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 FA 46명으로 ‘1000억 시대’ 열 듯…‘두 번째 FA’ 양의지, 김현수 기록 넘을지 관심
심지어 이런 '광풍'은 일시적인 현상으로 끝나지 않을 듯하다. 올 시즌이 끝난 뒤 열리는 2023년 FA 시장은 더 엄청난 '돈폭탄'을 예고하고 있다. 선수 15명이 FA 자격을 행사했던 올해 시장과 달리 내년에는 40명 안팎의 선수가 대거 시장에 쏟아져 나오기 때문이다.
이유가 있다. KBO 이사회는 지난해 1월 '2022년 시즌 종료 후부터 현행 9년(대졸 8년·한 시즌은 1군 등록일수 145일 이상)인 FA 취득 기간을 8년(대졸 7년)으로 1년 단축한다'는 변경안에 합의했다. 따라서 올 시즌이 끝난 뒤엔 기존 규정을 충족한 선수들과 새 규정의 첫 수혜자들이 동시에 FA 자격을 얻는다.
실제로 2021시즌 종료 시점에 집계된 올해 예비 FA의 수는 46명에 이른다. 이들 중 현 소속팀 SSG 랜더스와 이미 장기계약을 한 최정·박종훈·문승원·한유섬, 지난 시즌을 끝으로 은퇴한 정상호 등을 제외해도 그 수가 올해의 두 배를 훌쩍 뛰어넘는다. 시장 판도를 뒤흔들 A등급 선수가 포지션별로 포진했고, 보상선수를 내주지 않아도 되는 C등급 선수도 일부 포함돼 선택의 폭이 넓다. 내년 FA 시장이 역대 최초로 총액 1000억 원 시대를 열 거라는 예상이 나오는 이유다.
#초대박 기회 날린 한현희
기존 기준을 채우고 FA가 되는 선수 중엔 키움 히어로즈 투수 한현희와 NC 다이노스 내야수 박민우가 최대어로 꼽힌다. 둘은 공교롭게도 지난 시즌 도중 야구계를 강타한 코로나19 방역수칙 위반 사태의 장본인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둘 다 도쿄올림픽에 출전하는 야구 국가대표팀 주축 멤버로 뽑힌 상태였지만, 태극마크를 반납하고 중징계를 받았다. 특히 지난 시즌을 끝으로 FA가 될 수 있었던 한현희는 KBO로부터 받은 36경기 출전정지 징계와 키움 구단이 자체적으로 내린 15경기 추가 출전정지 징계를 소화하느라 FA 자격 취득이 1년 미뤄졌다.
한현희 입장에선 일생일대의 기회를 놓친 셈이다. 지난해 FA 시장은 거의 전 포지션에서 과열됐지만, 투수 포지션만은 잠잠했다. 투수 FA가 KIA 타이거즈 출신 양현종과 삼성 라이온즈 출신 백정현뿐이라서다. 메이저리그 도전을 끝내고 돌아온 양현종은 처음부터 원 소속팀 KIA를 최우선 순위로 뒀다. 그는 KIA의 대표 프랜차이즈스타인 데다 미국 진출 직전 시즌인 2020년 연봉 23억 원을 받았다. 다른 팀이 그를 영입하려면 보상금으로만 23억 원을 더 지출해야 했다. 양현종은 사실상 KIA로 협상 창구를 단일화했고, 4년 최대 103억 원에 계약해 원 소속팀에 잔류했다.
백정현은 지난해 27경기에서 14승 5패, 평균자책점 2.63을 기록해 데뷔 후 최고 시즌을 보냈다. 하지만 2021년 성적을 제외하면 '특급'으로 분류되기 어려운 투수였던 데다 나이도 30대 중반으로 많은 편이다. 일부 구단이 선발투수감으로 관심을 보이기도 했지만, 원 소속팀 삼성보다 많은 금액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백정현 역시 삼성과 4년 최대 38억 원에 사인하고 대구에 남았다.
이런 상황에서 한현희가 FA로 나왔다면, 기대를 뛰어 넘는 계약을 따냈을 가능성이 크다. 풀타임을 소화할 수 있는 20대 후반 선발 투수는 언제나 거의 모든 구단의 1순위 영입 후보다. 심지어 총액 100억 원 이상 계약 선수가 5명이나 나온 초대형 시장에서 한현희 같은 국가대표급 선발 투수 자원은 프리미엄이 붙고도 남는다. 강속구 사이드암 투수라는 희소성도 강점이다. 실제로 일부 구단은 시즌 초부터 한현희가 FA로 풀리기만 기다렸다는 후문이다.
한현희 역시 지난 시즌을 앞두고 연봉을 동결하면서 FA 이적을 앞둔 만반의 준비를 했다. 실력만으로는 '최대어급'이지만 FA 등급을 'B'로 낮춰 보상 조건을 완화하려는 전략이었다. 하지만 정작 한현희 스스로 야구 외적인 문제를 일으켜 자기 발등을 찍었다. 그는 올해 1년을 더 뛰어야 '자유의 몸'이 된다.
물론 한현희가 2022시즌을 부상 없이 소화하면서 좋은 성적을 낸다면, 다음 겨울 충분히 대박 계약을 이끌어낼 수 있다. 선수 자신도 1년의 아쉬움을 만회하기 위해 온 힘을 쏟아부을 공산이 크다. 다만 올 시즌이 끝난 뒤엔 선발과 불펜을 가리지 않고 주목할 만한 투수 FA가 많이 나온다. 한현희 입장에선 SSG 언더핸드 선발 박종훈이 미리 장기 계약을 하고 팀에 남기로 한 게 호재일 수 있다. 이 외에도 LG 임찬규와 함덕주, 키움 정찬헌, SSG 이태양, NC 임창민 이재학 원종현, 한화 장시환 등이 올 시즌을 준비하는 투수 예비 FA다.
NC 박민우는 한현희보다 더 무거운 징계를 받았다. KBO는 72경기 출전정지, NC 구단은 25경기 출전정지를 각각 부과했다. 지난해 후반기를 통째로 건너뛰었고, 올 시즌이 개막한 뒤에도 27경기를 더 뛸 수 없다. 5월 초나 돼야 팀에 복귀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박민우가 예년과 같은 성적으로 무사히 올 시즌을 마친다면, 내야수 FA 중 단연 최대어라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100억 원 클럽' 차기 가입자가 될 게 유력하다.
2014년부터 NC 주전 멤버로 뛴 박민우는 지난해까지 통산 934경기에서 타율 0.326을 기록해 역대 3000타석 이상 소화한 타자들 중 타율 1위에 올라 있다. 장타율과 출루율을 합한 OPS가 0.930이고, 도루도 196개를 해냈다. 공·수·주를 모두 갖춘 특급 내야수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병역 대체 복무 혜택을 받아 나이도 아직 29세다. 여러모로 '대박'의 조짐이 보인다.
박민우 외에도 알짜배기 내야수들이 여럿 시장에 나온다. 박민우와 한 팀에서 뛴 노진혁은 장타력을 갖춘 유격수다. 두 번째 FA 자격을 얻는 삼성 김상수는 여전히 수비에서 국내 최정상급 안정감을 자랑하는 베테랑이고, 발 빠르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심우준은 지난해 우승팀 KT 위즈의 주전 유격수로 활약하면서 기량이 더 늘었다.
FA 자격을 유지하는 서건창도 시장에 나올 가능성이 크다. 그는 지난 시즌을 앞두고 연봉을 자진 삭감하면서 B등급을 노렸지만, 시즌 도중 키움에서 LG 트윈스로 트레이드 되면서 팀 내 연봉 순위가 올라가고 A등급으로 상향 조정되는 불운을 겪었다. 올해 성적(타율 0.253)도 썩 좋지 않았던 터라 올 시즌 명예회복 후 FA 대박에 재도전한다.
#FA 기간 단축 수혜자 구자욱
삼성 외야수 구자욱은 FA 기간 단축의 첫 수혜자다. 2015년 1군 데뷔 후 지난해까지 7년간 꾸준히 100경기 이상 출전하면서 주전으로 활약한 그는 올 시즌까지 8년을 무사히 채우면 이전의 FA들보다 1년 먼저 시장에 나온다.
구자욱은 지난 7시즌 동안 통산 863경기에 출전해 타율 0.315, 홈런 118개, 562타점, 653득점, 104도루를 기록했다. 매 시즌 두 자릿수 도루를 해낼 만큼 발도 빠른 편이다. '삼성 왕조'의 끝자락에서 출발한 그는 팀의 침체기를 거쳐 지난해 6년 만의 포스트시즌 진출까지 함께 일구면서 차근차근 팀의 간판스타로 성장했다. 특히 지난 시즌 타율 0.306, 홈런 22개, 88타점, 107득점, 27도루로 활약하면서 데뷔 후 처음으로 외야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품에 안았다. 올겨울에는 여러 TV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이름과 얼굴도 널리 알리고 있다. 외야수 포지션에서 가장 주목 받는 예비 FA로 꼽힌다.
1년 뒤 구자욱의 계약서에 찍힐 금액은 올 시즌 성적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다. 그는 꾸준히 삼성의 대표 외야수 중 한 명으로 활약했지만, 올해 FA 시장에서 대형 계약을 한 국가대표 출신 외야수들만큼 큰 임팩트를 남기지는 못했다. 올해는 구자욱이 공수에서 진면목을 보여줘야 할 시즌이다. 삼성의 리드오프이자 외야 수비의 핵심이던 박해민이 LG로 떠난 뒤라 그의 역할이 더 중요해졌다. 만약 구자욱이 팀의 기대대로 올해 리그 정상급 활약을 보인다면, 대박 계약은 떼어 놓은 당상이다. 대어급 FA 외야수가 즐비했던 이번 스토브리그와 달리 다음 시장엔 김헌곤(삼성), 채은성(LG), 권희동(NC) 외에 눈에 띄는 외야수 FA가 보이지 않아서다.
예비 FA 구자욱이 연봉을 얼마 받을지도 야구계의 관심거리다. 구자욱은 그동안 이름값에 비해 연봉이 적은 선수로 알려져 왔다. 2015년 신인왕 경쟁을 한 김하성(샌디에이고 파드리스·당시 키움)의 가파른 연봉 상승세와 비교돼 더욱 그랬다. 심지어 구자욱은 연봉 인상 대상자였던 2019년엔 아예 구단에 연봉을 백지 위임했다가 5000만 원을 올려받는 데 그쳤다. 결국 2020년 연봉 계약을 앞두고는 기존 3억 원에서 2억 6000만 원으로 삭감하려는 구단에 맞서 진통을 겪다가 최대 3억 원(보장액 2억 8000만 원, 인센티브 2000만 원)으로 어렵게 합의하기도 했다. 지난해엔 이 금액에서 6000만 원 오른 3억 6000만 원을 받고 뛰었다.
예비 FA엔 대부분 연봉 프리미엄이 붙는다. 주전급 FA가 다른 팀으로 이적할 경우 보상금을 최대한 많이 받기 위한 구단들의 안전장치다. 실제로 지난해 NC는 예비 FA 나성범의 연봉을 5억 원에서 7억 8000만 원으로 올려 그가 KIA로 이적한 뒤 보상선수 외에도 보상금 15억 6000만 원을 받았다. 다음 FA 시장 최대어 중 하나인 구자욱 역시 지난 시즌 성적이 좋아 연봉이 큰 폭으로 오를 수 있다. 다만 삼성은 다른 팀에 비해 예비 FA 프리미엄을 덜 반영하는 구단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 예비 FA였던 박해민의 연봉이 3억 원에서 3억 8000만 원으로 올랐는데, 이마저도 이전의 내부 FA들과 비교하면 꽤 높은 인상률(26.7%)로 여겨졌을 정도다. 구자욱의 데뷔 첫 5억 원 돌파 여부가 주목받는 이유다.
#양의지 FA 시장 태풍 몰고올 듯
이렇게 대어급 신규 FA가 쏟아지는데도 여전히 내년 FA 시장의 '최대어'는 NC 포수 양의지로 통한다. 30대 중반 나이에 여전히 현역 최고 포수 자리를 지키고 있는 그는 올 시즌이 끝난 뒤 두 번째 FA 자격을 얻는다. 다음 FA 시장에 다시 한 번 태풍을 몰고 올 1순위 후보다.
양의지는 2019년 두산에서 NC로 이적하면서 역대 포수 최고액인 4년 총액 125억 원에 사인했다. NC는 그 후 창단 첫 우승을 했고, 양의지의 기량은 녹슬지 않았다. 타격과 수비 모두 마찬가지다. 다음 FA 시장에 박세혁(두산), 유강남(LG), 박동원(키움), 이재원(SSG) 등 각 팀 주전 포수가 줄줄이 나오지만, 양의지를 뛰어넘는 계약은 나오기 어렵다. 오히려 양의지의 행선지에 따라 이들의 계약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양의지는 2020년 골든글러브 포수 부문 투표에서 총 유효표 342표 중 340표를 얻어 99.4%의 역대 최고 득표율 신기록(종전 2002년 지명타자 마해영 99.3%)을 세웠다. 이 황금장갑은 양의지의 통산 6번째 포수 골든글러브였다. 경쟁자 없는 최고 포수라는 점을 다시 확인했다.
지난해에는 골든글러브 포수 부문 후보 선정 기준(720이닝)을 채우지 못했다. 시즌 초 팔꿈치에 공을 맞은 뒤 후유증을 앓았고, 도쿄올림픽에 출전했다가 부상이 더 심해졌다. 포수로 출전한 경기는 45경기(선발 출전 38경기)뿐. NC 이적 후 가장 적은 302⅓이닝 동안만 포수 마스크를 썼다.
그럼에도 양의지는 다시 7번째 골든글러브를 받았다. 지명타자로 출전하면서 141경기에서 타율 0.325, 홈런 30개, 111타점, 장타율 0.581를 기록했다. 타점과 장타율은 리그 1위였다. 포수로 자주 뛰지 못한 아쉬움을 공격력으로 만회한 그는 지명타자 부문 후보에 올라 투표인단 304명 중 74.3%의 지지(226표)를 얻었다. 그리고 "올해는 다시 포수로 골든글러브에 도전하겠다"고 했다.
양의지가 올해 말 도전할 기록은 황금장갑 말고 또 있다. 양의지와 두산에 함께 입단한 김현수는 2018년 LG와 4년 총액 115억 원에 사인한 뒤 2022년 또 한 번 LG와 4+2년 최대 115억 원에 FA 계약했다. 두 번의 FA 계약으로 최대 230억 원을 받게 되면서 FA 사상 최고 액수를 작성했다. 이미 125억 원을 손에 넣은 양의지는 지난 3년간 대체 불가의 활약으로 이름값과 존재감을 더 키웠다. 남은 1년이 무사히 흘러간다면, 양의지가 계약서에 사인하는 순간 KBO리그 FA의 최고액이 다시 쓰일 것으로 보인다.
배영은 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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