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 수업 차이 많이 날 것"
고교학점제 도입 시 지방 학교 교사들이 가장 걱정하는 지점은 지역 간 인프라 차이로 인한 교육 격차다. 고교학점제는 학교에서 배우는 과목 이외에도 전문교과, 학교 외부 활동, 대학 연계 과정 등의 교육과정을 추구한다. 하지만 지방의 경우 외부 교육 시설이나 대학교 등이 대도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이 때문에 지방 학교 학생들이 외부 수업을 수강하는 데에 불리하다는 것이 일선 교사들의 의견이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전남지부 김혜숙 소통홍보국장(전 해남고 교사)은 “8년 동안 광주·전남에서 교직 생활을 하면서 이쪽은 대도시권 지역에 비해 외부 교육 시설이 부족하다고 느꼈다”며 “고교학점제가 도입되면 학교 외부에서 수강한 수업도 학점을 줄 수 있다. 하지만 지방은 외부 교육 기관이나 대학교가 많이 없다 보니 대도시 학생들의 외부 수업과 차이가 많이 나서 불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지역 간의 교육격차를 좁히기 위해 온라인 교육을 활용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현장 교사들은 온라인 수업을 듣는 학생들이 대면 수업을 받는 학생들과 학습 격차가 벌어질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지난 12월 26일 한국교육학술정보원에서 교원 1만 883명을 대상으로 한 ‘초중등 원격교육 실태조사’에 따르면, 원격수업 시행 이후 학생들의 실력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묻는 질문에 상위권 10% 학생의 실력은 ‘유지됐다’는 응답이 75.7%였지만 중위권과 하위권은 실력이 ‘떨어졌다’는 응답이 각각 60.9%, 77.9%에 달했다.
학생들을 가르칠 인력이 부족하다는 것도 문제다. 담당 교사를 구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아 선택과목 개설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서 만든 ‘2019 고교학점제 연구학교 사례연구’에서 수도권과 지방의 선택과목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 서울의 한 고등학교는 논술학, 입체조형 등 지정과목 이외의 교과목이 개설되고 학생들이 원하는 과목을 신청할 수 있었다. 반면 강원이나 경북의 연구학교는 선택과목이 개설돼도 강사를 구하기 어려워 수업 운영에 차질을 빚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경북지역 고교학점제 연구학교 사례 연구에 따르면 경북지역의 한 고등학교는 지역 특성상 강사(정교사 자격 소지자) 구하기가 어려웠고 구한다 하더라도 ‘선발’하는 것이 아니라 ‘모집’하는 경우가 많다고 분석했다. 이로 인해 교사들은 이전보다 더 많은 과목을 담당하게 될 수밖에 없다. 또 과목 선택을 위한 학생들의 진로 상담도 교사들이 진행하기 때문에 고교학점제 시행 전보다 업무가 늘어난다.
전교조 경남지부 김지성 정책실장은 “학생들이 원하는 수업을 개설하면 그 수업에 맞는 전공자를 구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교사들이 전공과 관련 없는 수업을 맡는 사례가 다수 있다”며 “선생님들도 전공 분야가 아니니까 가르치는 데에 어려움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교육부는 고교학점제 단계적 이행 계획을 발표하면서 지역 간 교육격차 해소를 위해 정규시간 내 운영, 온라인 활용 등 공동교육과정 내실화로 농어촌처럼 여건이 열악한 학교의 과목 개설을 지원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농어촌‧소규모 학교에서도 과목선택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교원 추가 배치를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대입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는데…
대도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취약한 고교학점제 운영은 결국 대입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다고 교사들은 주장했다. 강원도 원주의 한 고등학교 교사는 “고교학점제는 학생들의 선택에 맞춰 학교가 특정과목을 얼마나 개설해줄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그런데 지방에서는 현실적으로 그게 어렵다. 대도시권과 지방의 개설과목의 차이는 그대로 학생부에 반영돼 학생들의 대입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고교학점제 도입과 대입제도 개정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현행 대입제도는 크게 수능 점수로 평가하는 정시와 학생부와 내신 등으로 평가하는 수시로 나뉜다. 현재는 정시가 확대되고 있는 추세다. 그러나 고교학점제는 절대평가 방식의 학생 성취도를 평가하기 때문에 소도시 및 농어촌 학생들에게는 과정을 평가할 수 있도록 대입 제도 개정이 필요하다는 것이 교사들의 의견이다.
이와 관련, 교육부 관계자는 “2028학년도 대입은 학점제에 맞춰서 개선이 있어야 한다. 아직 구체적인 대입 제도 방향은 나오지 않았다. 현재 대입과에서 연구 중에 있다. 2024년에 새로운 대입제도를 발표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김지성 정책실장은 “고교학점제의 방향을 부정적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사회나 학교 시스템이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성급하게 추진하는 것은 반대한다. 지방과 대도시권의 교육환경 차이를 줄이는 것이 먼저”라고 말했다.
대입 어떻게 바뀔까…입시전문가에게 물었다
고교학점제로 교육시스템이 바뀌고 있다. 대학입시 제도도 그에 맞게 개편될 전망이다. 입시전문가 3인을 만나 대학 입시의 미래를 짚어봤다. 유성룡 1318대학진학연구소 소장과 정유희 내일드림교육연구소 대표는 고교학점제가 도입되면 수시 중에서도 학생부 종합전형(학종)이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유성룡 소장은 “고교학점제가 전면 도입되면 학생부 교과전형이나 학생부 종합전형에 변화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며 “이 제도가 제대로 도입되려면 학생부 종합전형이 확대돼야 하는데 요즘은 줄어들고 있다”면서 “현재처럼 수능 시험이 치러진다면 고교학점제가 기대하는 효과는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재와 같이 갈수록 비중이 커져가는 수능 중심의 입시제도 하에서는 고교학점제가 큰 영향을 미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정유희 대표도 고교학점제 도입 시 수시에서 학생부 종합전형이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고교학점제의 경우, 성취평가제를 도입해 평가 방식이 절대평가로 바뀐다. 교과 성적을 성취도로만 나타내기 때문에 점수만으로 학생 변별력을 판단하기 어렵다”며 “자신의 진로에 맞는 융합선택과목이나 교과 이외 활동으로 우수성을 나타낼 수 있으므로 학생부 종합전형이 늘어날 것이다. 수능은 각 학교에서 수학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는지 정도로 최소한의 자격고사처럼 변경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른 의견도 있다. 앞선 입시전문가들과 달리 구도윤 레벨업코칭 원장은 논술형 수능이 확대될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구 원장은 “그간 논술형 수능에 대해 ‘필요하지만 기술적으로 불가능’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요즘은 OCR(문자판독장치)과 AI(인공지능) 기술이 좋아짐에 따라 기술적 구현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졌다. 성취 중심으로 평가한다는 고교학점제의 목적과도 잘 맞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구 원장은 대학별 고사 전형이 추가될 수도 있다고도 예측했다. 고교학점제 도입으로 대학·학과에 따라 원하는 이수과목과 성취수준도 달라지기 때문에 각 대학이 독자적으로 시험을 시행하게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의견이다.
이민주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