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 비중 24%’ 중국과 관계에 찬물 우려…정 부회장 “전적으로 제 부족” 사과
신세계그룹 입장에서는 '오너리스크'로 번질까 노심초사하고 있는 분위기다. 주주와 직원들은 정용진 부회장의 입을 불안한 시선으로 주목하고 있다. 중국에 진출한 기업들에 피해가 가지 않을까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정용진 부회장은 그동안 꾸준히 SNS을 통해 대중과 소통해왔다. 대부분 신변 이야기였고 대중의 반응도 호의적이었다. 우리나라 재계 분위기에서 보기 드물게 꾸밈없고 왕성한 소통을 보여준다는 칭찬도 있었다.
하지만 지난해 11월부터 정용진 부회장은 SNS에 ‘난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글을 올리면서 이념적 성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급기야 지난주에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포함된 기사를 게재한 뒤 ‘멸공(공산당을 멸하자)’이란 단어를 해시태그 하면서 본격적으로 불을 지폈다. 논란이 일어나자 정용진 부회장은 “나의 멸공은 중국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오로지 우리 위에 사는 애들(북한)에 대한 멸공”이라며 수습하려 했지만 논란은 오히려 더 커져나갔다.
경제적으로 중국과 교집합이 큰데 정 부회장의 잇단 ‘멸공’ 발언으로 양국 간 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이어졌다. 우리나라 무역에서 차지하는 중국 비중은 1992년 4%에서 2020년 24.6%로 확대됐다. 정용진 부회장의 발언이 미칠 한·중 양국 간 관계에 경제인들이 예의주시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정용진 부회장의 멸공 구호는 신세계와 이마트의 중국사업이 큰 손해를 보고 철수한 데 비롯했다는 해석이 나왔다. 2017년 사드배치 문제로 한국과 중국의 관계가 냉각기에 들어서자 중국의 한한령이 발동하면서 우리 기업들이 중국 시장에서 고전했다. 신세계그룹도 그중 하나였다. 그룹 주력 계열사 이마트는 1997년 중국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한한령의 고비를 넘지 못하고 2017년 완전 철수했다.
하지만 신세계그룹의 사업은 여전히 중국과 관계가 있다. 신세계그룹 화장품 계열사 신세계인터내셔날은 중국 시장 진출을 위해 고급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신세계백화점 면세사업은 중국 관광객의 영향이 절대적이다. 이 때문에 정용진 부회장의 최근 행보가 신세계그룹 총수로서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주주와 직원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신세계그룹 주주들과 직원들은 불안에 떨고 있다. 정용진 부회장의 멸공 논란이 한창이던 1월 10일 신세계 주가는 전일 대비 6.8% 하락하며 주주들이 패닉 상태에 빠졌다. 국내 주요 증권사 한 관계자는 “기업 총수로서 위치를 망각한 것 같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마트 노조도 “기업인 용진이형은 멸공도 좋지만 본인이 해온 사업을 먼저 돌아보라”는 성명서를 냈다. 서울에 위치한 한 대학교 교수는 “중국 시장에서 정용진 부회장의 발언이 부정적으로 알려질 경우 우리 기업의 중국에서의 경제 활동에 불이익이 발생할 수 있다”고 걱정했다. 실제로 중국 매체도 정 부회장의 행보에 관심을 보였다. 지난 10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정용진 부회장의 ‘멸공’ 논란에 정치인들이 가세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대기업 CEO 출신인 기업경영인 A 씨는 “오너 총수여서 별다른 영향을 생각지 못하고 자신의 의사를 표현한 것 같은데, 일반 전문경영인이라면 기업 이미지를 실추시킨 해사행위로 해임 사유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더욱이 정용진 부회장은 신세계그룹 계열사 중 이마트 지분 18.56%(지난해 9월 말 기준)를 가지고 있는 것이 유일하면서도 오너 총수로 군림하고 있다. 신세계그룹은 7개 상장사와 40개 비상장사로 구성돼 있는데, 1개 회사의 지분 18.56% 가지고 있는 정용진 부회장이 47개 회사의 리스크로 부각될 수 있다.
표현의 자유가 제한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남상욱 외교부 전 대사는 “한국처럼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 나라에서 개인의 신념이나 판단에 대한 발언은 존중받아야 한다”며 “개인의 발언을 사회가 억누르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고 말했다.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자 정용진 부회장은 13일 끝내 자신의 SNS에 “나로 인해 동료와 고객이 한 명이라도 발길을 돌린다면 어떤 것도 정당성을 잃는다”며 “저의 자유로 상처받는 분이 있다면 전적으로 제 부족입니다”라고 사과했다. 이에 따라 정용진 부회장에서 촉발된 ‘멸공’ 논란이 일단락될지 관심이 쏠린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사과 후에도 정용진 부회장이 또 어떤 말과 행동을 할지 예측하기 힘들다고 보고 있다. 앞서 정용진 부회장은 ‘멸공’이란 단어를 쓰지 않겠다고 한 후 북한의 미사일 기사에 멸공을 연상케 하는 ‘OO’ 표현을 달아 논란을 오히려 더 키우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신세계그룹 관계자는 “정용진 부회장의 개인적인 발언에 대해 회사 차원에서 드릴 말씀이 없다”고 말했다.
박호민 기자 donkyi@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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