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일화 없다’던 안철수 ‘안일화는 가능’ 선회, 국민의당 내부 ‘해법’ 두고 의견 엇갈려…“빠르고 간결한 결단 필요”
1월 11일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한국기자협회 초청 토론회에서 “단일화에 관심이 없다”고 했다. 안 후보는 “제가 대통령이 되고 정권교체를 해야겠다고 해서 나온 것”이라면서 사실상 단일화 가능성을 일축했다. 이태규 국민의당 선대위 총괄위원장도 안 후보 말을 거들었다. 1월 12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에서 이 위원장은 “단일화는 없고 완주할 것”이라고 했다. 안 후보와 그의 복심이 입을 모아 단일화 가능성을 일축한 모양새였다.
1월 19일 안 후보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일주일 전보다 단일화에 유화적인 제스처를 취했다. ‘안철수로 단일화라면 그 단일화는 받아들일 수 있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했다. 이른바 ‘안일화’는 가능하다는 취지였다. 이어 단일화 방법과 관련한 질문에 안 후보는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이 없다”면서도 “내가 야권 후보로 나가면 반드시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있다”고 강조했다.
안 후보는 일주일 사이에 ‘단일화 관심 없다’에서 ‘안일화는 가능’이라고 입장을 바꿨다. 정치평론가 신율 명지대 교수는 “상당히 유의미한 입장 변화”라고 평가했다. 신 교수는 “야권이 정권교체를 이뤄내기 위해선 단일화는 사실상 필연적”이라면서 “단일화는 먼저 얘기를 꺼내는 쪽이 불리하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이렇게 단일화 여지를 가져가는 쪽으로 말을 먼저 꺼낸 것은 굉장한 진척이라 볼 수 있다”고 했다.
안철수 선대위 내부에선 단일화와 관련한 전략적 모호성이 지적되고 있다. 한 선대위 관계자에 따르면 ‘안 후보가 추후 말을 바꾸는 리스크를 떠안기보다 유화적인 제스처를 취하며 통합 프레임을 먼저 가져가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의견이 나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 야권 관계자는 “기존 단일화 방정식과는 달리 안 후보는 단일화가 늦게 이뤄질수록 불리할 수 있다”면서 “2021년 4·7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도 선거를 코앞에 두고 단일화에 합의했다. 그때 결과가 어땠나. 국민의힘의 강한 조직력에 힘입어 ‘안일화’에 실패했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당시 국민의힘에 밀렸던 파트가 조직력 부분인데, 이 부분에서 국민의당이 많은 개선을 이뤘냐 하면 그것은 또 아니”라면서 “조직 파트나 인재를 수용하는 부분에서 여전히 폐쇄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다는 지적이 국민의당 내부에서도 나오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고 했다.
국민의당 관계자는 “전반적으로 20대 대선 야권 단일화 이슈는 서울시장 보궐선거 단일화, 국민의힘과 합당 이슈와 본질이 맞닿아 있다”면서 “그간 안철수 후보가 서울시장 선거 단일화에서 패하고, 합당이 불발되는 과정 등을 거치면서 손해를 봐왔는데, 이런 사례들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뭔가 다른 해법이 필요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기존 국민의당 계열 현역 의원들과 보수진영에서 합류한 인사들 간 단일화 해법이 다르다는 말도 나온다. 당내 현역 의원인 이태규, 권은희 의원 등을 중심으로 한 인사들은 국민의힘과 협업하는 과정에서 국민의당 정체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보수진영에서 합류한 인사들은 국민의힘에 대해 적극적인 유화책을 펼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국민의당 또 다른 관계자는 “지난 사례들을 봤을 때 ‘오리지널 국민의당’ 출신 핵심 인사들의 의사가 안 후보 측에 더 많이 반영돼 왔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국민의당 소속이었던 한 야권 인사는 “국민의당이 빠르게 프레임을 선도해 나가야 하는 시점에서 전략적 지향성이 오락가락하는 모습이 보인다”면서 “결국에는 2월 중순쯤에는 구체적 그림이 나와야 단일화가 성사될 수 있다. 시간이 얼마 없는데, 여전히 단일화 시계는 멈춰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간 국민의당 약점으로 지적됐던 조직력을 보완할 수 있는 요소는 신선함인데, 단일화에 접근하는 방식에서 새로운 일면을 보여야 그 신선함을 갖출 수 있다”면서 “안 후보 쪽에서 방어적이기보다 공격적으로 단일화에 임하는 것이 손익계산 측면에서 더 이득이 될 여지도 있다”고 덧붙였다.
정치평론가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연구위원은 “안철수 후보의 경우 지금까지 ‘늑장’을 부리다가 정치적인 이익과 거리가 멀어지는 사례가 많았다”면서 “20대 대선을 앞두고도 상황이 비슷하게 흘러가는 양상”이라고 바라봤다.
채 연구위원은 “승부사 기질이 있었던 거물급 정치인들은 빠르고 간결하게 승부를 걸어 자신의 지지세를 확장해 왔다. 3당합당의 김영삼-김종필이 그랬고, DJP연합의 김대중-김종필이 그랬다”면서 “이런 측면에서 봤을 때 안 후보는 골 결정력이 부족한 행보를 보여왔다. 그동안 안 후보가 보여줬던 것과 달리 빠르고 간결한 결단이 그의 정치적 가치를 높일 수 있는 요소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만약 야권이 단일화를 성사하지 못한다면 19대 대선과 비슷한 양상의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크다”면서 “단일화가 야권 필연적 과제로 부상한 만큼 당사자인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의 책임이 막중해진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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