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운영부터 작품 경매까지’ 사업가 변신…“시장 투명해지고 컬렉터 똑똑해져, K아트 시대 온다”
이광기는 2년 동안 유튜브를 통해 미술품 경매를 진행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고 신인 작가 발굴에도 힘쓴다. 스튜디오 끼에서는 정기적으로 기획전이 열린다. 스튜디오 끼 입구에는 한국의 지성인이자 문화부 초대 장관인 이어령 전 장관의 친필 현판이 있다. 이 전 장관은 스튜디오 끼를 중심으로 경기북부 문화예술 균형발전이 시작되길 응원하면서 친필 현판을 선물로 남겼다고 한다.
MZ세대까지 구매나 경매에 참여하면서 최근 한국 미술시장에서는 작가가 유명세를 타면 그림 값이 크게 오르는 경향이 이어지고 있다. 코스닥 상장에 나선 미술품 경매 업체 케이옥션은 청약 경쟁률이 1408 대 1에 달했고 증거금도 5조 6000억 원이나 모았다. 최근 ‘그림 보는 눈이 탁월하다’는 평을 듣는 이광기를 만나 미술업계의 동향을 들어봤다. 다음은 일문일답.
―약 20년 전 어떻게 미술품에 관심을 갖게 됐나.
“연기 활동을 하면서 찾아오는 압박감을 미술을 통해 풀었다. 고단한 촬영이 끝나고 집에 와서 작품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위안을 받았다. 그렇게 마음에 안정을 주던 작품이 나중에 재테크에도 도움이 돼 관심이 더 커졌다.”
―스튜디오 끼는 어떻게 설립하게 됐나.
“문화예술공간에 대한 갈증이 심했다. 2010년부터 미술 자선전시 등 행사를 많이 했는데 공간 구하기가 너무 어려웠다. 원하는 시간에 공간을 찾으려면 대관료가 너무 비쌌다. 특히 파주출판도시에 설립한 건 이곳에 출판인만이 아닌 여러 분야 예술가들이 모이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파주출판도시는 디자인, 영화 등 여러 분야가 자연스럽게 모여 시너지를 내는 보물 같은 지역이 됐다.”
―운영은 어떻게 하고 있나.
“스튜디오 끼는 오프라인 전시 기능을 갖고 있지만, 온라인을 중심으로 운영이 이루어진다. 2년 전부터 전세계 최초로 유튜브로 미술 경매쇼를 진행하고 있다. 경매장이 아닌 집에서 이광기의 설명을 들으며 경매에 참여할 수 있다. 유튜브로 하다 보니 젊은 컬렉터가 유입됐다. 작가의 가능성을 믿고 경매쇼에 참여한 컬렉터들의 작품 가치가 상승하면 보람을 느낀다.”
―경매쇼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나.
“2010년 서울옥션, 케이옥션을 통해 작품도 직접 수집하고 설명하면서 자선경매를 꾸준하게 진행했다. 모두가 너무 행복해했다. 이걸 쇼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 방송국 문을 여러 차례 두드렸다. 본부장이나 PD는 “재미는 있을 것 같은데 명절에 연예인 애장품 경매 정도 말고는 해본 적이 없다”며 부담스러워했다. 그런데 1인 미디어 시대가 열리면서 ‘내가 직접 해야겠다’는 생각에 유튜브로 진행하게 됐다. 처음에는 15명 정도 들어와서 4작품 경매했는데 최근엔 수백 명이 참여해 10작품 정도 진행한다. 가장 최근 경매인 1월 10일에는 김선우 작가 그림이 3900만 원에 판매됐고, 최고가는 8500만 원에 팔린 문형태 작가의 그림이다.”
―최근 미술품 구입에 MZ세대 등 젊은 세대까지 뛰어들었다. 흐름의 변화가 어디서 왔다고 보나.
“두 가지가 있다고 본다.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대유행)으로 인해 해외여행 등이 막히면서 아름다움을 느낄 다른 방법을 찾게 됐고, 보상 소비 심리가 발동했다. 또한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면서 젊은 세대들 사이에 ‘집은 살 수 없는 것’이란 마인드가 뿌리 내리기 시작했다. 집 사기가 어려워지면서 미술품 구매를 택한 게 아닌가 싶다. 미술품은 내가 현재 사는 집을 아름답게 꾸밀 수 있고 이사 갈 때도 들고 갈 수 있고 투자 수익률도 따른다. 또 다른 한편에선 2020년부터 주식, 부동산, 코인 등으로 큰돈을 번 사람들이 나타나면서 이들이 비교적 안정적인 수익률을 거둘 수 있는 미술품 시장에 관심을 갖게 된 것 같다.”
―미술계에서 발견한 MZ세대의 특징은 뭔가.
“요즘 젊은 세대는 굉장히 똑똑하다. 조던 신발이나 의류 한정판 등에 열광하고, 줄을 서서 구매해 몇 배를 받고 팔아본 경험이 있는 세대다. MZ세대는 가구를 하나 살 때도 오히려 빈티지를 사기도 한다. 쓰다 버리는 가구보다 돈을 더 주더라도 가치가 유지되고 다시 되팔 수 있는 상품을 산다. 정보 탐색 능력도 뛰어나다. 온라인으로 검색해 전세계 미술품을 사고 정보를 공유한다. 네덜란드 현지 갤러리에 연락해 좋은 미술품을 직구로 사는 경우도 봤다.”
―미술품을 투자 측면에서 보면 어떤가.
“컬렉터에게 이름을 알린 작가는 그 작가가 활동을 그만두지 않는 한 장기적으로 그의 작품들은 ‘아트테크’(미술+재테크)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전체적인 미술 시장 그래프를 보면 대부분 상승 곡선이었다. 물론 일시적 고점에 샀을 수는 있겠지만 가치가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특히 다른 선진국과 소득 수준을 감안해 비교해 보면 우리나라는 미술품 시장 규모가 굉장히 작다. 앞으로 시장 규모가 커질 가능성이 높다고 예측하는 이유다. 해외 갤러리들도 국내 시장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일반 미술 투자자에게 작품 구매 팁을 공유해준다면 어떤가.
“작품을 봤을 때 감동이 있는지가 가장 중요하다. 두 번째로 레퍼런스를 체크해야 한다. 어떤 작품활동을 해왔고 어디서 전시를 했고 누구와 협업했는지를 따져봐야 한다. 좋은 기획자나 갤러리와 함께하는 작가면 더 좋다. 요즘은 학벌을 과거처럼 따지지는 않는 것 같다. 지방대 나온 작가들 인기도 어마어마하다. 미대를 안 나와도 성공하는 작가도 있다. 학벌보다는 작품으로 컬렉터의 마음을 훔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최근 몇몇 유명 작가 작품의 경우 가격이 크게 오르면서 거품이란 우려도 있다.
“미술시장은 코로나 이후 크게 성장했지만 그 이전에도 조금씩 성장해 왔다. 미술시장은 2007년에 시장이 좋다가 리먼브라더스 사태 이후 휘청거린 바 있다. 하지만 그때와는 상황이 다르다. 그때는 오프라인 중심의 폐쇄적인 시장이었다. 가격이 얼마인지 알기도 힘들었다. 소위 ‘눈탱이 맞는’ 경우도 있었다. 지금은 온라인 중심이고 가격은 상대적으로 투명해진 데다 컬렉터는 똑똑해졌다.”
―해외에서 국내 작가 작품에 대한 평가는 어떤가.
“전세계적으로 잠재력을 인정받고 있다. 개인적으로도 K팝, K드라마 다음 K아트에 대한 관심이 오리라 본다. 문화 관련 부처에서 해외 갤러리나 해외 비평가가 한국 작가를 ‘픽’할 수 있는 터전을 만들어 주길 바란다. 한국 작가 특별전 등으로 해외 유명 갤러리에서 직접 전시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면 좋을 것 같다.”
―최근 ‘이광기가 찍은 작품 가격이 많이 올랐다’는 얘기가 있다. 비법이 뭔가.
“오랫동안 젊은 작가를 중심으로 수집해왔고, 자선전시, 자선경매도 운영하면서 어떤 작품이 인기 있는지 감을 익히게 됐다. 소위 ‘뜨는 작품’은 예술성, 상업성, 무거움, 가벼움 등 여러 요소 중에서 한두 가지 확실한 ‘엣지’만 있으면 된다. 어쨌든 작가와 작품이 좋아야 한다. 좋은 전시를 열고 긍정적인 마케팅으로 바람을 불어넣어 줄 수는 있지만, 그 다음은 작가의 몫이다. 스튜디오 끼에서 전시한 작가들이 여러 갤러리에서 주목받는 경우가 많아 감사할 따름이다.”
―최근 작가 매니지먼트도 시작했다. 어떤 방식인가.
“일반적으로 갤러리와 작가의 관계가 맺어지면 그 갤러리에서 독점적으로 작품을 구매하고 판매한다. 나는 오랫동안 연예계 생활을 했기 때문인지 그보다는 매니지먼트 관계가 더 자연스러웠다. 나는 작가 서포트에 충실하고 작품은 다양한 갤러리에 전시해 이름을 알린다. 파이를 독차지하는 게 아니라 파이를 키우는 데 주력해서 작가와 갤러리와 모두가 공생하고 싶다.”
―올해 계획은 어떤가.
“2021년은 굉장한 가능성을 본 해다. 경매, 매니지먼트 등 조금씩 성과를 거두고 있다. 2022년에는 한국 공예 작품에 주목하고 싶다. 한국 공예 작품은 수준이 높지만 관심이 부족하고 지원이 열악하다. 한국공예진흥원 등과 협업해 대중이 공예품을 사랑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만들고 싶다.”
―꿈이 있다면 뭔가.
“13년 전 신종플루로 아들을 떠나보냈다. 내가 관심 있는 작가에게 그림을 주문할 때 소년을 넣어줄 것을 부탁한다. 하늘에 있는 아들을 그려준 작품은 절대 팔 수 없다. 먼 훗날 다양한 작가가 내 아들을 그려준 작품을 모아 미술관에서 전시를 열고 싶은 게 작은 희망이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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