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다미·권나라·공유 신작에 짝짓기 예능까지 인기…정치적 족쇄로부터 자유로운 세대, 팬데믹 등 영향
#‘솔로지옥’ ‘돌싱글즈’도 순위권에
글로벌 OTT 순위 집계 사이트인 플릭스패트롤에 따르면, 1월 13일 기준 일본 넷플릭스 TV쇼 부문 1~10위는 한국 콘텐츠가 장악했다. 유명 배우들이 참여한 드라마뿐만 아니라 비 연예인이 참여하는 연애 매칭 프로그램도 톱10 안에 이름을 올리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드라마 강세는 여전했다. 배우 최우식·김다미가 출연한 SBS ‘그해 우리는’이 1위였고, 이진욱·권나라 주연작인 ‘불가살’이 3위, 배두나와 공유가 호흡을 맞춘 ‘고요의 바다’가 5위였다. 수년 전 이미 방송을 마친 드라마들의 ‘역주행’ 행진도 이어지고 있다. ‘이태원 클라쓰’와 ‘도깨비’가 각각 6, 7위에 랭크됐고 배우 겸 가수 아이유가 주인공을 맡은 ‘호텔 델루나’가 9위였다.
여기서 공통분모를 찾을 수 있다. 김다미와 권나라는 일본에서 장기간 인기를 누리고 있는 ‘이태원 클라쓰’의 주인공들이다. ‘고요의 바다’의 공유 역시 ‘도깨비’의 주역이다. 결국 전작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배우들의 신작이 다시금 일본 대중의 선택을 받고 있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이와 반대로 김다미, 권나라, 공유의 신작이 소개되면서 그들이 참여했던 과거 인기작을 다시 찾아보는 이들이 늘었다는 분석도 가능하다.
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의 인기도 심상치 않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인 ‘솔로지옥’이 2위에 올랐고, MBN ‘돌싱글즈’가 4위, SBS플러스 ‘나는 솔로’가 각각 8위에 랭크됐다. 세 프로그램의 공통점은 ‘짝짓기 예능’이라는 점이다. 남녀의 만남을 그린 남녀상열지사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디서나 통한다는 통설이 재차 입증된 셈이다. 이외에도 JTBC ‘뭉쳐야 찬다’가 10위에 등극했다.
TV쇼 부문 외에 영화 등 모든 콘텐츠를 망라한 일본 순위에서도 K-콘텐츠의 위력은 대단하다. 미국 영화 ‘마더/안드로이드’(6위), ‘돈 룩 업’(8위) 외에는 톱10 안에 든 모든 콘텐츠가 ‘메이드 인 코리아’다.
이런 조짐은 이미 2020년부터 시작됐다. 2020년 말 일본 넷플릭스가 발표한 연간 콘텐츠 인기 순위를 보면 배우 현빈·손예진, 박서준·김다미가 각각 주연을 맡은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과 ‘이태원 클라쓰’가 1, 2위를 차지했다. 당시 일본 넷플릭스는 ‘사랑의 불시착’에 대해 “이 드라마는 올 한 해 최장기간 ‘오늘 일본의 톱10 콘텐츠’에 이름을 올린 작품”이라며 “한국의 젊은 여성 기업가와 북한 군인 간 드라마틱한 연애를 그리고 코미디, 액션, 서스펜스 등의 요소를 담은 각본과 영상이 많은 넷플릭스 사용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고 평했다.
두 작품을 포함해 톱10 안에는 5편의 한국 드라마가 포진했다. 김수현·서예지가 출연한 ‘사이코지만 괜찮아’(6위), 박보검·박소담의 ‘청춘기록’(8위), 박서준·박민영의 ‘김비서가 왜 그럴까’(9위) 등이었다.
그리고 불과 1년 만에 K-콘텐츠는 이제 톱10 중 다섯 편을 넘어, 일본 넷플릭스 인기 순위 1∼10위를 장악할 정도로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일본의 K-콘텐츠 사랑, 왜?
넷플릭스는 글로벌 대중의 콘텐츠 소비 패턴을 바꿨다. 불과 몇 해 전만 해도 한국에서 방송되거나 상영된 드라마와 영화가 일본 시장에 수출된 후 어느 정도의 시차를 두고 공개되는 식이었다. 그나마도 양국 관계가 순탄치 않을 때는 한국 작품 수입을 자제하거나, 수입 후에도 편성을 안 하곤 했다.
하지만 넷플릭스는 한국을 제외한 모든 나라의 판권을 구매하는 식으로 K-콘텐츠에 대한 권리를 확보한 뒤 이를 안정적으로 전 세계 시장에 공급하고 있다. 일본도 예외는 아니다. 결국 한국 콘텐츠를 접한 후 그 매력에 빠진 일본 대중이 다시금 자연스럽게 한국 콘텐츠를 찾는 선순환이 이뤄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TV가 아닌 스마트폰을 기반으로 한 OTT 플랫폼인 넷플릭스 이용자는 10∼30대에 집중된다. 이는 한국의 MZ세대와 겹친다. 자기주장이 강하고 실리적인 면을 추구하는 이 세대들은 정치적 족쇄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다.
한 방송 관계자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일 관계가 좋지 않을 때는 도쿄 신오쿠보 주변에서 오프라인으로 혐한 시위가 열리며 한국 드라마 편성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하지만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되는 한국 콘텐츠들은 이런 목소리로부터 자유롭다”면서 “‘오징어 게임’이나 ‘지옥’의 글로벌 인기에서 알 수 있듯 한국 콘텐츠는 이미 일본의 콘텐츠 수준을 크게 뛰어넘었다고 평가받고 있다. 게다가 같은 동양 문화권으로서 정서적으로 공통점이 많기 때문에 일본 MZ세대들이 보다 다양한 한국 콘텐츠를 소비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여기에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대유행)은 기름을 부은 격이다. 일본 역시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하루 수천 명의 확진자가 쏟아지며 외부 활동이 줄어들고 집 안에서는 콘텐츠 소비가 늘었다. 이 시기 넷플릭스가 전세계에서 엄청난 성장세를 거듭했듯, 일본에서도 빠르게 가입자 수가 증가했다. 이렇게 넷플릭스를 이용하게 된 일본 이용자들이 보다 쉽게 한국 콘텐츠를 향유하고, 그 결과가 플릭스패트롤 순위로 반영됐다고 볼 수 있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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