 육성 프로그램 ‘청춘유니3’과 손잡고 신제품을 출시한 멍뉴는 우유 뚜껑에 있는 QR코드를 스캔하면 프로그램 참가 연습생에게 투표할 수 있도록 했다. 이에 일부 팬들이 좋아하는 연습생에게 표를 몰아주려 우유를 대량 구매해 QR코드만 스캔한 뒤 먹지 않고 버리는 일이 벌어졌다. 결국 ‘청춘유니3’ 제작이 중단됐고 각종 팬클럽 계정도 폐쇄됐다.
이런 사회 분위기는 중국 당국의 강력한 ‘홍색 정풍 운동’으로 이어졌다. 우선 중국 사이버공간관리국(CAC)은 아예 ‘경고 명단 연예인(블랙리스트)에 대한 비정상적 미학 조장, 저속한 스캔들 과장, 맹목적 우상화 등을 유도하는 콘텐츠를 금지한다’며 유명 연예인 88명을 공개했다. 여기에는 앞서 언급된 정솽, 자오웨이, 장저한, 크리스 등이 모두 포함돼 있다.
방송규제기구인 국가광전총국은 연예인에 대한 규제를 연이어 발표하고 있다. 규제가 워낙 광범위하게 많은데 주요한 부분만 간추리면 △물의를 빚은 소위 ‘불량 연예인’의 컴백 금지 △오디션 프로그램의 투표(온라인 투표, 현장 투표, 순위 매기기 등) 불허 △연예인 인기 차트 발표 금지(음원 사이트 음원 중복 구매 금지) △관행에 과도하게 어긋나는 비싼 출연료 금지 △출연료 규정 위반 및 탈세를 위한 이면 계약 연예인의 즉시 퇴출 등이 있다.
‘연예기획사와 팬클럽 행동지침’이라는 팬덤에 대한 규제도 따로 있다. 우선 연예인을 위한 팬들의 모금 행위가 금지되며 이를 위반하면 해당 팬덤 계정이 곧바로 폐쇄된다. 실제로 중국 팬클럽이 방탄소년단(BTS) 멤버 지민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제주항공 항공기에 대형 사진 광고를 실었다. 이를 위해 팬들이 모금을 했는데 불과 1시간 만에 230만 위안(약 4억 원)을 모아 화제가 됐었다. 결국 지민 팬클럽의 웨이보 계정이 60일 동안 정지됐다.
이런 분위기로 인해 한국 스타들의 중국 활동에도 제약이 많아질 수밖에 없으며 수익 창출도 어려워졌다. 게다가 기본적으로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중국 현지 활동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다. 따라서 이영애의 ‘사임당 빛의 일기’가 한한령 종식이라는 큰 성과를 만들어 냈음에도 과거와 같은 한국 연예계의 중국 시장 진출로는 이어지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김은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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