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니스 기대주’ 이동국 딸 재아, ‘골프 꿈나무’ 강호동 아들 시후…체조 여서정·야구 이정후는 노력으로 ‘후광’ 넘어서
테니스 주니어 챔피언에 등극한 16세 선수 이재아부터 지난해 도쿄올림픽 기계체조 도마 동메달리스트 여서정, 프로야구 타격왕 이정후, 초등학생 골퍼 강시후 등이 바로 운동선수 부모를 둔 스포츠 2세들이다. 체육 활동에 적합한 신체 조건을 부모로부터 물려받았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부모의 후광에만 기대지 않는다. 스포츠는 땀과 노력이 없다면 성적을 내기 어렵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스포츠 DNA 물려받은 2세들
오직 실력으로 겨루는 스포츠 세계에서 부모의 도움 없이 스스로 존재를 증명해 보이는 2세들의 활약에 대중의 관심이 향한다. 최근 운동선수 부모와 2세 선수들의 이야기를 다룬 채널A ‘슈퍼 DNA 피는 못 속여’, KBS 2TV ‘우리끼리 작전타임’ 등 예능프로그램 역시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몇 년 전 연예계 데뷔를 원하는 연예인 2세들이 부모의 유명세에 기대 예능 및 드라마 출연 기회를 얻어 ‘무임승차’라는 비판이 제기됐던 상황과 비교하면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누구보다 피나는 훈련을 거듭해 성과를 내는 운동선수 2세들의 ‘노력’에 공감하는 여론이 우세하다.
스포츠 2세 가운데 가장 주목받는 주인공은 아시아 주니어 랭킹 1위를 거머쥔 이재아다. 현재 상위 리그인 국제테니스연맹(ITF)에 도전하고 있는 그는 최근 키가 172cm까지 컸다. 다부진 체력은 아빠인 축구선수 이동국으로부터 물려받았다. 이동국은 2020년 은퇴 당시 42세의 노장이었다. 축구선수로는 ‘최고령’에 속하지만 은퇴 때까지도 연봉 10억 원을 넘길 만큼 맹활약했고, 11년 연속 매 시즌 10골 이상 기록한 K리그 스타였다.
그런 아빠를 쏙 빼닮은 이재아는 7세 때 처음 테니스 라켓을 잡았다. 평소 테니스를 좋아한 아빠의 영향이다. 연달아 딸 쌍둥이를 낳아 4명의 딸과 막내아들까지 5명의 자녀를 둔 이동국은 “자식 중 한 명은 테니스 선수로 키우고 싶다”는 꿈을 품고 있었다.
아빠의 바람에 재능을 보인 건 둘째 이재아인데 사실 스포츠는 재능만 있다고 성공할 수는 없다. 노력과 훈련이 필수 조건이다. 그런 면에서 이재아의 롤모델은 다름 아닌 이동국이다. 가족끼리 휴가를 떠나도 숙소에 운동 시설이 있는지부터 확인하고 아침마다 운동하는 아빠의 모습을 어릴 때부터 봐 온 이재아는 “선수라면 아빠처럼 해야 한다는 걸 알았다”고 말했다.
이동국 부부는 딸이 테니스로 진로를 정하자 학교에 다니는 대신 홈스쿨링을 택했다. 학교생활과 운동을 병행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이재아는 부모의 픽업 등 도움 없이 혼자 지하철을 타고 일주일에 6일씩 훈련을 소화한다. 아빠를 닮은 강한 승부욕도 지녔다. 이재아는 “쉬는 동안 친구들의 실력이 늘 것만 같아” 절대로 훈련에 빠지지 않는다.
유전자의 힘을 여실히 보여주는 또 다른 2세도 있다. 씨름 천하장사 출신 강호동의 초등학생 아들 시후 군이다. 아빠의 외모를 쏙 빼닮은 그는 ‘골프 유망주’로 통한다. 2021년 8월 초등골프대회에 출전해 압도적인 파워 퍼팅을 뽐내면서 일약 기대주로 부상했다.
골프 전문가도 시후 군의 실력에 주목한다. SBS골프는 얼마 전 자사 유튜브 채널에 ‘파(PAR) 4에서 원 온 노리는 초등학생의 정체’라는 제목의 영상을 공개해 궁금증을 일으켰다. ‘원 온’을 기본으로 하는 이 학생의 정체는 다름 아닌 시후 군이었다. SBS스포츠 안현준 캐스터는 “치기만 하면 그린에 뚝 떨어진다”며 “아버지 유전자를 완벽하게 받은 것 같다”라고 놀라워했다.
방송에서 좀처럼 가족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 강호동이지만 아들 사랑은 숨기지 못한다. 처음엔 아들에게 야구를 가르쳤지만, 얼마 뒤부터 야구보다 오히려 골프에 관심과 재능을 보였다는 게 강호동의 설명이다. 먼저 선수의 길을 걸었던 강호동은 아들을 두고 “(나와) 운동신경이 비슷한 것 같다”며 “밥을 먹을 때 보면 ‘아! 똑같구나’ ‘엄청나구나’ 싶다”라고 인정했다.
#노력에 따른 결실 인정 받았다
스포츠의 세계는 냉정하다. 노력하지 않고서 원하는 성적을 낼 수 없다. 부모의 후광이 통하기 어려운 분야다. 스포츠 2세들의 활약에 질타보다 응원의 여론이 더 많이 형성되는 이유다. 특히 부모에 이어 비인기 종목의 길을 걷는 2세 선수에게는 더 큰 갈채가 향한다. 체조 메달리스트 부녀 여홍철(경희대 교수), 여서정(수원시청)이 대표적이다. 인기 종목에 가려 올림픽 등 국제대회가 아니고서는 주목받을 기회가 적은 체조의 길을 대를 이어 걷기 때문이다. 여서정의 엄마 김채은 감독 역시 현재 여자체조 국가대표 이하 우수선수 전임감독을 맡고 있다.
아무리 부모의 유전자와 경험을 전수 받는다고 해도 성적은 전적으로 실력에 달렸다. 여홍철 역시 딸 여서정의 훈련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는다. “국가대표 합숙 도중 잠깐 집에 들를 때마다 몸을 풀어주는 마사지, 멘탈 케어 정도”가 아빠로서의 역할이다. 여서정은 부모의 손을 떠나 거듭한 훈련 끝에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기계체조 도마 금메달, 지난해 2020 도쿄올림픽 기계체조 도마 동메달을 차지하면서 한국 여자 도마의 역사를 쓰고 있다.
하지만 ‘체조 가족’이라는 타이틀은 여홍철에게 ‘부담’으로 작용한다. 내심 딸이 체조가 아닌 다른 종목을 택하길 바랐다는 그는 “(부모와) 같은 종목이라 색안경을 끼고 보는 분들도 있다”라고 토로했다. 선수촌 심판으로 활동한 김채은 감독은 이런 오해를 우려해 심판직까지 내려놓았다. 스트레스를 받기는 여서정도 마찬가지. 어릴 때 성적이 좋으면 “아빠 덕”이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며 “부모님이 체조를 안 하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라고 고백했다.
출중한 실력으로 부모 덕이라는 오해가 생길 틈을 주지 않는 선수도 있다. 프로야구 타격왕 이정후(키움 히어로즈)가 그 주인공이다. 아버지는 ‘바람의 아들’ 이종범 LG 트윈스 2군 감독. 아들은 전설로 통하는 아버지 이상의 실력을 과시하면서 스타로 떠올랐다. 특히 아버지에 이어 아들까지 ‘타격왕’에 올라, 야구 역사상 전무후무한 ‘부자 타격왕’ 기록을 세웠다.
이종범은 아들을 야구 선수로 키운 것을 잘한 일로 여기지만 처음엔 강하게 반대했다. 야구가 아닌 다른 종목이라면 기꺼이 도울 생각이었지만 야구만은 아니길 바랐다고 한다. ‘아버지의 후광을 입는다’는 시선을 우려해서다. 그래도 어린 아들을 말릴 순 없었다.
이정후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아버지가 출장 간 틈을 타 입단 테스트를 받고 야구를 시작했다. 극심하게 반대했던 이 감독과 달리 아내는 아들을 지지했다. 어릴 때부터 야구공을 치거나, 슬라이딩하는 아들의 모습을 자주 봐 온 엄마 입장에서는 나름의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종범의 예상대로 이정후는 ‘태어나니까 아빠가 이종범’, ‘아빠 덕에 언론 플레이를 한다’는 등 악성 댓글에도 시달렸다. 하지만 주변의 오해와 시샘을 이겨낸 끝에 지금은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강타자로 우뚝 섰다.
이호연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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