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다 보니 알겠다. 나는 여전히 문명이 무너지고 세워지고 무너지고 세워지면서 만들어내는 이야기들을 좋아하고, 어머니는 이야기보다는 눈이 시원해지는 지중해 바닷가와 끝없이 펼쳐지는 밀밭, 올리브 밭, 해바라기 밭에 감동한다는 것을. 노랗게 활짝 핀 해바라기 밭을 보고 어머니가 혼자 말 하듯 입을 연다. 햇빛이 좋으니 해바라기들이 탐스럽구나!
‘해바라기’라는 말, 말도 참 이쁘다. 해를 바라 해바라기 아닌가. 영어의 선플라워(Sunflower)보다 훨씬 은유적이다. 그 아름다운 해바라기 밭을 보는데, 고흐가 그린 수많은 해바라기들이 겹쳐진다. 저 노란 음에 도달하기 위해 고흐는 그렇게 많은 해바라기를 그렸나보다.
해바라기 밭을 지나는데 가이드의 눈에 열정이 들었다. 뭔가 알려주고 싶은 얼굴을 하고, 도전적으로 질문을 한다. 해바라기가 언제까지나 ‘해 바라기’일까요? 해바라기는 만개할 때까지만 해 바라기를 하다가 만개한 이후부터는 해를 등진단다. 재미있었다. 충분히 사랑받은 후의 사랑이 집착이듯, 뜨거운 햇살로 만개한 후 해를 등질 줄 모르는 해바라기는 열매를 영글게 할 수 없겠다.
그러고 보니 고흐의 해바라기들이 그렇게 타오르면서도 바람에 쓸리고 쓸린 것처럼 보인 이유들을 알겠다. 그들은 고통과 고독을 삶으로 받아들이며 오롯하게 자기만의 시간으로 침잠한 해바라기들이었다. 사실 진정한 사랑 후에 남는 것은 고독이고, 고독을 견디는 힘이 아닐까. 그 힘으로 자기를 긍정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나는 고흐를 좋아한다. 해를 등진 해바라기 같은 그의 숙명을 사랑하고, 그의 순수를 사랑하고, 그의 그림들을 사랑한다. 지금 전시되고 있는 <오르세 미술관전>에 그리도 관심을 보인 것도 고흐 때문이었다. 물론 예술의 전당에서 열리고 있는 <오르세 미술관전>에는 좋은 작품이 많이 왔다. 그렇지만 역시 가장 빛나는 작품은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이었다. 고흐는 어떻게 그렇게 거침없는 붓 터치로, 마음을 다 담은 그림을 그릴 수 있었을까? ‘별이 빛나는 밤’을 보면 분명히 알겠다. 고흐에게 그림은 길이고, 혈관이고, 생명이었음을.
고흐는 테오에게 캔버스에서 별빛 터지는 소리가 들린다고 썼다. 그는 얼마나 독특한 운명이었기에 별빛 터지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걸까? 연인도 떠나고 친구도 떠나고 마침내 물감 살 돈도 없었던 고흐, 그 팍팍한 삶이 앗아간 꿈이 저렇게 별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부활한 것은 아닐까?
아무래도 그의 운명은 해를 등진 해바라기 같은 것 아니었을까? 빛나는 태양의 사랑을 받고만 싶어 하는 사람들은 모른다. 빛나는 시간이 끝나고 난 뒤의 시간에서 일어나는 삶의 오묘한 변화를. 빛나고 난 뒤의 시간, 해를 등진 해바라기의 시간이 없다면 새로운 세상은 열리지 않는다. 뜨거운 사랑 후에 해를 등지고는 어느새, 해를 닮아버린 자신의 에너지로 고독하게 열매를 영그는 해바라기가 아름답다.
수원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