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무근” 해명했지만 업계에선 “있을 법”…바이오시밀러 경쟁 심화, 신약으로 해법 모색 관측
#대규모 M&A 예고, 바이오도 포함?
삼성전자는 지난 1월 5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 'CES 2022' 현장에서 간담회를 열고 전 사업 부문에서의 대형 인수합병(M&A) 추진을 예고했다. 한종희 삼성전자 부회장은 “부품과 완제품(세트) 모두에서 가능성을 크게 열어놓고 상당히 많이 보고 있다”며 “여러 사업 분야에서 M&A를 검토하고 있어 어디서 먼저 성사될지는 알 수 없지만, 여러분의 생각보다 저희는 훨씬 빨리 뛰고 있다”고 밝혔다. 삼성전자에서 부품은 반도체를, 세트 부문은 가전과 모바일, TV 등을 말한다.
실탄은 충분하다. 2021년 3분기 말 삼성전자가 보유한 현금성 자산은 120조 원 안팎에 달한다. 업계는 삼성이 부품·세트를 비롯해 자율주행 시대를 대비해 차량용 반도체 등 전장 분야 M&A를 검토 중인 것으로 보고 있다. 미래 핵심 기술인 로봇과 인공지능(AI), 바이오 사업에서도 M&A 가능성을 언급한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도 2021년 8월 ‘뉴 삼성’ 청사진을 제시하면서 2023년까지 반도체·바이오에 240조 원을 신규 투자해 반도체 경쟁력을 강화하고 바이오 사업을 제2의 반도체로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삼성이 적극적인 M&A 의지를 드러내면서 수면 아래 가라앉았던 바이오젠 인수설은 꾸준히 회자되고 있다. 12월 말 삼성그룹이 최대 50조 원에 미국 바이오기업 바이오젠 인수를 추진 중이라고 보도가 나왔다. 직후 바이오젠 주가가 급등했다. 바이오젠은 중추신경계 질환 분야에 강점을 가진 글로벌 기업이다. 알츠하이머 치매와 파킨슨병, 다발성 경화증, 척수성 근위축증 등의 치료 신약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
양사는 사업적으로도 긴밀한 연관성을 가졌다. 2012년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를 개발하는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설립할 때 공동 투자해 지분을 삼성바이오로직스가 50%+1주, 바이오젠이 50%-1주 나눠 갖고 있다. 삼성이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삼성바이오에피스를 통해 각각 바이오의약품 위탁생산(CMO)·위탁개발생산(CDMO)과 바이오시밀러 사업을 영위 중인 것에서 나아가 고부가가치 신약 개발 시장에 뛰어들 수 있다는 기대감에 인수설의 실체 유무는 업계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그러나 삼성바이오로직스는 공시를 통해 해당 보도가 '사실무근'이라고 선을 그었다.
#커지는 신약 개발 기대감, 실체는?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부인에도 업계에서는 삼성그룹이 신약 개발 시장에 진출할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에 힘이 실린다. 주력 사업 중 하나인 바이오시밀러의 경우 이미 '레드오션화' 됐기 때문이다. 초기 바이오의약품 시장에서 블록버스터급 신약들이 나오고 이들의 특허 만료가 다가오면서, 이 의약품을 모방한 바이오시밀러 시장이 커졌고 환자들에게 의약품을 안정적이고 저렴하게 공급할 수 있었다. 그러나 10~20여 년이 지난 지금 화이자와 암젠 등 글로벌 제약사들의 제품 가격 인하 경쟁에 나서면서 점유율 싸움이 치열하고, 이 시장에 뛰어드는 국내 기업들도 늘면서 성장과 수익성 측면에서 한계에 도달했다는 평가가 많다.
제약사들의 바이오시밀러에 대한 견제도 심하다. 바이오시밀러의 증가로 제약사가 개발한 의약품의 가치가 떨어지자, 일부 제약사들은 바이오시밀러 출시를 부당하게 지연시키는 등 제동을 걸어왔다. 일례로 애브비는 2018년 암젠, 삼성바이오에피스 등 업체들과 바이오의약품 휴미라에 대한 바이오시밀러 미국 출시를 2023년까지 지연시키는 내용의 특허 계약을 체결했다. 이는 ‘역지불합의(pay-for-delay settlement)’로, 바이오시밀러 업체가 복제약 생산을 늦추거나 포기하는 대가로 신약 개발 제약사로부터 금전적 대가를 받는 합의를 뜻한다. 당시 미국 상원이 역지불합의를 막는 내용의 법안을 통과시켰지만, 바이오시밀러 업계 가격 경쟁이 지속되는 한 제약사의 견제도 이어질 수 있다.
여재천 한국신약개발연구조합 사무국장은 “셀트리온이 바이오시밀러 시장에 뛰어들었을 당시에는 규모가 작고 경쟁자도 적어 선구자적 역할을 했으나, 이제는 바이오의약품이 많이 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며 “특허 만료를 기다리며 바이오시밀러 시장에 뛰어드는 업체들이 많아졌다”고 설명했다. 이어 “제약사들이 개발한 신약 가치를 높이고자 바이오시밀러 업체들의 복제약 출시를 늦추고 생산량을 조정하고자 여러 시도를 해왔기 때문에 앞으로 바이오시밀러 업체들이 설 자리가 좁아질 여지도 있다”며 “셀트리온이나 삼성이 이 시장에서 과거만큼 이익을 내고 성장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전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주력 사업인 CMO와 CDMO의 경우 바이오의약품 시장이 꾸준히 성장한다는 점에서 유망 분야로 꼽힌다. 다만 이 사업 분야는 누구나 설비가 있으면 뛰어들 수 있다. 그만큼 경쟁자가 많을 수밖에 없다. 신약 개발은 장기간 투자와 시행착오를 거쳐야 한다. 리스크는 크지만 성공하면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한다. 삼성의 경우 CMO와 CDMO 분야에서 글로벌 강자로 거듭났지만 기술 혁신의 한계로 글로벌 제약사로서의 입지를 다지지는 못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자연스럽게 M&A를 통해 신약 개발을 미래 성장 동력으로 삼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나온다.
국내 대기업들이 바이오 분야에 강한 드라이브를 거는 모습도 삼성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SK그룹의 SK바이오팜은 1990년대 초부터 수십 년간 연구개발(R&D)을 지속해 중추신경계 신약 개발과 관련해 역량을 쌓았고 2020년 화려하게 IPO(기업공개·상장)에 성공했다. 최근 CJ그룹에서도 신약 개발 계열사 CJ바이오사이언스가 최근 출범해 2025년까지 10개 파이프라인(신약 후보물질)을 구축하겠다는 청사진을 내놨다. 삼성바이오에피스도 일본 다케다제약과 파이프라인 급성췌장염 치료제 1건을 개발 중으로, 신약 R&D를 지속하고 있지만 수년간 가시적인 성과는 보이지 않는 분위기다.
여재천 사무국장은 “신약 개발은 삼성그룹의 주력인 전자산업과는 다르게 수십 년간 투자가 필요하고 그럼에도 성과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특성”이라며 “삼성이 신약 개발은 주저했지만 생산시설만 갖추면 어느 정도 성과를 볼 수 있는 CMO에는 적극 투자했던 이유”라고 말했다. 이어 “기존에는 생산성 제고가 기업 성장 요인이었다면 이제는 기술 개발·투자로 신수종사업을 마련하는 것이 핵심”이라며 “바이오 신성장 동력을 찾기 위한 삼성그룹의 움직임이 수면 위로 드러난 것이 바이오젠 인수설 아니겠느냐”고 해석했다.
바이오업계 한 관계자도 “일반적으로 제약바이오 시장에서는 공장과 연구소 기능 중에 R&D를 하는 연구소에 더 주목한다. 그만큼 기술 자체가 중요하다는 의미”라며 “그러나 삼성의 경우 개발을 맡은 삼성바이오에피스보다는 공장인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더 주목받아왔다”라고 말했다. 이어 “삼성도 R&D에 계속 투자하면서 신약 개발을 해왔지만 개발 자체가 힘들고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아직 가시적인 성과가 안 나오는 분위기”라며 “자체 기술력으로 힘들다고 판단하면 협업이나 M&A는 당연히 시도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바이오젠 인수설은 있을 법한 얘기”라고 말했다.
김예린 기자 yeap12@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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