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나이 알 수 없는 비대면, 증거 확보 어려움…“OO학교 다니네?” 협박 당해도 피해자만 ‘끙끙’
캠스터디는 ‘줌’ 등의 화상회의 플랫폼을 이용해 서로 공부하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공유해 함께 공부하는 비대면 생활 학습 방법 가운데 하나다. 직접 만나지 않아도 같이 공부하는 느낌을 줘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어 공부에 더 몰입할 수 있다는 이유로 최근 젊은 층의 각광을 받고 있다. 해외 플랫폼인 ‘스터디스트림’을 시작으로 국내에서는 ‘구루미’와 ‘열품타’ 등이 온라인 캠스터디 플랫폼으로 주목 받았다.
취업 준비생 A 씨(25)는 최근 캠스터디를 하다가 함께 공부를 하던 남성으로부터 성적 피해를 입었다. 약속된 시간에 채팅방에 들어와 카메라를 켜자 각자의 책상 위 책과 필기구 등이 보였다. 얼굴은 공개하지 않기로 한 비대면 스터디였다. 한창 공부를 하던 중 남성의 움직임이 이상해졌다. 필기를 위해 책을 잡거나 책장을 넘기기 위해 책상 위에 올라와 있어야 할 왼손이 남성의 하체로 향했다. 뒤이어 팔 전체가 빠르게 움직였다. 남성은 A 씨가 보는 것을 알면서도 오랜 시간 음란행위를 지속했다. A 씨는 너무 놀라 아무런 대처도 하지 못 하고 그대로 방을 나왔다.
중학교 진학을 앞둔 자녀가 있는 직장인 B 씨(43)는 ‘스터디 위드 미(study with me)’ 방송을 하는 딸이 걱정이다. B 씨의 자녀는 주 1~2회 유튜브를 통해 공부하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방송한다. 영상이 나가는 동안에는 휴대전화를 만지지 못해 공부에 더 집중할 수 있고 시청자들이 감시자 역할을 해준다는 이유에서다. 단, 얼굴이나 이름 등은 공개하지 않기로 약속했다. 자녀가 방송을 시작하면 B 씨에게도 알람이 오도록 설정해놨다는 것도 안심이 됐다.
그럼에도 문제는 발생했다. B 씨는 “평소처럼 딸이 공부하는 모습을 보고 있는데 처음 보는 사람이 들어오더니 갑자기 ‘얼굴을 보여 달라’ ‘옷을 벗어봐라’ 등의 댓글을 올리고 성적인 욕을 이어갔다. 너무 화가 나서 ‘내가 부모인데 고소하겠다’고 하니 한동안 말이 없다가 ‘OO학교 다니네?’라는 말만 남기고 사라졌다. 당황스러워서 손가락이 굳었다. 자세히 보니 화면에 나온 딸의 노트에 진학 예정인 학교 이름이 작은 글씨로 쓰여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가장 속상한 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딸의 태도였다. ‘온라인에서 자주 있는 일이니 신경 쓰지 말라’고 하는데 요즘 아이들 세대에선 이런 괴롭힘 정도는 익숙해진 것 같아서 안타까웠다”며 “혹시 더 많은 정보를 알고 직접 찾아오거나 온라인에서 괴롭힘을 당할까봐 걱정이 크다”고 답답해했다.
이런 일이 적지 않게 일어나자 일부 캠스터디 플랫폼에서는 가이드라인을 마련해두고 있다. 캠스터디 플랫폼 구루미 관계자는 1월 20일 서면을 통해 “불법적인 행위에 대해 처벌될 수 있음을 알리는 ‘불량이용자 가이드’가 있다. 만약 피해자가 신고를 할 경우 가해자로 지목된 계정 소유자에게 내용 확인을 위한 이메일을 보내고 차단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증거화면을 캡처해 불량이용자로 신고를 하면 신고 누적에 따라 영구차단이 된다는 것이다.
한 관계자는 “캠스터디 데이터는 따로 저장되지 않는다”면서도 “경찰청이나 수사기관에서 공식적으로 기록을 요구할 경우 접속 로그를 제공할 수 있다”고 답변했다. 다만, 플랫폼 사용 중 발생한 디지털 성범죄에 대해 회사는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이용약관 제4장 제21조 책임제한에 따르면 ‘회사는 이용자 상호 간 또는 이용자와 제3자 간에 서비스를 매개로 발생한 분쟁에 대해 개입할 의무가 없으며 이로 인한 손해를 배상할 책임도 없다’고 명시돼 있었다.
문제는 이런 형태의 범죄의 경우 피해자가 피해 증거를 수집할 방법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캠스터디를 포함한 화상회의 플랫폼은 영상이 실시간으로 송출되는데 이 경우 갑작스럽게 발생하는 성적 피해를 따로 캡처하거나 저장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 서비스를 제공하는 플랫폼 측에서도 회원들의 모든 영상 데이터를 저장할 수 없다는 입장이라 사실상 이용자가 송출 화면을 녹화하지 않는 한 증거 영상을 갖기는 어렵다. 또 비대면 캠스터디 특성상 익명으로 모이는 경우가 다수라 가해자를 특정하기도 힘들다.
가해자를 찾지 못하는 경우 자책감은 남은 피해자의 몫이다. 앞서의 A 씨는 “처음부터 동성 스터디원만 구하는 사람도 많다. 나도 그렇게 할까 고민을 하다가 성차별을 하는 것처럼 보일까봐 일부러 제한을 두지 않았는데 결국 이렇게 됐다”며 “피해를 입은 직후에는 너무 불쾌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혹시 내가 수면 잠옷을 입고 공부한 것이 문제였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 뒤로 캠스터디를 하면 상대방의 화면을 볼 때마다 긴장하게 된다”고 말했다.
통신매체이용음란죄는 최근 3년 동안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성범죄다. 대검찰청과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이 발표한 범죄동향리포트에 따르면 2021년 2분기 통신매체이용음란죄 발생 건수는 770건으로 전년 동기(504건)에 비해 52.8% 증가했다. 2019년 2분기 발생 건수는 350건으로 매년 그 증가 폭은 커지고 있다. 그동안 불법 촬영물을 중심으로 디지털 성범죄가 다뤄졌지만 실제로는 더 넓은 범위에서 피해가 발생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국성폭력상담소 관계자는 “온라인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관련 범죄에 대한 상담도 늘어났다”며 “반드시 성범죄의 목적을 가지고 행위를 했을 때뿐만 아니라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범죄의 성립 요건을 충족해 미필적 고의가 인정된다면 얼마든지 처벌을 받을 수 있다. 피해자가 청소년일 경우 처벌 수위는 더 올라간다. ‘장난이었다’ ‘좋아해서 그랬다’ 등의 변명과는 무관하다. 청소년들도 이를 정확히 인식할 수 있도록 사회적 교육이 동반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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