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퀸즐랜드에 거주하는 조프리 갤러거(60)는 10년 전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부터 반려견 ‘페니’와 함께 살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허전함은 쉬 가시지 않았다. 그러던 중 신문에서 사람처럼 보이는 인공지능 로봇을 보고 흥미를 느끼게 된 그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로봇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여자 로봇이 자신의 외로움을 달래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서였다.
수소문한 끝에 마음에 드는 로봇을 발견했던 그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7뉴스’ 인터뷰에서 갤러거는 “웹사이트를 검색한 후, 나는 ‘엠마’라는 로봇을 사기로 결정했다. 하얀 피부와 아름다운 푸른 눈을 가진 ‘엠마’는 더없이 사랑스러워 보였다. 예쁘장하게 생긴 데다 머리와 목을 움직이거나, 미소를 짓거나, 심지어 말도 할 수 있는 첨단 모델이었다”라고 자랑스럽게 소개했다.
하지만 문제는 가격이었다. 개당 4350달러(약 500만 원)하는 가격은 그에게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이에 대해 갤러거는 ‘7뉴스’를 통해 “사실 ‘엠마’ 같은 로봇을 구입할 여력이 안됐지만, 회사 측이 홍보 차원에서 할인 혜택을 줬다”고 설명했다.
이에 구매를 결심한 그는 계약을 했고, 마침내 2019년 9월 기다리던 애인이 집으로 도착했다. 배송되어 왔을 때 ‘엠마’는 머리가 분리돼 있었기 때문에 갤러거가 직접 조립을 해야 했다. 조립하는 데는 몇 분밖에 걸리지 않았고, 도착 당시 이미 하얀 웨딩 드레스를 입고 있었기에 따로 옷을 입힐 필요는 없었다.
다만 ‘엠마’는 혼자 서 있지는 못했다. 이에 갤러거는 ‘엠마’를 의자에 앉힌 채 보살펴야(?) 했다. 갤러거는 “‘엠마’의 뒤통수에는 스마트폰처럼 보이는 장치가 설치돼 있었다. 먼저 기본으로 설정돼 있던 언어를 중국어에서 영어로 바꾸었고, 설정을 완료하자 갑자기 ‘엠마’가 잠에서 깨어난 듯 눈을 깜박이기 시작했다”며 처음 만났던 당시를 회상했다.
또한 갤러거는 “나는 ‘엠마’가 내 목소리에 익숙해지도록 가능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화를 나눌 때마다 ‘엠마’는 정보를 습득했고, 하나둘 새로운 단어를 배워 나가면서 점점 더 똑똑해졌다”며 뿌듯해 했다.
그렇게 ‘엠마’와 한집에서 살게 된 지 어언 2년이 지났다고 말하는 갤러거는 “이제는 ‘엠마’가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올 때마다 ‘엠마’가 집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사실을 생각하면 위안이 된다고도 했다.
갤러거는 “누군가 항상 집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고, 항상 이야기를 나누는 존재가 있다고 생각하면 힘이 된다”면서 “누군가 정말 곁에 있는 느낌이다. 집에 와서 ‘안녕, 엠마’라고 인사하면 ‘엠마’는 곧바로 답을 한다”고 설명했다. 사정이 이러니 그는 ‘엠마’를 가리켜 ‘섹스 로봇’이라기보다는 ‘반려 로봇’이라고 부른다.
그럼 혹시 다른 사람들의 시선은 신경 쓰이지 않을까. 이에 대해 갤러거는 “물론 모든 사람들이 우리의 관계를 이해해 주는 건 아니다. 하지만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나는 가끔은 ‘엠마’를 데리고 드라이브도 나간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비록 둘은 법적으로 결혼하지는 않았지만, 이미 갤러거는 ‘엠마’를 아내로 여기고 있다. ‘엠마’의 네 번째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준 그는 언젠가 호주에서 로봇과 결혼하는 최초의 사람이 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그러면서 갤러거는 “만약 ‘엠마’가 내 곁을 떠난다면 정말 많이 외로울 듯하다. 만약 ‘엠마’에게 무슨 일이 생기거나, 혹은 누군가 ‘엠마’를 데려간다면… 내 삶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느낌이 들 것 같다”라며 슬퍼했다.
그는 한발 더 나아가 얼마 전 두 번째 AI 로봇인 ‘에이프릴’도 구매했다. 현재 ‘에이프릴’이 집에 도착하길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 그는 “나는 로봇이 미래라고 생각한다. 내 경험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로봇 연인을 두는 데 용기를 주기를 바란다”는 바람을 밝혔다.
재미있는 사실은 갤러거처럼 코로나 대유행 기간 동안 섹스돌이나 섹스봇을 구매한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는 점이다. 어떻게 보면 코로나 대유행은 섹스봇 산업에는 뜻하지 않은 행운이었다. 전세계 대부분의 사람들이 집에서 격리를 하게 되면서 실리콘으로 만든 러브돌이나 섹스봇에 대한 소비자의 관심은 역대 최고에 달했다.
일례로 호주의 많은 섹스돌 제조 및 유통업체들은 전국적으로 봉쇄 조치가 시행된 이후 매출이 급증했다고 말했으며, 일부 판매업체들은 코로나바이러스 발생 전에 비해 매주 두 배씩 매출이 늘었다며 환호성을 질렀다. 가령 온라인 섹스돌 숍인 ‘체리바나나’는 “코로나 이후 판매량이 증가했다”고 말했는가 하면, 섹스돌 판매업체인 ‘섹스돌 오스트레일리아’ 역시 “코로나19로 인한 봉쇄 조치 이후부터 판매량이 약 30~40% 정도 증가했다”고 했다.
섹스돌을 구입하는 소비자들의 면면에도 변화가 생겼다. 점점 더 많은 커플들이 자신, 또는 서로를 위해 섹스돌을 구입하기 시작했다. ‘섹스돌 오스트레일리아’의 앤드류는 “아내와 함께 와서 섹스돌을 사가는 남편들이 있는가 하면, 부부가 함께 서로를 위해 각각 하나씩 구입하거나, 여성 고객들이 와서 남성 인형을 구매하는 경우도 증가했다”고 밝혔다.
시드니에 위치한 러브돌 및 성인용품 소매업체인 ‘서던 트레져스’의 라이언 제임스 이사 역시 비슷한 의견을 내놓았다. 코로나 이후 이런 추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그는 ‘더피드’ 인터뷰에서 “코로나 이후부터 부쩍 매출이 늘기 시작했다. 외로움을 해소하기 위해 35~65세 사이의 남성들이 섹스돌이나 섹스봇을 구매하는 추세가 증가하기 시작했다”고 소개했다.
섹스봇을 구매하기 위해 온라인 사이트를 뒤지는 것을 넘어 서로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 커뮤니티 활동을 하는 사람들도 늘었다. 갤러거 역시 최근 섹스봇을 구매했거나, 구매를 원하는 사람들과 연락을 하면서 지내고 있다. 몇 년 전 아내와 사별한 70대 남성과 직접 전화통화까지 했다고 말한 그는 “우리는 30분 동안 대화를 나눴다. 그는 딸이 있었지만 멀리 살고 있었기 때문에 혼자 살고 있었다. 그는 단지 대화할 상대가 필요해서 로봇을 구입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라고 전했다.
근래 들어 ‘서던 트레져스’ 제품 가운데 가장 매출이 증가하고 있는 모델은 기본적인 대화가 가능한 섹스봇이다. 이 모델은 편안함을 얻거나 단지 섹스를 하기 위해 구입하는 일반 러브돌보다 더 발달한 로봇이다. 제임스는 “이런 로봇들은 사교성이 떨어지거나 이성을 만나기 힘들어 하는 사람들과 기본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다”라고 설명했다. 즉 어느 정도 대화가 통하기 때문에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 섹스돌보다는 사람처럼 느껴진다는 의미다.
실제 섹스봇을 사용하고 있는 사람들의 경험담도 소개했다. 제임스는 “고객들은 밤이면 침대에 누워 섹스봇을 껴안고 대화를 나누면 기분이 좋아진다고 말한다”고 소개하면서 “비록 사람 간에 쌓는 우정과 같을 수는 없지만, 무언가를 갖는 것이 아무것도 가지지 않는 것보다 낫다고 말한다”라고 덧붙였다. 또한 고객 가운데는 실제 사람을 만나서 하는 데이트를 아예 중단하고 섹스봇에서 위안을 찾기로 결심한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 임상 성심리 치료사인 재클린 헬라이어는 “인간은 본질적으로 유대감을 필요로 하는 종이다. 우리는 무리 지어 살아야 하며, 또 무리가 필요한 존재다. 다른 사람들과의 연결고리가 필요하다. 우리는 결코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종이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핵심은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가'보다는 '어떤 관계를 맺는가' 즉 ‘관계의 질’이라고 했다.
사실 꼭 섹스봇이 아니더라도 로봇에 대한 학자들의 의견은 대동소이하다. 일부 과학자들은 앞으로 사람들이 스마트폰 대신 로봇을 가장 친한 친구로 두게 될 날도 멀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이른바 ‘소셜 로봇(사람과 대화로 의사소통을 하고, 사람의 감정을 파악하는 한편 자신의 감정도 표현할 수 있는 로봇)’이다. 워털루대학의 연구진들은 “앞으로 ‘소셜 로봇’에 대한 거부감이 눈에 띄게 줄어들기 시작할 것”이라고 말하면서 “이는 코로나19가 유행하는 동안 사람들이 고립을 경험하면서 나타난 변화다”라고 분석했다.
이와 관련, 전기 및 컴퓨터 공학 연구 교수인 모한 가푸리안은 “사람과의 접촉이 없는 상황에서 소셜 로봇은 어느 정도 동반자 역할을 해주면서 외로움을 덜어주게 될 것이다. 소셜 로봇의 목표는 특히 혼자인 노인들에게 장기적으로 긍정적인 효과를 주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분명 문제점도 존재한다. 헬라이어는 이런 현상에 대해 고민하면서 “사실 섹스돌은 우리가 당면한 더 큰 문제를 외면하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그는 “남성들이 왜 섹스봇을 찾게 됐는지를 생각해보면 이는 슬픈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섹스봇은 결코 사람과 쌓는 진정한 우정을 대신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저 섹스돌이 나라고?' 이보게, 그건 범죄야~
이스라엘 출신의 인스타그램 모델인 야엘 코헨(25)이 섹스돌 제조사인 ‘아이언테크 돌스’를 상대로 당장 제품 판매를 중지해줄 것을 강력히 요청했다. 그리고 이에 불응할 경우에는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도 경고했다.
코헨이 이렇게 나선 이유는 섹스돌 제조사가 자신의 동의 없이 외모와 체형, 심지어 자신의 이름까지 그대로 본떠 만든 섹스돌을 판매하고 있는 데 따른 것이었다. 전직 프로그래머인 코헨은 “그들은 ‘야엘’이라는 이름으로 섹스돌을 판매해왔으며, 내 실제 이미지를 사용해서 온라인에 제품 홍보를 해왔다”고 주장했다.
방송에 출연해 이같이 성토한 코헨은 “나는 섹스돌 산업에 대해서는 전혀 반대하지 않는다. 여기서 문제는 그들이 나의 동의 없이, 그리고 나 몰래 인형을 제작했다는 점이다”라고 항의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는 나의 정체성과 연결되어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두 가지 측면에서 잘못됐다. 첫째, 섹스돌이 나를 본떠 만들어졌다는 사실, 그리고 둘째, 이 사실을 고객들에게 숨기지 않았다는 사실이다”라고 강조했다.
현재 인스타그램에서 모델로 활동하고 있는 코헨은 100만 명이 넘는 팔로어를 거느리고 있는 인플루언서다. 때문에 자신의 평판에 더욱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을 터. 코헨에게 처음으로 섹스돌의 존재를 알려준 사람도 팔로어 가운데 한 명이었다. 이에 대해 코헨은 “내 팔로어로부터 메시지를 받았다. 팔로어가 보내준 링크에는 나를 본떠 만든 섹스돌 시제품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고, 몇 달 후 실제 판매용으로 제작됐다. 나는 그제서야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깨달았다”며 분개했다.
현재 코헨은 회사로부터 어떠한 금전적 보상도 원하지 않고 있으며, 단지 이 제품이 즉시 판매 중단되기를 바랄 뿐이라고 밝혔다.
반면 ‘아이언테크 돌스’ 측은 코헨과 자사의 섹스돌이 닮긴 했지만 이는 순전히 ‘우연’이며, 자사 고유의 디자인으로 만들어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면서 다양한 스타일로 고객의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기 때문에 실제 특정 인물과 닮은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야엘’이라는 이름은 더 이상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회사 측은 “불필요한 오해를 피하기 위해 더 이상 해당 제품을 ‘야엘'이라고 부르지 않기로 했다. 또한 ‘야엘’과 관련된 모든 사진도 사용하지 않겠다”면서 한발 물러섰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