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당시 부산으로 몰려든 피란민들은 굶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버려진 곰장어 살을 먹기 시작했다. 곰장어를 팔던 난전이 하나, 둘 늘어나면서 자갈치 곰장어 골목이 형성된 것이다.
그 깊이를 따라가려면 부산의 근현대사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살아있는 역사의 현장. 고소한 곰장어 굽는 냄새와 연탄 타는 냄새가 공존하는 부산 곰장어 골목의 72시간을 담았다.
부산의 소울푸드가 되기까지곰장어가 석쇠 위에서 꿈틀거리는 희한한 모양새를 보고 있자면 먹기 시작한 계기가 상당히 궁금해진다. 곰장어의 껍질은 본디 가방, 지갑 등 피혁 제품의 주재료였다.
버려지던 살을 우연히 구워 먹던 것이 맛이 좋았고 한국 전쟁 당시 밀려들던 피란민의 굶주린 배를 저렴하게 채워줄 수 있었던 상황과 맞물려 자갈치 시장의 곰장어 골목이 형성되었다.
메뉴는 소금구이와 양념구이로 간단하기 그지없지만 그 맛은 획일적이지 않다. 얼핏 보기에는 같은 양념구이일지라도 단맛이냐, 매운맛이냐, 삼삼한 맛이냐. 또는 고추장과 같은 재료의 사용 여부까지 각각의 가게는 고유한 맛을 띄고 있으며 '내 맛'을 찾은 단골손님의 발걸음은 약 100개의 다른 가게를 지나치면서도 거침이 없다.
"곰장어 골목은 낭만이 있어요. 예전에는 바다가 보였거든요. 젊은 사람들은 모르지만 우리는 옛날 포장마차에 추억도 있고 하니까."
출렁거리는 파도를 안주 삼아 곰장어를 입에 담던 사람들이 있다. 현재는 매립되어 주차장으로 이용되는 공간. 그곳이 아직 물결치던 골목의 옛 풍경을 기억하고 있는 이들이다.
코로나19의 여파 속에서도 점포 상인들의 든든한 친구가 되어주는 단골손님들은 대부분 그 시절의 물결치던 소리를 추억하고 있다.
골목의 역사를 증명하듯이 손님들의 단골 연차도 심상치 않다. 올해 47세의 백정래 씨는 아버지가 '김해집'의 50년 단골이시며 본인은 기억도 나지 않는 시절부터 사장님을 만났다고 한다.
현재는 가정을 이루고 아내, 아이들과도 함께 먹는 음식이 된 곰장어. 옆자리에는 이제 백정래 씨보다 먼저 곰장어를 앞장서서 찾는 딸 백설희 양이 앉아있다. 가게 사장님과 손님으로 만난 인연이 백정래 씨에 이어 딸까지 3대에 걸쳐 이어진 셈이다.
길게 뻗은 골목을 따라 걷다 보면 약 100여 개의 곰장어 가게에서 공통된 열기를 확인할 수 있다. 바로 자갈치 곰장어 골목의 상징인 연탄불이다. 부산에만 여러 곳의 곰장어 골목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자갈치 곰장어의 얼굴은 연탄이다.
연탄불 위에서 고소하게 구워낸 불맛을 잊지 못해 발걸음을 이어가는 손님들이 많다고 한다. 상인들에게도 연탄은 의미가 남다르다. 연탄불의 화력으로 오늘의 장사 운을 점치기도 하고 골목 휴무로 지정된 날에도 연탄불을 꺼트리지 않기 위해 가게로 발 도장을 찍는다.
한편 술도 양파도 고추도 서로 빌려주는 우애 깊은 상인들이 절대 연탄불만은 빌려주지 않는다고 하는데 과연 그 이유는 무엇일까.
유독 춥고 어두운 동트기 전의 겨울 새벽. 사이 좋게 붙어있는 가게 중 외로이 불 켜진 공간 속 느릿한 움직임의 인영이 있다. 올해 78세의 김옥자 어르신이 장사 준비를 하는 모습이다.
장사 50년 차 골목의 살아있는 역사인 어르신은 가족의 품에서 쉴 수 있음에도 가게에 나오는 것이 건강을 위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어르신과 같이 골목의 역사와 함께한 상인들이 전하는 고난은 수없이 많다. 일명 '노란차'의 단속부터 힘없는 천막 구조물을 쓸어가던 태풍까지 그런 사건 속에서도 다시 일어서서 재건할 수 있었던 이유는 곰장어 골목이 그들에게 삶의 터전이었기 때문이다.
곰장어는 껍질이 벗겨진 채로도 10시간은 더 살아 움직이는 생명력을 지녔다. 골목 상인들의 생명력과 생활력은 마치 그것과 같다.
곰장어 골목의 약 100개의 가게는 2024년 '자갈치 아지매 시장'이라는 이름의 신식 건물로 입주할 예정이다. 바다를 등지고 있는 가게들은 철거돼 도로가 될 계획이며 현재 재래시장의 곰장어 골목은 추억으로 남겨질 것이다.
이민재 기자 ilyoo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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