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도, 통신도 두절된 강원도 첩첩산중 오지에서바람, 구름, 해와 청산, 자연을 벗삼아 삶의 답을 찾아가는 수행자 지산스님의 철학을 들어본다.
"자연을 벗 삼아 산새 소리 들으면서 자기 자신을 뒤돌아볼 수 있는 나만의 공간. 여기 뒷산의 운탄고도(運炭高道)를 다니다가 여기 딱 서니까 '아, 여기가 내가 살 곳이다' 싶은 생각이 딱 들더라고."
해발 1000미터가 넘는 함백산 자락의 '운탄고도(運炭高道'. 1960년대 석탄을 실어 나르던 벼랑길을 따라 오르면 심심산골 작은 오두막 하나가 보인다. 5년 전 마을에서 제일 높은 산꼭대기에 작은 흙집을 직접 지은 지산스님.
20대에 부산의 대형 사찰에서 승적을 올렸고 한 때 큰 사찰의 '큰 스님'으로 지낸 지산스님이 초로의 나이를 넘어 첩첩산중 자연 속으로 들어온 건 일종의 '두 번째 출가'이다.
도시 사찰의 '큰 스님'으로 지낼 때도 스님의 수행은 남달랐다. 100여 명 가까이 부모 잃은 '아이들의 동심'과 벗하며 십수 년을 수행에 정진했었다. 그런데 전기도 통신도 두절된 곳 두 번째 출가를 감행한 수행터에서 스님의 유일한 벗은 '말 없이 말을 걸어오는' 첩첩산중 자연이다.
저 멀리 경북 봉화의 산봉우리까지 보이는 백두대간이 병풍처럼 겹겹이 펼쳐지고 그 능선을 따라 구름은 바람에 몸을 맡겨 창공을 유영한다. 그 신비로운 풍경이 지산스님이 지켜보는 앞마당 자연의 일상이다.
구름 속 바위 위에서 그 또한 자연의 일부가 되어 오늘도 수행 중인 지산스님의 해학과 풍자가 깃든 삶의 철학을 전한다.
"신선이 따로 있겠나 저 청산은 모든 걸 포용하고 값 없이 내어준다. 그걸 빌려 쓰는 우리네 인생, 뭐 있겠나, 모두가 월세 아니면 전세 아이가?"
높은 골짜기에 사는 탓에 지산스님의 처소에는 전기도 통신도 들어오지 않는다.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길은 법당 출입구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휴대폰. 딱 거기서만 휴대폰이 터진단다.
행여 바람이 불어 좌우로 흔들어 버리면 그마저도 단절된다. 지산스님의 산중 오두막은 자연에서 빌려 온 것들로 하루가 흘러간다.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 땔나무를 준비하기 위해 서두르는 지산스님.
겨울을 준비하는 일은 사계절 중 가장 힘든 시기지만 스님은 한겨울에도 일거리를 쉴 새 없이 주는 자연과 '노는 재미'로 산단다.
인적 없는 운탄고도에 버려진 잡목들을 주어 나르다 보면 온갖 번뇌 망상, 잡념이 사라지니 그 또한 스님에겐 수행이다. 아궁이 불 속에서 타닥타닥 장작 타는 소리, 바람에 일렁이는 풍경소리, 적막한 밤에 들리는 소리는 그뿐이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지낸 지 벌써 5년째. 스님은 가고자 하는 길을 찾았을까.
"그걸 모르니 여태 여기 있는 거라, 알면 벌써 하산했지."
스님의 오두막에서 골짜기 하나를 넘어가면 8000평 규모의 드넓은 수수밭이 펼쳐진다. 수확을 앞둔 이웃의 밭. 코로나19로 일손이 부족한 농촌의 수확을 거드는 것도 스님의 보시. 이웃을 돕는 일도 산중생활의 참선 중 하나다.
모종을 기를 때부터 추수할 때까지 수시로 이웃이 부르면 아무런 대가 없이 일손을 보탰다. "큰 사찰에 계시지, 왜 이런 산골짜기에서 고생을 사서 하시냐"는 밭 주인의 물음에 "수수 한 알 한 알이 만인에게 도움이 된다면 수수밭 또한 도 닦는 수행터 아니오" 라고 스님은 대답한다.
그럼 계속 와서 농사일을 거들라는 농부의 유머에 웃음으로 화답하는 스님, 해학이 넘치는 두 사람의 선문답이 자주빛 수수알갱이와 어우러져 그 또한 아름다운 자연의 풍경이 된다.
강원도 깊은 산골의 단풍은 화려하지 않고 은은하다. 산 능선을 따라 고색창연했던 태백산맥의 가을은 잎을 모두 버리고 사철나무의 푸르름이 돋보이는 겨울로 들어섰다.
지산스님의 오두막에 갑자기 쏟아지는 비가 계절의 알람 역할을 한다. 먹을 것이 귀한 겨울, 그런데 스님은 걱정도 안 한다. 고산지대에 사는 마가목 열매를 따다 차를 끓여 마시고 언 땅에 돋아난 냉이 달래로 된장국을 끓인다.
그리고 올겨울엔 태양광을 이용해 전기 없는 불편함도 해결해 볼 생각이다. 수십 년을 절에서만 지냈으니 태양광 전지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알 턱이 없지만 그 또한 스님의 가장 가까운 이웃, 산 하나를 넘어가면 딱 한 채 있는 오두막의 주인 '마리아 보살'(독실한 천주교 신자인 마리아의 세례명에 스님이 '보살'을 덧붙여 부름) 부부에게 도움을 청할 계획이다.
스님의 속도는 자연의 시간표대로 흘러가니 혹한기에도 평화롭기만 하다. '바람 닿는 대로, 태양을 벗 삼아 자연이 주는 대로 먹고 자고, 비를 피할 곳만 있다면 여기가 극락 아닌가', 지산스님의 구성진 노랫가락이 겨울 산사에 고요히 흐른다.
이민재 기자 ilyoo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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