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이쓰카시에서 난장판집으로 유명해 관광명소가 된 집. |
일본의 ‘고미 야시키(쓰레기 집)’, ‘고미 아파트(쓰레기 아파트)’는 상한 음식을 방치해 생긴 곰팡이나 구더기, 각종 벌레 등이 가득하다. 그래도 이 정도는 애교 수준이다. 물건을 담던 박스, 비닐, 컵라면 용기, 입지 않는 옷 등이 쌓이고 쌓여 천정까지 닿아 집 안에서 몸을 꼼짝도 할 수 없다. 집이 쓰레기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벽장 선반이나 방바닥이 통째로 가라앉아 아파트 아래층 주민이 피해를 본 경우도 있다.
2009년 일본 국토교통성의 첫 실태 조사에 따르면 일본 전역에 악명 높은 ‘고미 야시키’가 250채나 있다. 사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사태는 2000년대 중반부터 차츰 알려지기 시작했다. 집 안을 쓰레기 난장판으로 만드는 세입자의 행태에 화가 난 집주인이 청소대행업체에 청소를 맡기고, 이들 업체가 사진을 찍어 홈페이지에 홍보용으로 사용하면서 부터다.
쓰레기 집에서 생활하는 이들은 순순히 청소에 응하지는 않는다. “죄다 필요한 것인데 왜 치우느냐”고 대부분 반발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주변에서 정색을 하고 이야기해도 “쓰레기가 아니라 내 물건”이라고 주장한다. 분쟁이 나면 간혹 쓰레기가 재산으로 인정되는 경우도 있어 실상 행정당국도 어찌할 바를 모르고 뒷짐만 질 때가 많다.
이 때문에 ‘고미 야시키’ 세입자나 집주인 혹은 이웃 간에 크고 작은 갈등이 끊이질 않는다. 더군다나 한 번 더러워진 집은 조금만 청소를 게을리 해도 벌레가 순식간에 다시 나타난다고 한다. 그래서 예전에 ‘고미 야시키’였다고 소문이 난 집은 부동산 가격이 주변 시세보다 20%가량 싸다.
행여나 쓰레기 집이 이웃이면 정말 골치가 아프다. 쓰레기 더미로 인해 주변 일대가 바퀴벌레나 쥐, 파리 천국이 되기 때문. 처음에는 가볍게 불평이나 푸념을 하던 이웃도 자신의 집에서 쥐라도 발견하면 소스라치게 놀란다. 설상가상으로 ‘고미 야시키’가 있는 동네라고 언론 취재가 쇄도하고, 구경삼아 몰려든 관광객까지 덩달아 생기기까지 한다.
일본 이세자키시는 지난 2006년 쓰레기 더미 집을 강제로 청소를 하는 지방 조례를 도입했다. ‘고미 야시키’로 여러 번 신고가 접수되면 시 당국이 집에 들어가 강제로 청소를 하고난 뒤, 나중에 청소비용을 집주인에게 청구하는 방식이다. 청소를 해도 원상복구가 불가능하다고 판단될 경우에는 아예 집을 깡그리 철거하기로 한 지자체도 생겼다.
그나마 난장판집이 일반주택일 때는 사정이 더 낫다. 아파트일 경우 밖으로 쓰레기 더미가 잘 드러나지 않아 문제가 한층 심각하다. ‘고미 아파트’에서는 20~30년 만에 15㎡(4.5평) 남짓한 방에서 3~4톤의 쓰레기 더미가 나오는 게 보통이다. 사정이 이러니 최근에는 ‘고미 야시키’만 치워주는 전문 청소대행업체들이 늘어 업체 간 경쟁도 치열해졌다.
그럼 대체 누가 왜 이런 쓰레기 집을 만드는 것일까. “일에 지쳐서 집에 오면 너무 힘이 들어 치울 틈이 없다”는 30세 기술자. “부부 사이가 나빠져서 스트레스를 받아 집 자체에 애착이 사라지고 청소가 귀찮아졌다”는 45세 주부, “어차피 집에 올 사람도 없는데 나 혼자 컴퓨터를 쓸 공간만 있으면 된다”는 31세 간호사. “퇴직 후 중증 심장병을 앓고 몸이 불편해져 청소를 못 한다”는 80세 노인. 일본 경제지 <주간다이아몬드>에 따르면 쓰레기 더미 집주인의 나이·성별·직업은 다양한 편이긴 하나 80세 이상 노인이 비교적 많다. 그런데 이들의 공통점이 있다. 바로 혼자 살고 있다는 점이다. 10여 년 이상 오랜 기간 고독한 나날을 보내면서 남의 간섭을 일체 거부할 정도로 심한 고립감을 느끼거나 무력감에 시달린 이들이라고 한다.
이들의 심리 상담 사례 등을 제시·분석한 책을 펴낸 정신과의 가스가 다케히코 씨는 “이런 난장판 남녀가 쓰레기 더미 집을 만들기 전에 어김없이 사별이나 이별, 별거 등 가족을 잃는 경험을 했다”고 지적한다. 소중한 사람을 잃고 나서 자신에게 익숙한 것, 과거 기억이 나는 것이라면 그게 쓰레기든 헌옷이든 헌책이든 쇠붙이든 뭐든지 간에 집어 온다는 것이다. 일종의 강박성 장애인 셈이다.
한편 몇몇 지자체에서는 민간 복지 단체와 뜻있는 시민이 협력해 자원봉사로 청소에 나서기 시작했다. 이들은 절대로 한 번에 무리하게 청소를 하지 않고, ‘고미 야시키’ 집주인과 수차례 이상 대화를 시도한 뒤 허락을 받고 조금씩 쓰레기를 치우는 방법을 사용한다. 이러한 방법을 쓰면서 쓰레기 더미 집에서 살던 이들이 다시 원 상태로 돌아가지 않는 효과를 보고 있다고 한다.
조승미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산사태처럼 와르르르…
지난 2010년 5월 시카고 교외 ‘쓰레기 더미’집에서 70대 노부부가 구사일생으로 구조됐다.
<시카고트리뷴>에 따르면 각각 동물학자와 교사생활을 하다 은퇴한 남편과 부인은 자신의 집에 쌓인 쓰레기 더미에 2주간 거의 매몰된 상태로 갇혀 있었던 것. 부인이 쓰레기 더미 속을 다니다가 쓰레기가 갑자기 산사태처럼 와르르 무너져 깔렸다. 이를 보고 도우려고 뛰어오던 남편 역시 쓰레기 더미에 깔렸다.
이웃 주민의 신고로 구조당국에 의해 목숨은 겨우 건졌으나 부인은 정신착란 증세를 보였고, 남편은 식물인간 상태가 됐다. 구조대는 정작 쓰레기 더미 때문이 아니라 집안에서 풍기는 지린내와 비린내 등 심한 악취 때문에 구조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