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자 런던으로! 7월 25일 2011 상하이 세계수영선수권대회 남자 자유형 200m 준결승에 참가한 박태환이 스타트하고 있다. 로이터/뉴시스 |
#세계 최강 스트로크 VS 해도 해도 안 되는 잠영
수영선수 박태환의 강점은 수면 위에 있다. 즉 레이스할 때의 역영 자세가 완벽에 가깝다는 찬사를 받고 있다. 이른바 ‘I자형 명품 스트로크’. 팔을 앞으로 뻗었다가 뒤로 물을 걷어낼 때 팔 모양은 I자와 S자로 구분 지을 수 있다. 전자에 가까울수록 깊은 물을 잡아내고, 물의 저항을 덜 받는다. “아름답다”는 표현이 나올 정도인 이런 스트로크가 가능한 이유는 박태환이 양쪽 악력과 팔·다리의 힘이 거의 비슷하기 때문이다. 좌우 밸런스가 공고히 잡혀있는 것이다. 여기에 상체가 작아 물의 저항까지 덜 받는다. 남들이 따라하고 싶어도 쉽지 않은 박태환만의 비결이라고 할 수 있다. 또 박태환이 초반 50m는 부진하지만 이후 레이스를 거듭할수록 힘을 내고, 그리고 특유의 눈부신 막판 스퍼트를 발휘할 수 있는 원동력이 여기에 있다.
이동운 대한수영연맹 이사는 “영법으로 보면 박태환은 나무랄 데가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이번 세계선수권 400m 결승에서 박태환이 가장 불리하다는 1번 레인에서 레이스를 펼치고도 우승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눈부신 스트로크 덕분이었다.
박태환의 문제는 이번 대회 내내 화제가 됐던 잠영(潛泳)에 있다. 박태환 스스로도 “잠영을 오래하면 숨이 차다”고 고충을 토로한 바 있다. 박태환에 대한 관심이 워낙 높았던 까닭에 중계방송을 지켜보던 모든 이들이 박태환의 잠영을 걱정할 정도였다.
수영에서는 출발과 턴동작 직후 잠영을 한다. 잠영은 스트로크 동작보다 약 1.4배 정도 빠르다. 스타트 블록이나, 벽을 차고 나오는 탄력이 레이스 때보다 더 빠른 속도를 낳고, 또 물의 저항도 덜 받기 때문이다. 이런 잠영은 15m까지 할 수 있다. 세계 정상권 선수들은 12~13m다. 그런데 박태환은 고작 6~7m에 불과하다. 연습 때 10m까지 끌어올렸다고 했는데 실전에 나타나지는 않았다.
그리고 더욱 힘든 것은 장점인 스트로크처럼 잠영도 생각보다 개선이 어렵다는 점이다. 박태환을 키운 노민상 전 경영대표팀 감독(중원대 교수)은 “잠영은 신체적인 조건과 함께 어려서부터 몸에 배 있어야 한다. 쉽게 안 고쳐진다. 볼 코치나 (박)태환이가 잘 알고 있으면서도 고쳐지지 않는 게 이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즉, 400m는 잠영의 약점을 레이스로 만회하기에 충분하지만 100m나 200m에서는 극복할 수 없는 한계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투쟁심이 강해졌다 VS 라이벌이 너무 많다
이번엔 ‘흐림’부터 보자. 지금 세계 수영계는 절대강자 마이클 펠프스가 주춤하는 사이에 박태환을 비롯, 중국의 쑨양, 400m 세계기록 보유자인 파울 비더만(독일), 그리고 이번 대회에서 새롭게 부상한 ‘괴짜’ 라이언 록티(미국), 100m 우승자 제임스 매그너슨(호주) 등이 나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펠프스도 말 그대로 주춤했을 뿐 이번 세계선수권에서도 접영에서 우승하는 등 내년 런던올림픽에서 또 한 번 포효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박태환 입장에선 라이벌로 꼽히는 선수들, 누구 하나 얕볼 수가 없다. 쑨양은 자유형 800m에서 여유롭게 금메달을 따며 호시탐탐 400m를 넘보고 있고, 록티는 자유형 200m 우승을 비롯해 4관왕을 달성했다. 펠프스, 비더만, 매그너슨도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선수들이다. 특히 펠프스는 마리화나 사건 등 계속 구설에 오르며 연습량이 충분하지 않았다고 한다. 올림픽을 앞두고 몰아붙인다면 또 한 번 무서운 선수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이밖에도 100m 세계기록 보유자인 세자르 시에로 필류(브라질)와 그레이엄 무어(남아공) 등 쟁쟁한 스프린터들이 많다. 경쟁이 치열한 만큼 조금만 방심했다가는 우승이나 메달은커녕 2009년 로마처럼 아예 결승 진출에 실패하는 ‘참사’를 낳을 수도 있다. 그런데 박태환에게는 예전에는 없던 장점이 하나 새로 생겼다. 승부근성이야 두말하면 잔소리일 정도로 박태환은 강하다. 이런 박태환이 몰라보게 성실하고, 자기관리에 투철해진 것이다.
▲ ‘제80회 동아수영대회’ 200m 남자 자유형 경기에서 아시아 신기록을 세운 박태환이 노민상 감독과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동아일보 |
그런데 박태환은 최근 몰라보게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늘 여유가 넘치고, 진지할 때는 진지하고, 스스로 “수영이 재미있어졌다”고 말하기도 한다. 소속사인 SK텔레콤에 따르면 박태환이 이제 전국민의 관심을 받는 스타플레이어로 사생활도 나름 잘 통제한다고 한다.
노민상 교수는 “그때(2008년 전후)가 진짜 어려웠다. 사춘기였고, 운동보다 생활을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더 중요했다. 그런데 이제 태환이는 완전히 프로가 됐다. 성숙해진 것이다. 이런 자세가 향후 태환이의 경기력을 더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스프린터 전환이 짧았다 VS 키는 늘일 수 없다
박태환은 올 초 공식적으로 1500m를 포기하고 정식으로 스프린터로 변신했다. 전문적인 스프린터로 전환해 집중적으로 훈련한 것은 반년밖에 안 된 것이다. 이렇게 짧은 시간 동안 연습해서 400m 우승, 200m 4위, 100m 준결승 진출은 나쁘지 않은 성적이다. 런던올림픽에서 400m 2연패는 물론이고, 200m까지 노려볼 만하다는 낙관적인 전망이 그래서 가능하다. 기술적으로도 이번 대회에서 봤듯이 박태환이 출발 반응 속도는 최정상급이다. 잠영거리를 조금만 늘리고, 턴 동작을 보완한다면 런던에서는 2관왕은 물론이고, 세계기록 경신까지 가능하다는 분석이다.
그리고 박태환에 대한 지원도 강력하다. 노민상 교수는 “2008베이징올림픽 준비 때는 6000만 원을 썼다. 그런데 이번 런던은 15억 원이다. 투자가 많으면 결실도 큰 법이다. 이렇게 좋은 조건 하에 훈련을 하기 때문에 기대할 만하다”고 설명했다. 돈만 많이 쓰는 것이 아니라 소속사 SK텔레콤은 이미 ‘박태환 전담팀’을 꾸려 체계적인 지원을 하는 데 익숙해져 있다.
반면 결코 보완할 수 없는 약점도 있다. 바로 스프린터에게는 아주 중요한 타고난 신체조건이다. 박태환은 키 183㎝에 체중 76㎏이다. 일반인으로는 보기 드문 건장한 체격이지만 자유형 스프린터로는 아담하기만 하다. 라이벌인 중국의 쑨양은 198㎝, 세계기록 보유자인 3위 파울 비더만(독일)은 190.5㎝, 수영황제 마이클 펠프스와 200m, 우승자 라이언 록티는 각각 193㎝와 188㎝다. 발 크기도 ‘왕발’로 유명한 펠프스(350㎜)를 비롯해 대부분이 300㎜가 넘는데 박태환은 285㎜로 기성화(旣成靴)를 사 신을 수 있는 수준이다. 앞서 설명한 잠영의 한계도 사실 이런 신체조건에서 기인하는 바가 많다. 박태환도 이번 상하이 대회 때 아버지 박인호 씨에게 이런 문자를 보내기도 했다. ‘너무너무 아쉽다. 키가 조그만 더 컸으면 좋겠다’라고.
이제 박태환의 장단점은 너무 뚜렷하게 드러났다. 2012 올림픽무대까지 단점을 어떻게 보완하고 장점을 극대화하느냐에 따라 런던의 최종 날씨가 결정된다고 할 수 있다.
세계선수권대회를 마친 박태환은 한 달간 국내에서 휴식을 취한 뒤 9월부터 호주 멜버른으로 건너가 올림픽을 준비할 예정이다.
유병철 스포츠전문위원 einer@ilyo.co.kr
비더만은 고래 펠프스는 갈치 나는 막가파…
이번 상하이 세계수영선수권에서 박태환이 또 한 번 세계제패에 성공하면서 그가 남긴 말 한마디 한마디가 화제다. 박태환 어록이 등장할 정도다. 한 트위터리안은 ‘주로 물속에서 살아서 그런지 말을 참 재미있게 한다’고 촌평을 날리기도 했다.
▲“비더만은 몸이 좋아 고래를 연상시킨다. 펠프스는 키는 크지만 호리호리해 날렵한 갈치 같다”, “록티는 둘을 합친 아이언맨 같은 선수”
이번 상하이 입담 시리즈의 대상감이다. 7월 24일 열린 자유형 400m 예선 이후에는 경쟁선수를 ‘어류’에 비유한 것이다. 비유 자체가 재치가 넘친다. 이 종목 세계기록 보유자인 파울 비더만(독일)에게는 우람한 몸집 때문에 고래를 닮았다고 했고, 193㎝의 키에 호리호리한 몸매를 가진 ‘수영황제’ 마이클 펠프스(미국)에게는 ‘갈치’란 별명을 붙였다. 25일 200m 결승을 마친 후에는 우승자 록티를 티타늄의 몸을 가진 영화주인공 아이언맨에 비교하기도 했다.
▲“나는 막가파 스타일. 눈에 뵈는 것 없이 그냥 한다”
앞선 ‘어류 비유’가 화제가 되자 박태환 스스로는 무엇에 비유하느냐 질문이 쏟아졌다. 이에 박태환이 답한 것이다. 막가파! 이 거침없는 표현이 또 한 번 좌중을 웃겼다. 이런 박태환은 27일 100m 예선을 마친 후에는 “아이~ 애들이 너무 빨라요”라며 잠시 주저앉기도 했다.
▲“아이~ 걔는 왜 자꾸 내 이야기만 한데요?”
박태환은 상하이에 도착하면서 400m에 대한 전망을 묻는 질문에 “상대는 쑨양이 아니고 나 자신”이라며 말을 아꼈다. 그런데 이후 쑨양이 광저우아시안게임에서 진 경험을 되돌려주겠다고 선언한 것을 듣고 박태환은 이렇게 받아친 것이다. 살짝 미간을 찌푸리면서 말이다.
▲“이 기록으로 세리머니는 안 되겠다”
400m 금메달을 딴 직후 왜 세리머니를 안 했냐는 질문에 대해. 이제는 잘해도, 못해도 유머로 승화시킬 줄 안다. 박태환은 이렇게 농담으로 말문을 연 뒤 이어 “가까운 대회에서 꼭 세계신기록을 깨겠다”고 진지하게 답했다.
▲“저는 힘들었지만 늘 보시는 분들이 재밌었으면 하고 생각해요”
400m 결승 레이스에 대해 ‘짜릿한 레이스였다’는 칭찬을 받자 박태환이 내놓은 대답이다. 박태환은 이렇게 말할 때 특유의 살인미소를 짓는다.
한편, 이번 대회에서 4관왕에 오른 라이언 록티(27·미국)는 수영선수 나이로 보면 ‘노장 투혼’을 보인 셈인데 실력만큼이나 독특한 생활 방식으로도 주목받았다. “2008년까지 먹는 것에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살았다. 점심과 저녁을 햄버거, 패스트푸드로 해결했다. 건강에 신경 썼다면 10배는 더 좋은 선수가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술도 많이 마신다. 스트레스나 고민들을 풀기 위해 친구들과 놀면서 음주가무를 즐긴다”고 했다. 이건 입담이 아니라 커밍아웃에 가깝다. [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