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그룹 용퇴 인적쇄신 ‘연대론 사전포석’ 관측…임대차3법 사과하고 이대녀·호남 민심 공략 승부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 설 전 역전은커녕 일부 조사에선 양강 지지도가 두 자릿수로 벌어졌다. 최악 땐 설 이후 ‘패배의 그림자’가 여권 전체를 휘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후보는 부동산(정책)을 비롯해 이대녀(세대)·호남(지역) 승부수 띄우기에 나섰지만, 충격요법 없이 판을 뒤집을지는 미지수다. 위기론이 잦아들지 않자 이 후보 측은 가신그룹 7인회의 2선 후퇴 카드를 꺼내들었다. 송영길호도 3·9 서울 종로 보궐선거 무공천과 동일 지역 3선 초과 금지를 천명했다.
설 연휴 직전 이 후보 측의 7인회 2선 후퇴와 당 정치혁신안이 터져 나온 것은 ‘국면전환 카드가 없다’는 여권 내부의 자성론이 한몫했다. 당 인사들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다시 앞서기 시작하자, “국면전환 카드도 모멘텀도 정책효과도 없다”며 선거대책위원회 전략을 질타했다. 특히 당 내부 여론조사에서도 이 후보가 꾸준히 열세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한 전략통은 “양자 구도 골든크로스(지지도 역전 현상) 때도 (사실은) 1∼2%포인트(p) 뒤처졌다”고 털어놨다. 다른 인사들의 인식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 후보가 최소 5∼6%p 앞서는 조사가 속출했을 때도 당 수뇌부에선 ‘윤석열 우위’로 판단했다는 것이다.
그 근거로는 내부 여론조사 결과와 함께 ‘샤이 보수(여론조사 응답에 잡히지 않는 보수층)’가 꼽혔다. 여권 한 인사는 “범보수 지지층이 윤석열 국민의힘·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로 양분되지 않았느냐”며 “파괴력을 놓고 의견이 분분할 수는 있어도 샤이 보수는 필연적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 구도”라고 했다. 민주당 한 중진 의원도 “샤이 보수층은 최소 4∼5% 안팎에 달할 것”이라며 “이 후보가 윤 후보를 앞섰더라도, 표면적인 수치만 앞서는 ‘무늬만 골든크로스’”라고 했다.
앞서 슬림화한 당 선대위의 2차 개편론이 휘몰아친 것도 이 때문이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이 후보 공식 선거운동 애플리케이션인 ‘이재명 플러스’에 “선대위를 해체하라” “선대위에 합류한 의원들은 사퇴하라” 등의 글을 쏟아내고 있다. 민주당 선대위 관계자들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며 “엄중하게 받아들인다”고 파장을 예의주시했다.
여권이 대선 전략을 놓고 갈팡질팡하는 사이, 양강 지지도는 두 자릿수로 벌어졌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TBS 의뢰로 1월 21∼22일 조사(공표 23일,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한 결과, 윤 후보가 43.8%를 기록, 이 후보(33.8%)를 10%p 차로 앞섰다. 안 후보는 11.6%,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2.4%였다.
일촉즉발 위기를 느낀 이 후보는 1월 24일 자신의 안방인 경기 지역을 순회하는 과정에서 “완전히 다른 새로운 정치로 보답하겠다”며 큰절을 했다. 이 후보가 사과의 큰절을 한 것은 지난해 11월 24일 이후 두 번째다. 인적 쇄신론도 동시다발적으로 터졌다. 기름을 부은 것은 이 후보 최측근 그룹인 이른바 ‘7인회 2선 후퇴’였다. 김영진 민주당 사무총장을 비롯해 정성호 김병욱 임종성 문진석 김남국 의원은 “이 후보가 당선돼도 임명직은 일절 맡지 않겠다”고 했다. 7인회 소속이지만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상실한 이규민 전 의원은 불참했다.
이에 이 후보는 “반성과 새 시작의 뜻”이라고 했다. 양측은 사전교감설에 대해 부인했지만, ‘7인회 2선 후퇴’는 여당이 위기 때 꺼낼 카드 중 하나였다. 2012년 대선 때도 문재인 당시 민주통합당 후보가 계파 패권주의 프레임에 갇히자,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을 포함한 친노(친노무현) 9인방은 2선 후퇴를 전격 선언한 바 있다. 그에 앞서 1997년 땐 권노갑 전 의원이 포함된 동교동계 핵심 7인방이 “집권 시 임명직 공직에 나서지 않겠다”고 승부수를 띄웠다.
정치권 안팎에선 이 후보 측 7인회의 2선 후퇴가 ‘과거 실세 그룹의 백의종군’을 뛰어넘을지가 관전 포인트라는 분석이 나왔다. 2012년 대선 당시 친노 2선 후퇴는 사실상 ‘무늬만 백의종군’에 그쳤다. 이들은 2선 후퇴 선언에도 불구하고 막후 실권 행사 의혹에 시달렸다. 친노 9인방 2선 후퇴 후 김현미 전 의원이 대선 TV토론 실무를 맡았는데, 양 전 원장이 일부 자료의 인수인계를 하지 않아 선대위 내부 권력투쟁이 벌어졌다는 말까지 나왔다. 친노 패권주의 프레임은 18대 대선 문재인·안철수 단일화 걸림돌로도 작용했다.
동교동계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권노갑 전 의원은 DJ(김대중 전 대통령) 자금 관리를 맡는 등 공식 직함 없이도 실세로 군림했다. 정치권 한 원로 인사는 “DJ 정부 내내 임명직과 거리를 둔 권 전 의원 등이 정풍운동에 밀려나지 않았느냐”고 했다. 권 전 의원은 2000년 여당인 새천년민주당 지명직 최고위원직에 올랐지만, 이듬해 10월 재보궐 선거 참패로 촉발된 ‘정동영발 정풍운동’의 직격탄을 맞고 사퇴했다.
여권발 인적 쇄신 파급력을 가늠할 리트머스 시험지는 7인회 백의종군과 맞물린 ‘86(80년대 학번·60년대 생)그룹 용퇴론’이 될 전망이다. 양자가 선후관계를 형성할 땐 ‘여권발 도미노식 인적 쇄신’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민주당 대학생위 한 관계자는 “당 산하 정당혁신추진위가 주장한 ‘3선 연임 초과 제한’에 대한 중진들의 화답이 있느냐가 핵심”이라고 했다. ‘이 후보 측 7인회 백의종군→86그룹 용퇴→3선 이상 중진 불출마 선언’ 등의 연쇄 반응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중진 및 86그룹 의원들은 “용퇴나 3선 연임 제한에 대해 언급하지 말라”며 자체 함구령을 내린 상태다. 운동권 출신 한 의원은 “총선도 아닌 대선에서 특정 세대의 용퇴가 표에 도움이 되겠느냐”라고 이 후보 측을 비판했다.
여의도 전략통들은 여권이 설 직전 승부수로 인적 쇄신을 꺼낸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이 후보 측이 인적 쇄신을 던진 시점에 주목했다. 설 이후 ‘대선발 정계개편’을 염두에 둔 사전포석일 수도 있어서다. 이 경우 민주당은 좁게는 김동연 새로운물결 후보부터 넓게는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까지 연대를 놓고 퍼즐 맞추기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중간다리 역할은 송영길 민주당 대표가 맡았다. 송 대표 측 핵심 관계자는 “이재명·김동연, 이재명·안철수 카드가 완전히 죽은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민주당이 안철수·김동연 후보가 연대 조건으로 여권 인적 쇄신을 제시할 것으로 보고 선제 조치를 했다는 얘기다. 앞서 2012년 대선 당시 친노 9인방의 백의종군도 야권 단일화 상대였던 안철수 후보 측이 요구한 인적 쇄신의 일환이었다.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송 대표가 쇄신 명분을 쥐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설 이후 정치개혁에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 전망이다.
이재명 후보도 충격요법과 함께 ‘차별화 시즌2’ 작업에도 속도를 낼 전망이다. 신호탄은 부동산이었다. 이 후보는 1월 23일 기존 250만 호 공급보다 61만 채가 늘어난 311만 채의 부동산 공급책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이는 문재인 정부의 206만 채보다 105만 채나 많은 수치로, 이 후보 측은 “과잉 소리 들을 정도의 공급 폭탄”이라고 했다.
특히 이 후보가 설 이후 조기 국면전환에 실패할 땐 ‘임대차 3법(전월세신고제·전월세상한제·계약갱신청구권제)’에 대한 사과 카드를 꺼낼 수도 있다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당 내부에서도 전세 대란에 따른 서울 부동산 민심 악화 원인으로 임대차 3법을 꼽는 인사들이 많다. 임대차 3법 사과 카드는 선대위 실무진에서 한때 검토했다가 당 소속 의원들의 반대로 접었다. 한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을 부정하는 게 아니냐는 부정적 기류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며 “그래도 사과를 했다면 상황이 달라졌을 수도 있다”고 했다.
윤 후보의 이대남(20대 남성) 공략에 맞서 이대녀(20대 여성) 공략도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후보가 설 전 페미니즘 성향 유튜브 채널인 ‘닷페이스’에 출연한 것도 이 때문이다. 선대위 한 실무진은 “저쪽(국민의힘)에 이준석 대표가 있는 한 이대남 공략은 쉽지 않다”며 “차라리 이대녀 표심을 흔드는 게 낫다”고 했다. 이 후보도 닷페이스에서 “성평등은 개선해야 할 주요 과제” “성남시장과 경기도지사를 할 때 여성, 여자란 말을 쓰지 말라고 했다” “이대녀에게 쩔쩔 맨다” 등의 발언을 통해 20대 여성 표심을 파고들었다.
이 후보의 이대녀 공략은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는 평가다. 이 후보의 영상 조회수(1월 25일 기준)는 12만 3000회(1편 7만 1000회+2편 5만 2000회)로, 심상정 정의당 후보의 10만 회(1편 4만 1000회+2편 5만 9000회)를 웃돌았다.
60%대에 불과한 호남 지지도 제고도 이 후보의 특명 과제다. 원팀 기조에도 불구하고 이탈한 이낙연 전 대표 측 지지자와 호남 2030세대를 묶는 게 핵심이다. 민주당 한 의원은 “호남 서풍이 안 불면 부산·울산·경남(PK) 동남풍도 안 분다”며 “두 맞바람이 수도권 북상하느냐가 승기의 핵심”이라고 했다. 이 후보 측은 설 연휴 이후 호남 공략을 본격화하기로 했다. 다만 호남 서풍이 수도권 북상으로 이어질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익명을 요구한 여론조사분석가는 “어정쩡한 쇄신으로는 안 된다”며 “폭탄급 충격요법이 절실하다. 그렇지 않으면 바람이 일지 않는다. 태풍의 전 단계는 맞바람이고 그 신호탄은 호남 서풍”이라고 했다.
윤지상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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