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척돔·호남고속철 하자 이어 학동 참사에 화정동 붕괴 사고…현산보다 벌점 높은 건설사 많지만 ‘외부 충격 없이 와르르’ 경악
#부실공사 사례 살펴보니
서울시는 2009년 야구장 ‘고척스카이돔’의 시공사로 현산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고척스카이돔은 2009년부터 2015년까지 7년에 걸쳐 지어졌다. 고척스카이돔 건설에는 사업비 총 1948억 원이 투입됐으며 지하 2층~지상 4층, 연면적 8만 3476㎡(약 2만 5000평) 규모의 완전돔 형태로 지어졌다. 규모도 규모지만 국내 최초의 돔 형태 야구장을 건설했다는 점에서 현산의 위상도 높아졌다.
하지만 고척스카이돔은 비가 새는 누수 현상이 수차례 발생해 관중들이 불편을 겪었다. 서울시는 누수 부분을 실리콘으로 메우는 등의 조치를 취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성중기 서울시 의원은 2018년 11월 “고척스카이돔 개관 이후 2017년까지 약 3년 동안 총 7건, 58개소에 달하는 누수가 발생했으며 올해(2018년)에만 34개소의 누수가 있었다”며 “서울시는 시공사인 현산에 대해 누수로 인해 경기와 행사가 중단되거나 취소될 경우 이에 대한 별도의 배상이나 보상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조치를 전혀 취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고 비판했다.
서울시의회 교통위원회에 따르면 2020년에도 고척스카이돔에서 총 43회 지붕누수가 발생했다. 서울시설공단은 누수 방지를 위해 2021년 대대적인 고척스카이돔 보수공사를 해야만 했다. 그나마 현산이 보수공사 비용을 전액 부담해 당시에는 큰 비판을 받지 않았다.
현산이 시공을 맡은 호남고속철도 일부 구간에서도 문제가 발생했다. 호남고속철도 1단계(오송∼광주송정) 중 일부 구간에서 허용침하량(30mm) 이상의 침하가 발생한 것. 감사원은 2020년 현산을 비롯한 시공사들에게 벌점을 부과할 것을 국가철도공단(KR)에 통보했다. 하지만 현산은 벌점을 부과 받지 않았다. 건설기술진흥법 시행령에 따라 하자담보책임 기간이 경과됐다는 이유에서였다.
조오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21년 10월 국회 교통위원회 국정감사를 앞두고 “현산이 호남고속철도 노반공사에서도 부실시공을 했지만 KR은 감사원에서 벌점부과 통보를 받기 전까지 묵인해왔다”며 “KR의 안일하고 무능력한 호남고속철도 건설 관리가 부실시공에도 벌점 부과를 취소 받으려는 현산의 뻔뻔함을 야기시켰다”고 말했다. 김한영 KR 이사장은 국정감사에서 “하자담보책임 기간이 5년으로 돼있어서 (벌점을 부과하지) 못했다”며 “문제가 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고척스카이돔과 호남고속철도와 달리 2021년 9월 발생한 광주 동구 학동 철거건물 붕괴 사고는 현산의 안전불감증을 대중에게 크게 각인시키는 계기가 됐다. 현산은 학동4구역 주택재개발정비사업조합과 일반 건축물 철거 계약을 맺고 철거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철거 과정에서 한 빌딩이 붕괴돼 도로 위 버스를 덮치면서 버스 승객 9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철거 현장에서는 안전장치를 제대로 마련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경찰은 현장 관계자 30명을 입건했고, 이 중 9명을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구속한 상태다. 구속된 인원 중 현산 소속은 관리소장 한 명뿐이다.
김진욱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인근 주민들은 재개발 철거 현장이 도로와 인접했지만 부실한 가림막 이외에는 어떠한 안전장치도 없었다고 했다”며 “철거 건물 앞에 버스정류장이 있었지만 임시 이전 조치도 이뤄지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정몽규 회장은 “이런 사고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전사적으로 재발방지 대책을 수립하도록 하겠다”며 머리를 숙였다.
정 회장의 사과가 무색하게 최근 화정 아이파크 붕괴 사고가 발생하면서 현산의 이미지도 급격히 추락했다. 정치권에서는 여야를 막론하고 현산을 비판하며 일부 시민단체는 현산의 건설 면허를 취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안전사회시민연대는 지난 1월 17일 “정부 당국에 현산의 면허를 즉시 취소할 것을 촉구한다”고 전했다.
정몽규 회장은 지난 1월 17일 “두 사건의 책임을 통감하며 회장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지만 비판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참여연대는 “사퇴는 그동안 자신의 과오에 대한 책임을 다하지 않는 꼬리 자르기라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사퇴로 사태를 마무리할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이사회를 개최해 사고의 경위와 책임에 대한 조사에 나서고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된 재발방지책을 세워야 한다”고 전했다.
#현대산업개발만의 문제일까
현산 입장에서 부실의 대명사로 낙인찍히는 것이 억울할 수도 있다. 국토교통부 건설산업지식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019년 하반기부터 2021년 상반기까지 2년 동안 현산이 받은 누계 평균벌점(건설사가 받은 총 벌점을 전체 공사현장수로 나눈 값)은 0.06점이다. 같은 기간 범 현대가인 현대건설의 누계 평균벌점은 0.23점, 현대아산은 0.09점으로 현산보다 높다. 다른 대기업 계열 건설 업체인 삼성물산(0.16점), GS건설(0.21점), SK에코플랜트(0.10점), 포스코건설(0.15점) 등도 현산보다 누계 평균벌점이 더 높다. 벌점은 콘크리트의 균열 등을 비롯해 배수, 방수, 안전관리 대책 등에서 부실 및 관리 소홀 등이 있는지를 평가한 뒤 부여한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21년 1~3분기 사망사고가 가장 많이 발생한 건설사는 현산이다. 현산은 해당 기간 동안 9명의 사망자가 발생했고, 이들은 모두 학동 철거 사고 피해자들이다. 다만 사망자 수가 아닌 사망사고 발생 횟수를 기준으로 하면 현대건설, 태영건설 등이 현산보다 더 많다. 그럼에도 현산의 부실공사가 두드러지는 이유는 단순 안전사고가 아니라 외부 충격 없이 건물이 무너지는 흔치 않은 사고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용섭 광주시장도 지난 1월 15일 현장 기자회견에서 “어떤 재난보다도 전례 없이 복잡하고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학동 붕괴 사건과 화정 아이파크 붕괴 사건 모두 공사를 서두르는 과정에서 안전에 소홀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산이 무리하게 공사 기간을 축소하려다가 사고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최남곤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광주 지역에서만 두 차례 대형 붕괴 사고를 내면서 내부 통제 시스템에 대한 의문이 커지고 있다”며 “재개발 철거 작업 붕괴 사고 이후에도 핵심 경영진의 사퇴 등 책임을 묻지 않았다는 점도 그러한 의구심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현산이 최근 상승세를 보이고 있는 부동산 건설 시장의 수혜를 입기 위해 무리하게 공사를 진행했다고 보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아시아나항공 인수가 무산된 후 현산 분위기가 좋지 않았을 텐데 좋은 실적이라도 거둬야 정몽규 회장의 체면이 살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학동참사 시민대책위원회는 “(아이파크 붕괴) 사고 역시 안전은 도외시한 채 이윤만을 좇아 공사기간을 단축하기 위한 무리한 시공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며 “이번 사고는 본질적으로 학동 참사가 되풀이된 것이라 규정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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