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신문] KT&G가 답보 상태인 수출 시장에서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관심을 받고 있는 지역은 중동이다. 중동은 KT&G의 핵심 매출처로 꼽히지만 미국의 대이란 경제 제재와 이로 인한 환율의 변동 등으로 수출이 줄어들었다. KT&G는 2020년부터 서서히 중동 지역 매출을 회복하고 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는 평가가 나온다. 글로벌 시장 진출에 관심이 많은 백복인 KT&G 사장의 고민도 깊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처럼 매출이 줄어든 데에는 중동 시장의 부진이 컸다. 미국 정부는 2018년 JCPOA(이란 핵 합의)를 탈퇴하고, 이란에 대한 경제 제재를 부활시켰다. JCPOA는 미국, 이란, 중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독일, 7개 국가가 2015년 체결한 이란의 핵 문제 해결 방안이다. 이로 인해 KT&G는 원자재 운송과 외화송금에 어려움을 겪었고, 대이란 수출도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았다. 이밖에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은 2018년 담배에 ‘죄악세’ 명목으로 100%의 특별소비세를 부과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KT&G의 전체 담배 수출액도 2017년 8785억 원에서 2018년과 2019년 각각 5366억 원, 5344억 원으로 줄었다. 2020년에는 7392억 원으로 반등에 성공하면서 분위기를 바꿨지만 지난해 실적은 2020년과 큰 차이는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KT&G 관계자는 “중동 담배 시장은 2018년 이후 환율급등과 세금 인상 등의 영향으로 총수요가 약 20% 감소했다”며 “이에 더해 중동 주요 국가를 중심으로 코로나19 확산세가 심화되며 약 10% 정도의 총수요 추가 감소가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이경신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KT&G에 대해 “신규 개척 집중지인 중남미 지역과 인도네시아의 물량 성장은 긍정적이지만 아시아 지역의 봉쇄 관련 변동성 확대와 중동 지역 현지 총수요 감소 영향이 이어질 것으로 판단한다”고 분석했다.
이런 가운데 중동지역 인근인 중앙아시아의 혼란스러운 상황은 지속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의 경우 탈레반이 재집권하면서 혼란을 겪고 있고, 카자흐스탄에서는 유혈 시위가 진행 중이다. 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분쟁을 겪으면서 전쟁 발생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KT&G는 최근 문제가 된 아프가니스탄과 카자흐스탄은 글로벌 사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미미해 큰 영향이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중앙아시아 지역의 혼란이 지속되면 중동 지역의 환율까지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악재는 또 있다. KT&G는 2020년에는 필립모리스인터내셔널과 궐련형 전자담배 ‘릴(lil)’의 해외 판매를 위한 제품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릴은 현재까지 미국, 일본, 이탈리아, 러시아, 우크라이나, 카자흐스탄 등 22개 국가에 진출하는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궐련형 전자담배의 전망도 밝지만은 않다. 무엇보다 릴이 진출한 우크라이나, 카자흐스탄 등은 내부적으로 혼란을 겪고 있는 곳이다. KT&G는 유럽 시장 확장도 추진 중이지만 이곳은 점유율이 상대적으로 낮다.
이와 관련, 담배업계 관계자는 “세계적으로 플레인 패키징 등 규제가 강화되고, 소비자들의 건강에 대한 관여도가 점차 높아져 담배 시장 규모가 감소하는 추세”라며 “미국, 유럽, 일본 등의 국가에서 KT&G는 후발주자이므로 점유율을 높이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플레인 패키징이란 담배 포장을 한 가지로 통일하고 담배 브랜드나 광고성 문구, 이미지를 넣지 못하게 하는 제도를 뜻한다.
이런 가운데, KT&G는 2021년 12월 공시를 통해 미국 내 시판 중인 궐련 담배 판매를 잠정 중단한다고 밝혔다. KT&G는 “미국의 궐련형 담배에 대한 규제강화, 시장 경쟁 심화 등에 따라 미국 사업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KT&G의 2020년 대미국 수출액은 2058억 원으로 전체 매출(5조 3016억 원)의 3.9%를 차지했다. 김혜미 케이프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의 매출 비중은 5% 미만으로 실적의 규모 자체는 크지 않으나 최근 고성장세가 돋보였던 해외 법인이었다는 점에서 센티먼트(투자심리) 훼손이 불가피하다”고 전했다.
글로벌 시장 공략은 백복인 KT&G 사장이 중점을 두고 있는 분야다. 백 사장은 2021년 1월 신년사를 통해 “올해 글로벌 커버리지 확대 등 통해 해외담배 사업 고도화를 추진할 것”이라며 “자회사 사업 경쟁력 강화와 글로벌 경영관리 시스템 선진화를 통해 글로벌 기업으로서 입지를 확고히 할 것”이라고 전했다. 백 사장은 2021년 4월 주주총회에서도 “해외 사업을 고도화시켜 글로벌 기업으로서의 위상을 다지겠다”고 밝혔다.
KT&G 담배 사업에 비관적인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KT&G 담배의 중동 지역 점유율은 여전히 높으므로 장기적 관점에서 실적을 회복할 것이라는 기대감도 적지 않다. 국내 증권사 연구원은 “KT&G의 담배는 중동에서 중고가 제품으로 평가받지만 최근 중동 지역 소득이 감소해 KT&G의 판매도 감소한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최근 KT&G가 중저가 신제품 출시를 준비하고 있어 중동 지역 수출이 개선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있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 앞서의 KT&G 관계자는 “현지 소비 상황은 단기간에 개선되지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신제품 출시와 다양한 마케팅 전략 등을 통한 매출 확대 노력을 지속할 계획”이라며 “러시아와 CIS(1991년까지 소련 연방의 일원이던 독립 국가들) 등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시장 육성 및 확대를 위한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2020년 중동 지역 수입 업체인 알로코자이와 18억 달러(약 2조 1400억 원) 규모의 계약을 체결했고, 연간 최소구매수량 설정, 판매대금 조기 회수 등 계약조건에 따라 주력시장의 리스크 최소화를 위한 기반을 마련한 바 있다”며 “중동과 더불어 아시아태평양 등 고수익 시장 중심의 수출 강화를 통해 양적·질적 성장을 가속화하고, 중장기적으로 유럽과 시장 규모 상위국가 등을 대상으로 한 선택과 집중 전략으로 신규시장 개척과 재활성화를 추진해 해외시장 다변화 등을 위해 노력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