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원경을 챙겨 일주일에 한 번씩 인천의 한 동네 뒷산에 김진수 씨(가명). 그가 이렇게 산에 오르는 이유는 공사가 한창인 자신의 집을 직접 보기 위해서다.
그가 손꼽아 입주를 기다리고 있는 새집은 바로 인천 검단 신도시의 신규 분양 아파트다. 진수 씨가 아파트 분양에 당첨된 건 지난 2019년 당첨되던 날 온 가족이 함께 느꼈던 기쁨을 잊을 수 없다고 한다.
가족의 새 보금자리가 어떻게 지어지고 있는지 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해 일하느라 바쁜 와중에도 매주 찾아보게 되었다고 한다.
이런 진수 씨에게 지난해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고 한다. 잘 지어지고 있던 아파트에 갑자기 공사 중단 명령이 내려진 것. 그 이유는 진수 씨가 분양받은 아파트단지가 허가 없이 문화재 보호 구역 안에 지어지고 있어 불법건축물이 되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공사 중단 명령을 내린 곳은 문화재청. 심지어 무허가 건물이기 때문에 철거가 된다는 말까지 흘러나왔다고 한다. 진수 씨만이 아니라 이 지역에서 아파트를 분양받은 약 3400여 세대 입주예정자들에게 모두 해당되는 사항이었다.
분양받을 때도, 아파트 층수가 올라가며 공사가 한 창 진행 중일 때도, 그동안 아무런 말이 없다가 입주 1년을 남겨놓고 갑자기 내려진 공사 중지 명령에 분통이 터졌다는 입주예정자들. 이곳에선 도대체 무슨 일이 발생한 걸까.
문제가 된 인천 검단 신도시 아파트 인근에는 김포 장릉이 위치해있다. 인조의 아버지인 원종과 그의 부인인 인헌왕후가 묻혀있는 김포 장릉은 200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조선왕릉 40기 중 하나이다.
이 김포 장릉 때문에 검단 신도시 아파트는 건설 전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그걸 지키지 않았다는 게 문화재청의 입장이다. 지난해 이 소식이 세상에 알려지자 청와대 국민청원 사이트엔 문화유산을 온전히 지키기 위해 짓고 있는 아파트를 철거해야 한다는 청원까지 올라왔다.
이 청원은 한 달 만에 약 2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의 지지를 받으며 아파트 철거 논란에 불을 지폈다. 수백 년 전 죽은 왕의 무덤으로 인해 어렵게 마련한 소중한 집이 사라져야 하는 기이한 상황을 맞이한 입주예정자들. 올해 입주를 앞두고 있고 최고층까지 이미 올라가 내장 공사가 진행 중인 아파트를 철거하는 일이 정말 가능한 걸까.
2017년에 개정된 현행 문화재보호법에 따르면 조선왕릉 인근 500m 이내인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에서 높이 20m 이상의 건물을 지을 때는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우리 문화재들을 보호하고 그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 필요한 일이었다.
이런 법을 근거로 2021년 7월 문화재청은 김포 장릉 인근에 해당 아파트를 건설하고 있던 3개의 건설사에 공사 중지 명령을 내렸던 것이다. 문화재청은 만일 허가 없이 건설된 장릉 인근 검단 신도시 아파트들이 그대로 들어서게 되면 조선왕릉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의 지위를 잃고 등재가 취소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유네스코 보고서를 보면 조선왕릉은 한국의 전통 사상이 담긴 풍수 경관을 표현한 문화재라는 가치를 인정받아 등재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조선왕릉의 경우 왕릉 자체를 잘 보존하는 일뿐만 아니라 주변 자연경관이 훼손되지 않게 관리하는 게 중요하다.
이런 의미에서 장릉의 경우 풍수적으로 조산이 되는 계양산이 보이는 경관이 중요한데 아파트들이 건설되면서 계양산을 가리게 되어 그 가치가 훼손되었다는 것이다. 만일 아파트가 철거되지 않으면 정말 조선왕릉은 세계문화유산에서 제외되는 것일까.
문화재청의 공사 중지 명령 이후 타일 작업 등 내부 마감 공사만 남았던 아파트 공사는 그대로 멈추고 말았다. 건설사 측은 신도시 개발 계획에 따라 택지를 분양받아 매입했고 지자체의 허가를 받아 공사를 진행했다며 억울함을 표현했다.
고층 아파트 건설 계획서를 제출하고 분양을 실시할 때도 아무런 말이 없다가 왜 그제야 공사 중지 명령을 내리냐는 입장이다. 문화재청에 확인 결과 김포 장릉의 경관에 문제가 생겼단 사실을 알아차린 것은 지난해 5월이었다고 한다.
당시 검단 신도시 아파트는 벌써 20층 정도 올라간 상태였다. 공사를 진행하던 건설사들은 이런 문제를 정말 몰랐던 것일까. 또 문화재청은 공사가 계속되고 있었음에도 왜 더 일찍 상황을 파악할 수 없었던 걸까.
아파트에 대한 논란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 것은 바로 지난 12월. 법원이 건설사 손을 들어주면서부터다. 문화재청의 공사 중지 명령에 대한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여 공사가 다시 재개된 것이었다. 소중한 세계문화유산의 명예가 걸린 상황에서 법원은 어째서 건설사의 편을 들어주었던 것일까.
법원의 판결은 이번 사건이 건설사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일까. 만일 건설사만의 잘못이 아니라면 이 사태는 도대체 왜 생겨난 것일까. 이미 20층 높이로 지어진 아파트를 부분 철거하지 않으면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취소될지도 모르는 유례없는 상황.
제작진의 질문에 문화재청 측은 2017년 바뀐 문화재보호법 관련 고시를 증거로 철거 주장의 정당성을 강조하며 건설사와 지자체의 잘못이라는 입장을 보인 반면 건설사 측은 2019년에 관할 지차체에서 받은 건축사업승인서를 내밀며 허가받은 건물이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허가를 내준 지자체 또한 문화재보호법이 변경되기 전 이미 2014년 허가가 난 사업이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설명을 하고 있다. 누구의 말이 맞는 것일까. 이런 와중에 가장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3401세대의 입주예정자들이다.
철거 논란을 불러일으킨 김포 장릉 인근 아파트 문제를 깊이 있게 들여다보고 입주예정자와 건설사 그리고 많은 관계 당국의 상반되는 의견을 종합적으로 비교 분석해 보는 한편, 입주예정자들을 불안하게 만든 이 사건의 책임은 어디에 있는지 논란의 진실을 추적한다.
이민재 기자 ilyoo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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