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단일화=필패’ 우려, ‘안풍’ 잡고 야권 갈라치기 방점…양자·3자구도 동시 대비 전략
여권에 특명이 내려졌다. 한때 러브콜을 보내던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에 대한 본격적인 견제구 날리기다. 1차 목표는 고공행진 중인 안 후보 지지도 상승 폭을 막는 것이지만 그보다는 ‘야권 갈라치기’에 방점이 찍혀 있다. 보수 단일대오 전선을 흔들어 다자 구도를 끌어내면 승산이 높다는 계산이다. 여기엔 ‘보수 단일화=필패’라는 셈법도 한몫했다.
“이러다가 뒤집힐라….” 최근 여권 곳곳에선 보수 단일화를 둘러싼 복잡한 속내가 읽힌다. 특히 안 후보 지지도가 ‘마의 15%’를 넘었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자, ‘안풍(안철수)은 여기까지’라는 한계론과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위기감이 뒤섞이면서 진보진영 전체를 휘감았다. 여권 한 관계자는 안 후보의 지지도 상승에 대해 “생각하지 못한 변수”라며 “보수 대안론이든 한계론이든 민주당으로선 신경 쓰이는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여권이 긴장에 빠진 것은 87년 체제 이후 계속된 ‘보수 우위’ 기울어진 운동장과 무관치 않다. 다른 한 관계자도 “2016년 국정농단 사태 이후 진보 시대가 열렸지만, 정권교체 여론만 봐도 보수는 여전히 건재하다”고 말했다. 최근 격차가 줄어들긴 했지만, 2021년부터 정권교체 여론은 거의 모든 여론조사에서 과반을 웃돌았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문재인 대통령과 차별화에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원사이드(일방적) 게임이었던 2007년 대선을 빼면 87년 체제 이후 모든 대선에서 ‘보수 우위의 기울어진 운동장’이 승부를 갈랐다. 양김(김영삼·김대중)이 분열한 채 치른 제13대 대선에선 대구·경북(TK)을 기반으로 한 노태우 민주정의당 후보가 36.7%의 득표율로 당선됐다. 부산·울산·경남(PK)의 김영삼 통일민주당 후보(YS)는 28.0%, 호남의 김대중 평화민주당 후보(DJ)는 27.1%, 충청의 김종필 신민주공화당 후보(JP)는 8.1%였다. DJ를 뺀 범보수 후보 득표율은 71.9%에 달했다. 이들은 1990년 손을 맞잡고 3당 합당을 통해 민주자유당을 창당했다.
14대 대선에선 민자당 후보로 나선 YS가 42.0%로 승리했다. DJ는 33.8%, 정주영 통일국민당 후보는 16.3%, 박찬종 신정치개혁당 후보는 6.4%, 백기완 무소속 후보는 1.0%였다. DJ와 백기완을 제외한 범보수 후보 득표율은 65%에 근접했다. YS 차남 김현철 동국대 언론정보대학원 석좌교수는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에 1992년 대선 승리 요인에 대해 “우파 연합의 파워가 컸고 영·호남의 지역적인 사이즈 차이가 전체적인 득표율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했다. 범보수 진영이 단일대오로 뭉치면 필연적으로 승리에 가까워진다는 얘기다.
이후 대선에서 진보 진영이 꺼낸 필승 카드는 ‘보수 갈라치기’였다. 15대 대선 때 DJ는 박정희 정권 2인자 JP와 공동정부 구성을 고리로 후보 단일화를 했다. DJ는 1997년 대선에서 40.3%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38.7%)를 1.6%포인트(p) 차로 꺾었다. 한나라당에서 탈당한 이인제 국민신당 후보는 19.2%, 권영길 민주노동당 후보는 3.9%였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이인제 탈당이 DJ 당선에 분수령으로 작용했지만, DJP 연합이 없었다면 국민의 정부는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2002년 대선에선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후보가 재벌 2세인 정몽준 국민통합21 후보와 단일화를 한 뒤 이회창 대세론을 눌렀다. 최종 득표율은 ‘노무현 48.9% vs 이회창 46.6%’. 정치권 한 관계자는 “보수 갈라치기를 한 대선에서 진보 진영이 2%포인트 안팎으로 승리한 점은 눈여겨볼 대목”이라고 했다.
보수와 진보의 일대일 구도였던 2012년 대선 땐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51.6%)가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48.0%)를 3.6%p 차로 이겼다. 반면 범보수 진영이 분열했던 2017년 대선에선 문재인 민주당 후보(41.1%)가 홍준표 자유한국당(24.0%)·안철수 국민의당 후보(21.4%)를 나란히 꺾고 대통령에 올랐다. 유승민 바른정당·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각각 6.8%와 6.2%를 얻었다. 진영 간 득표율로 보면, 범보수(홍준표+안철수+유승민)가 52.2%로, 47.3%에 그친 범진보(문재인+심상정)를 4.9%p 차로 이겼다. 일대일 구도일 땐 보수 진영이, 다자 구도일 땐 진보 진영이 각각 유리하다고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안풍이 대선판에 상륙한 직후 여권이 러브콜을 접고 ‘3자 구도론’을 띄운 것도 이런 배경에서 읽힌다. 친문(친문재인) 강경파인 한 의원은 “민주당 입장에선 3자(이재명·윤석열·안철수) 구도가 가장 유리하다”며 “현실적으로 단일화가 되겠냐. 후보 등록일 전에 성사 못 하면 의미가 없다”고 했다. 여의도 정치권 한 인사도 “역대 대선에서 여론조사를 통해 단일 후보를 낸 것은 2002년 노정(노무현·정몽준) 단일화가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했다. 실제 그랬다. DJP 연합은 여론조사 없이 DJ가 사실상 JP를 흡수한 단일화였다. 2012년 문안(문재인·안철수) 단일화는 대선을 26일 앞둔 11월 23일 안 후보가 중도 사퇴하면서 이뤄진 내상만 남은 연대였다.
여권 인사들이 보는 윤·안 단일화 합의 데드라인은 ‘설 연휴 직전(1월 29일~2월 2일)’이다. 이때 양측이 단일화에 합의해도 약 2주간의 룰 협상을 거쳐, 빨라야 2월 중하순께 최종 후보를 선출할 수 있다. 이 시기를 지나면 ‘후보 등록일(2월 24일)’과 3주간의 ‘공식 선거운동(2월 25일)’ 막이 오른다. 특히 투표용지 인쇄(2월 27일) 전날은 단일 후보 최종 선출의 데드라인이다. 그 이후에도 단일화는 할 수 있지만, 지지층 결집의 효과는 반감된다.
이에 따라 여권은 설 직전까지 안철수 때리기를 통해 보수 갈라치기를 극대화할 것으로 보인다. 당장 민주당은 ‘안모닝(아침마다 안철수 비판)’을 꺼냈다. 당 내부에선 “과연 이 사람이 대통령감인가(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MB(이명박 전 대통령)를 넘어 윤석열 아바타(강병원 최고위원)” 등의 발언이 쏟아졌다.
이안(이재명·안철수) 단일화를 띄웠던 송영길 민주당 대표마저 안 후보를 향해 “정권교체 대안이 되기 어렵다”, “3석 미니 정당이 어떻게 국정을 끌고 가겠느냐”, “일정한 한계가 있을 것” 등으로 비판하자 정치권 안팎에선 ‘이재명발 DJP 연합은 물 건너갔다’는 분석이 나왔다. 송 대표는 2022년판 DJP 연합을 위해 그간 안 후보에게 직접 연락을 취한 것으로 알려졌다.
송 대표 측 관계자는 “송 대표가 안 후보의 인품과 노선 등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하지만 안 후보는 송 대표 제안에 대해 확답하지 않았다고 한다. 민주당 수뇌부를 비롯해 여권 인사들이 안 후보 아킬레스건인 MB 아바타를 재소환하면서 ‘갑철수’ 등으로 때린 것도 이런 전후 사정과 무관치 않다.
다만 민주당 내부에선 ‘안모닝의 속도 조절론’도 고개를 들고 있다. 민주당 인사들 사이에선 “지지도가 급상승했다고 안 후보만 때리면 다시 윤 후보의 지지도만 올라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안 후보 저격에 나선 송 대표가 안 후보를 향해 “윤 후보와 접점이 나오기 어렵다”, “좋은 어젠다를 수용할 사람이 있다면 연합할 수 있지 않겠냐” 등의 강온양면 전략을 구사한 것도 이런 까닭이다. 여기엔 안 후보가 지지도 15% 이상을 계속 유지하면 ‘단일화 없이 독자 완주’할 것이라는 전망도 깔렸다. 득표율 15%는 선거비용 전액 보전의 마지노선이다.
동시에 보수 단일화에 대비한 양자 구도 전략을 짜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서울을 비롯한 일부 수도권 의원들은 “넋 놓고 있다가 2021년 4·7 서울시장 보궐선거 기시감이 발발할 수도 있다”고 점쳤다. 안 후보는 서울시장 보선을 앞두고 20~30%대 지지율을 기록했다. 보수 단일화에서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패했지만, 안 후보는 미니 대선의 일등 공신이 됐다.
특히 최근 일부 여론조사에서 윤 후보 지지도 반등에도 불구하고 안 후보의 지지도가 빠지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자 이에 대비하는 민주당 전략팀 움직임도 빨라졌다. 친문계 재선 의원은 “후보 단일화에 대비를 안 할 수가 없다”며 “중도 외연 확장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가장 시급한 문제”라고 했다.
윤지상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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