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 이후 3년 만의 스크린 복귀작…캐릭터 구축 위해 ‘북한말 대사’ 일부러 더 넣기도
“서창대는 어떻게 보면 계략이나 술수 같은 걸 표현하는 인물인데, 계략가의 모습은 대본에 잘 나와 있었기 때문에 그것에만 충실하면 됐어요. 연기를 하면서 확장된 것은 ‘이 사람이 왜 정치에 전면으로 나서지 못하고 그림자 속에만 있어야 할까’에 대한 당위성이었죠. 그 부분에 대해서 감독님과 많이 이야기를 했는데 아무래도 이북 출신이란 트라우마, 출생에 대한 불만 등을 감안해 연기하게 됐던 것 같아요.”
‘킹메이커’에서 이선균이 맡은 서창대는 ‘이기기 위한 선거’만을 위해 움직이는 ‘선거판의 여우’다. 연임 중인 박정희 대통령과 김대중 신민당 대선후보가 맞붙었던 1971년, 역대 대통령 3명으로부터 선거 지원 요청을 받을 정도로 선거판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자랑했던 ‘마타도어의 귀재’ 엄창록을 모티브로 한 캐릭터다.
서창대는 민초와 함께 거대 권력에 맞서려는 정치인 김운범(설경구 분)의 인품과 실력을 높이 사 그와 함께 움직이지만, 김운범의 빛이 강할수록 그 그림자 속에 갇혀 있어야 하는 자신의 현실 탓에 끝내 김운범과 다른 길을 택하게 된다. 시대상 출세에 가장 큰 족쇄가 될 수밖에 없는 자신의 출신을 콤플렉스로 여기며 고뇌하는 부분이 영화에서 강조된 것도 서창대의 이런 결심에 대한 당위성을 위함이었다고 이선균은 설명했다.
“원래 시나리오 상에서는 이북 말이 많지 않았는데 감독님께 말씀드려서 부분 부분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그래야 캐릭터의 행동에 당위성이 좀 더 부가될 것 같았거든요. 처음부터 끝까지 이북 말 대사였다면 부담이 됐겠지만, 부분 부분 나왔기 때문에 큰 부담 없이 연기했죠(웃음). 엄창록이라는 인물에 대해 많은 정보가 없었기 때문에 고민이 많았지만 캐릭터 구축 면에서 볼 때 다른 분들과 비교해 부담이 덜 했다고 생각해요.”
처음 정치판에 뛰어들었던 시작부터 김운범의 존재감을 알리며 뒷공작에 분주했던 중반부, 그리고 그림자로밖에 남을 수 없다는 자괴감과 김운범에 대한 애증이 뒤섞이며 끝끝내 다른 길을 걸어야 했던 후반부에 이르기까지…. 러닝타임 내내 서창대는 굴곡이 많은 감정선을 그려야 했다. 설경구가 맡은 김운범이 묵직하게 하나의 톤으로만 존재해야 하는 것과 정반대의 선에 있는 셈이다. 이선균은 들쑥날쑥하는 감정선보단 일관된 톤을 유지하는 것이 더 어렵다며 설경구의 연기에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설)경구 형 연기야 항상 놀랍죠(웃음). 대학로에서 공연하실 때부터 지금까지 그 형님의 행보는 정말 항상 놀라워요. 특히 제가 보면서 배워야 하겠다고 꼽은 점 중에 하나는 지금도 자기관리를 정말 잘하신다는 점이에요. 매일매일 촬영 나오기 전에 1시간씩 줄넘기를 하신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경구 형처럼 매일매일 관리는 못하고 그냥 고무줄처럼 관리해요, 늘렸다가 당겼다가(웃음). 또 무뚝뚝해 보이지만 현장에서는 모든 스태프, 출연진들을 다 챙겨주시는 모습을 보고 큰 감동을 느꼈어요. 그런 점은 정말 배워야 할 부분이죠. 저는 그런 걸 잘 못 하거든요(웃음).”
이번 ‘킹메이커’의 촬영 현장은 ‘불한당:나쁜 놈들의 세상’과 같은 감독, 제작진, 주연 배우로 이뤄져 있어 갓 들어온 이선균이 혹시나 소외감을 느끼진 않았을까 하는 우려(?)가 일기도 했다. 특히 변성현 감독과 설경구는 영화판의 ‘톰과 제리’처럼 티격태격하는 사이로 유명했기에 그 돈독한 관계에 새롭게 들어갈 수 있을지가 영화 외적인 관심사로 부상했다. 이 질문에 이선균은 웃음을 터뜨리며 “외톨이 같은 느낌은 전혀 없었다”고 손사래를 쳤다.
“서로 호흡도 잘 맞고, 현장 팀워크도 정말 좋았어요. 사실 저도 ‘불한당’을 굉장히 재미있게 봤기 때문에 꼭 같이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거든요. 그러던 차에 (출연) 제안을 주시니 너무 좋았죠. 경구 형하고 감독님의 관계만 봐도 재미있기도 했고요(웃음). 연기에 좀 참고했던 게, 그 두 분의 관계가 진짜 창대와 운범 같았거든요. 큰형과 막냇동생 같기도 했는데, 그런 걸 보고 있으려니까 진짜 재미있었어요(웃음).”
‘킹메이커’는 ‘불한당:나쁜 놈들의 세상’ 이후 설경구·변성현 감독의 재회라는 점에서도 주목 받았지만, ‘기생충’(2019) 이후 이선균이 선택한 첫 작품이라는 점도 영화관계자들은 물론, 시네필들의 눈길을 끌었다. K콘텐츠가 제대로 주목을 받기 시작한 시점을 ‘기생충’의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 전후로 잡는다면, 그 이후부터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이 이끌며 K콘텐츠의 또 다른 르네상스를 연 참이었다.
각종 영화제와 시상식의 주역이 돼 본 선배의 입장에서 이선균은 ‘오징어 게임’ 출연진의 SAG(미국배우조합상) 노미네이트를 축하하며 “가면 일단 굉장히 좋은 샴페인이 많으니까 마음껏 즐기길 바란다”며 웃음을 터뜨렸다.
“일단 ‘기생충’이란 작품에 제가 참여했다는 것 자체가 정말 큰 영광이고 행운이었죠. 그런데 그 다음의 행보라든지 이런 걸 봤을 때 저 자신도 ‘기생충’의 끈을 계속 잡고 있으면 안 될 것 같고, 또 그런 부담을 느낄 필요도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기생충’ 이후의 저는 이전과 큰 차이가 없는 것처럼 느껴지거든요. 부담보단 그저 감사하단 마음이 훨씬 크죠. 지금 ‘오징어 게임’이나 다른 한국 OTT 작품들이 해외의 관심을 많이 받는 데에 ‘기생충’이 그 시작을 만든 것 같아요. 한국 영화 100주년이 되는 해에 ‘기생충’이 방점을 찍으며 또 다른 시작이 됐고, 이제는 K콘텐츠가 중심이 돼 세계의 관심을 받고 있다는 자체가 기쁠 뿐이에요.”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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