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년 우승은 행운도 따라…명장 김영덕 감독도 우리만 만나면 작아지더라”
프로야구 원년 구단인 롯데의 역대 단 2회뿐인 우승이다. 당시 롯데는 '파격 인사'로도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야구단 살림을 이끄는 단장 자리에 '마도로스' 출신 송정규 전 단장을 앉힌 것이다. 30년 전, 단장 부임 2년 만에 팀을 우승으로 이끈 송 전 단장을 창간 30주년을 맞아 '일요신문'이 만났다.
어린 시절부터 야구에 깊이 빠져 항해사, 선장, 도선사 등을 거치며 '바다 사나이' 생활을 하는 와중에도 야구 서적을 직접 낼 정도였던 그는 여전히 롯데 구단과 야구에 대한 애정을 품고 있다.
"당연히 지금도 야구를 사랑한다. 매 시즌 야구를 보면서 시간을 보내다 보니 시간이 참 빨리 흐른 것 같다. 단장으로 지내며 우승을 했던 것이 30년 전 일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그 사이 롯데가 우승을 한 번도 하지 못했다는 점도 놀랍다(웃음)."
송 전 단장은 30여 년 전 그를 롯데 단장으로 만든 계기였던 책 ‘필승V전략 롯데자이언츠 : TOP SECRET’ 2탄 격을 준비하면서 지난 2021시즌에는 롯데의 144경기를 모두 지켜봤다고 한다. 그는 "단장직을 내려놓고 나서 단 한 경기도 빼놓지 않고 본 시즌은 처음인 것 같다. 때로는 괴롭기도 했다. 롯데가 성적이 좋지 않아 보기 괴로운 경기력을 낼 때도 있었다"며 웃었다.
#행운의 1992년
그는 한국시리즈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린 1992년을 떠올리며 "행운이 따라줬다"고 냉정히 평가했다. "당시 우승 후보를 거론할 때 롯데는 빠졌다. 내부에서도 우승을 기대하지는 않았다"며 "시대의 지배자였던 해태(현 KIA)를 포함해 빙그레(현 한화), 삼성 등의 우세가 점쳐졌다"고 설명했다.
실제 1992년 롯데는 정규리그 3위에 올랐다. 준플레이오프와 플레이오프를 모두 거쳤고 한국시리즈를 거머쥐었다. 이 과정에서 만난 삼성, 해태, 빙그레를 상대로 페넌트레이스 전적에서 모두 열세를 보였지만 단기전 승부에서 집중력을 보였다. 송 전 단장은 "전력도 중요하지만 운과 기세 또한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을 느꼈다"며 "기가 막힌 징크스도 있다. 당시 롯데의 강병철 감독도 좋은 지도자지만 빙그레 김영덕 감독은 한국 프로야구 초기를 대표하는 명장이었다. 그런데도 김 감독은 롯데만 만나면 한국시리즈에서 준우승에 머물렀다. 그리고 그 롯데의 2회 우승 모두 강병철 감독이 만들었다. 이렇게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징크스도 스포츠의 묘미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그는 롯데 우승의 원동력으로 당시 마운드에서 맹활약한 투수 트리오를 꼽았다. "염종석, 윤학길, 박동희. 이 투수 세 명이 정말 잘 던져줬다"며 "모두 완투가 가능한 투수들이었다. 그래서 단기전인 포스트시즌에서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3인방 중에서도 신인이었던 염종석은 우승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준플레이오프와 플레이오프, 한국시리즈를 거치면서 30이닝을 넘게 소화하며 4승 무패 1세이브 평균자책점 1.47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현재까지도 롯데 팬들이 가장 그리워하는 선수 중 한 명이다. 송 전 단장은 당시 롯데 구단 사장과 염종석의 일화를 공개했다.
"고등학교 졸업 직후 입단한 선수가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으니 얼마나 예뻐했겠나. 당시 사장이 '염종석을 양아들로 삼겠다'고 할 정도였다. 그런데 내가 적극 만류했다. '야구 선수는 영원히 잘 나갈 수 없다. 나중에 성적이 떨어져도 지금처럼 보살펴줄 수 있겠나'라고 물으니 아무 대답이 없더라. 경기력이 떨어지고 애정도 식으면 아버지를 일찍 잃은 종석이에게 오히려 상처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었고 그 말을 그대로 전했다. 그래서 결국 '양자로 들이겠다'던 사장의 말은 없던 일이 됐다."
투수 세 명의 힘으로만 우승을 일군 것은 아니었다. 한국시리즈에서 롯데에 맞선 빙그레에도 송진우, 한용덕, 정민철 같은 대투수들이 존재했다. 타선에선 당대 최고의 거포였던 장종훈을 포함해 장타를 겸비한 이정훈, 이강돈 등이 '다이너마이트 타선'으로 불렸다.
송 전 단장은 "우리는 다이너마이트 타선보다 이름값은 떨어지지만 박정태, 김민호, 전준호, 김응국, 이종운 등이 분위기를 타며 터져줬다"며 "장타력은 다소 부족할 수 있어도 컨택과 주루로 승부하는 타자들이었다. 빙그레가 포병 부대였다면 우리는 '발 빠른 소총부대'였다고 할까. 준플레이오프부터 기세를 탄 우리 타자들을 막을 투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송 전 단장의 반전 "우승 직후가 가장 힘들었다"
송 전 단장은 1992년 롯데의 우승을 '운이 따라준 덕'이라고 표현하며 "나 또한 행운이 따른 단장"이라고 말했다. 그는 "부임 이전 롯데는 1990년 가을 야구조차 참가하지 못한 팀(6위)이었지만 1991년 정규리그 4위, 1992년 3위를 차지했다"며 "상승무드에 있었고 젊은 선수들이 많았기에 분위기를 탈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선수들과 구단이 성장을 거듭하며 흥행도 따라왔다. 송 전 단장이 팀을 이끌던 1991년과 1992년, 롯데는 2년 연속 한 시즌 100만 관중을 돌파했다. 1991년 롯데의 100만 관중은 한국 프로야구 최초의 일이었다. 1992년 기록한 약 120만 명의 관중 수는 현재까지도 롯데 역대 5위의 기록이다.
송 전 단장은 "많은 팬들이 찾아와 준 것은 물론 선수들이 잘해준 덕분"이라면서도 "단장 부임 이후 마케팅적으로도 큰 노력을 했다. 기존에 없던 경기장 이벤트 등을 만들어냈고 많은 팬들이 호응해 줬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벤트 등을 열려면 돈이 필요한데, 구단에서 영 협조를 안 해주더라. 직접 스폰서 등을 찾아 나서느라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고 덧붙였다.
프런트 오피스의 분위기를 바꾸려는 노력도 했다. 송 전 단장은 부임 직후 팀 분위기를 떠올리며 "패배주의가 팽배해 있다고 느꼈다"고 회고했다. "롯데는 1984년 한국시리즈 우승 이후 성적이 신통치 않았다. 1989년에는 7구단 중 7위, 1990년에는 6위였다. 프런트도 그런 분위기였다. 오후 늦게 출근하는 직원이 있는가 하면 사무실 내에서 고스톱판이 벌어지기도 했다"며 "한 직원은 내게 '암표 장사를 우리가 직접 하자'는 제안도 하더라"라고 전했다. 송 전 단장은 점심 식사를 함께하고 업무를 시작하는 시스템을 정착시키며 직원들을 다독였다.
단장 부임 이후 두 번째 시즌에 꿈 같은 우승을 만들어냈지만 송 전 단장은 "우승 직후가 가장 힘들었다"고 말한다.
"우승하던 순간은 너무 행복했지만 그 뒤 후폭풍이 굉장히 강했다(웃음). 우승이라는 성과를 냈으니 선수들은 보상을 원했고 구단 수뇌부는 비용이 늘어나는 것을 원치 않았다. 단장이라는 중간 위치에서 정말 고생스러웠다. 또 팬들은 대규모 우승 기념 이벤트를 기대했지만 구단 예산이 많이 편성되지 않았다. 야구단 인기가 올라가고 우승까지 하니 주변 인물들의 관심도 부담이었다. 부산지역과 롯데 그룹 내 유력인사들, 당시 언론들도 '요구사항'이 많았다. 입장권을 달라고 하는 것은 기본이고 구단 점퍼, 사인볼 등 내놓으라고 하는 것들이 많아 일일이 열거하기가 힘들 정도다. 심지어 홈경기 경비를 맡은 경찰서에도 사인볼 몇 박스를 갖다 줘야 했다."
그는 우승 직후 2~3개월을 '가장 바쁘고 정신적으로 시달렸던 시기'로 기억하고 있다. 또 "한 시즌간 함께 노력한 프런트 직원들에게는 보상이 적었다"며 "선수단은 보너스 잔치를 벌였지만 직원들에게는 보상이 미미했다. 프런트 분위기가 좋을 수 없었다. 나 또한 개인적으로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다"고 떠올렸다.
#우승 단장이 바라보는 2022시즌
롯데의 마지막 우승 단장인 그는 2022시즌을 비관적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조심스럽지만 올해도 큰 기대는 하지 않는 것이 좋지 않겠나"라며 "지난 시즌에 비해 크게 나아진 부분이 있는가. 새로운 외국인 선수들에게 기대를 걸어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경험했던 "상승 분위기에 올라타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강팀이 우승하는 것이 아니고 우승한 팀이 강팀이 된다"는 것이다.
"1992년에도 롯데는 객관적 전력 면에서 강팀은 아니었다. 하지만 1991년 가을 야구를 경험하며 경험을 쌓았고 1992년 이변을 만들었다. 지금 롯데는 자꾸만 먼저 전력을 갖춰놓겠다는 계획만 말하는데, 조금은 덜 갖춰졌더라도 호기롭게 덤비는 자세가 필요하다. 최근 우승에 성공한 NC, KT가 모두 그랬다."
이번 겨울 롯데의 최대 화두였던 프랜차이즈 스타 손아섭의 FA 이적에 대해서는 "아쉽지만 이적 자체는 이해가 된다. 많은 기록들이 내리막을 걷고 있었던 것은 맞다"면서도 "대안이 없었다는 것, 이적 이후 팀의 해명은 이해하기 어렵다. '가성비'라는 표현이 나왔는데 롯데그룹 감사팀도 아니고, 굳이 그렇게까지 돈을 아낄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비판의 화살은 성민규 현 단장에게도 향했다. 송 전 단장은 "반복해서 '육성'을 외치는데 프로야구 구단으로서 선수 육성은 당연히 기본이다. KBO리그 10개 구단 중 육성을 하지 않는 구단이 있나"라며 "이번 시즌에는 성적을 내야 한다. 지금도 늦었다. 오랜 시간 팬들이 기다려 줬기에 이번 시즌도 실패한다면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반복적으로 하위권에 처지는 롯데를 바라보며 "젊은 층 팬들이 안쓰럽다"고 말한다. "40대 이상 연령대의 팬들은 그래도 우승한 모습을 바라봤던 추억으로 롯데를 응원한다. 그런데 20대에서 30대 젊은 팬들의 기억 속 롯데는 야구를 못 하는 팀이다. 롯데가 '구도 부산'의 자존심을 살려주길 기다린다"고 말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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