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소의 변’ 통해 하나회-보안사 세력 다툼의 희생양 주장…새로운 내용 아니라는 반응 속 또 다른 재판 앞둬
지난 1월 9일 4번째 수감생활을 마치고 출소한 장영자가 자필로 작성한 8쪽 분량의 ‘장영자의 출소의 변’이 1월 12일 중앙일보를 통해 단독 보도되고, 같은 날 매일신문이 단독 인터뷰를 보도했음에도 그리 화제가 되지 못했다. 장영자는 1982년 어음사기사건 등 과거 유죄 판결을 받은 사건들에 대해 재심을 청구하겠다는 입장이다. 또 다시 그의 이름이 화제를 불러 모을 수 있을까.
피해금액이 무려 6404억 원이나 돼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든 어음사기사건으로 장영자가 구속된 것은 1982년 5월이다. ‘이철희·장영자 사건’이라고도 불린 이 사건으로 장영자는 1983년 징역 15년을 선고 받는다.
8쪽 분량의 ‘장영자의 출소의 변’을 통해 장영자는 당시 사건을 “전두환, 노태우 하나회 그룹과 허삼수, 허화평, 이학봉 등 보안사 세력 간의 권력 투쟁의 과정에서 전두환의 처 이순자가 제공한 단초로 인해 현실 같지 않은 사건으로 비화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허삼수 일당의 전략은 전두환과 사돈이 되는 장영자·이철희 부부를 마치 전두환 부부와 모종의 결탁이 있는 권력형 비리로 여론몰이를 해서 전두환을 압박해 하나회가 독식한 권력을 내놓게 하려는 천인공노할 술수의 산물”이라며 “금융범죄가 될 수도 없는 어음사기라는 실체 없는 허수를 잔뜩 부풀려 몇천 억이니 하는 건국 이래 최대 어음사기사건으로 언론을 떠들게 해 일어난 여론을 무기 삼아 벌인 허삼수 일당의 권력투쟁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사건”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장영자는 이순자 씨의 숙부 이규광 씨의 처제로 전두환 씨의 사돈이다.
또한 장영자는 매일신문 인터뷰에서 “숙명여대 메이퀸 출신으로 교육학과를 졸업한 뒤 1970년 초 한 방송국의 영어교육프로그램 ‘잉글리시 자킷’ 대담자로 활동하던 중 정부기관에 스카우트됐다”며 “육군과 정보기관 등에서 1년 가까운 특수훈련을 받은 뒤 27세에 중앙정보부 위장회사인 세양에너지 회장으로 부임한 것이 국내 경제계의 큰손이 되는 계기가 됐다”고 주장했다.
또한 “1981년 결혼한 이철희 씨(전 중정 차장보)가 1970년대 윤필용 사건을 조사했던 신군부와의 악연으로 어려움이 시작됐다”며 “중정이 관리했고 남편이 총책임자였던 일신제강이 1980년 초 부도 처리된 것도 정치 공작”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상황을 살펴보면 이철희·장영자 사건이 벌어지고 7개월 뒤인 1982년 12월 실제로 정무수석비서관 허화평과 사정수석비서관 허삼수가 청와대에서 경질됐다. 당시 상황을 장영자는 하나회 그룹과 보안사 세력의 권력 투쟁이라고 주장했는데 사실 허삼수, 허화평은 ‘보안사 핵심 참모 5인방’이면서 하나회 멤버였다. 그리고 이들이 경질된 까닭은 이규광 씨를 비롯한 전두환 씨 친인척의 2선 후퇴를 주장했기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장영자의 출소의 변’에서 당시 사건이 불거진 계기로 1982년 4월 발생한 의령총기난사사건으로 뒤숭숭한 여론을 언급했는데, 실제로는 1982년 4월 장영자에게 어음사기를 당했다며 공영토건이 검찰에 진정서를 제출해 내사가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지만 장영자는 압도적인 증거가 있다며 1982년 어음사기사건에 대한 재심을 청구하겠다는 입장이다.
뿐만 아니라 장영자는 “김영삼 정권에서 가석방이 취소되고 자동 구속된 사건, 2000년 김대중 정권에서 구화폐 사기단에게 당한 피해자인 장영자를 가해자로 둔갑시켜 김대중 대통령이 특사로 해준 형집행정지를 취소해 자동 구속된 사건, 살벌한 적폐청산 기수인 윤석열 검찰에 의해 2018년 황당하게 구속된 사건 등을 동시에 재심 착수한다”고 밝혔다.
장영자는 1982년 구속돼 1983년 징역 15년형을 선고받아 수감생활을 하다 10년 뒤인 1992년 3월 가석방됐다. 그리고 출소 1년 10개월 만인 1994년 1월 140억 원의 차용사기 사건으로 구속돼 징역 4년을 선고 받는다. 1998년 8·15 특사로 출소했으나 2년 뒤인 2000년 구권 화폐 사기사건으로 구속돼 대법원까지 가서 징역 10년이 확정됐다. 그런데 여기에 1992년 가석방 당시 감형된 징역 5년이 더해져 15년의 수감생활을 하고 2015년 1월 22일 만기 출소한다. 그리고 다시 2018년 사기 등의 혐의로 구속돼 징역 4년을 선고받아 네 번째 수감생활을 하다 2022년 1월 9일 만기 출소했다.
‘장영자의 출소의 변’에서 김영삼 정권이 쿠데타 식으로 금융실명제를 실시했다고 주장했는데 사실 국내에서 금융실명제에 대한 본격 논의가 시작된 계기가 바로 ‘이철희·장영자 사건’이다. 이 사건 직후 당시 경제수석비서관이던 김재익 씨가 ‘제2의 이철희‧장영자 사건’을 막기 위해 전두환 씨에게 금융실명제 시행을 건의했지만 결국 무산됐다. 이후 김영삼 정부가 들어서고 1993년 8월 12일 전격적으로 금융실명제가 시행됐는데 장영자가 이를 ‘쿠데타 식’이라고 언급한 것이다.
또한 ‘장영자의 출소의 변’에서 2000년 구권 화폐 사기사건 당시를 언급하며 “김대중 대통령이 특사로 해준 형집행정지를 이희호 여사의 지시로 신승남 당시 대검 차장이 총대를 메고 취소했다”고 주장했다.
사실 장영자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도 인연이 있다. 장영자의 고종사촌 언니인 차용애 여사가 김홍일, 김홍업 형제의 친모인 김 전 대통령의 첫 부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차용애 여사가 1959년 6월 사망했고 1962년 김 전 대통령이 이희호 여사와 결혼해 ‘이철희·장영자 사건’ 당시는 이미 인척관계가 소멸되고도 20여 년이 지난 뒤였다. 이런 관계가 장영자가 ‘이희호 여사의 지시’를 언급한 배경이 된 것으로 보인다.
결국 장영자는 유죄로 징역형을 받았던 4번의 사건을 모두 재심청구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렇지만 장영자는 구속돼 재판을 받을 때마다 자신은 피해자이며 권력투쟁 희생자라는 주장을 펼쳐왔던 터라 이번 ‘장영자의 출소의 변’도 그리 새로운 내용은 아니라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다만 재심을 청구하겠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힌 것은 처음이라 눈길을 끌지만 법원이 재심 청구를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게다가 재심보다 먼저 장영자를 기다리는 재판이 있다. 이번에는 2017년 7월 위조된 154억 2000만 원짜리 자기앞수표를 농산물 공급 계약 선급금으로 준 혐의로 기소된 사건이다. 물론 이번에도 장영자는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출소를 앞두고 재판에서 구속 여부가 논의됐는데 재판부가 “방어권 보장을 위해 구속하지 않겠다”고 결정해 1월 9일 출소는 정상적으로 이뤄졌다. 1월 27일로 다음 재판이 예정돼 있다. 자칫 이번에도 유죄가 확정되면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다섯 번째 수감생활이 시작될 수도 있다.
한편 장영자는 매일신문 인터뷰에서 “경주 남산 인근에 여생을 보낼 단독주택을 알아보고 있다. 공기 나쁜 서울 대신 과거 인연이 깊은 경주에서 노후를 보낼 계획”이라며 “1970년대 박정희 대통령이 ‘경주를 일본 나라시 같은 역사관광도시로 만든다’는 계획에 따라 불국사 인근과 보문단지 개발 등에 적극 참여했었다. 향후 평범한 경주시민으로 살고 싶다”고 말했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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