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 핵심사업 분할 후 투자금 조달…“해외에서는 찾기 힘든 사례” 비판
지난해 코스피에 상장한 기업 중 공모가 기준 시가총액이 1조 원 이상이었던 기업은 11곳이었다. 이 가운데 5개 기업은 모기업에서 물적 분할 후 상장한 곳이다. 카카오의 자회사인 카카오뱅크와 카카오페이, SK케미칼의 자회사인 SK바이오사이언스, SK이노베이션에서 물적 분할한 SK아이이테크놀로지, 한국조선해양이 지주회사인 현대중공업이다.
이들 물적 분할한 기업 대부분 미래 성장 가능성이 높다 보니 IPO 시장에서 인기가 높다. 앞서 5개 기업의 기관투자자 평균 수요예측 경쟁률은 1688.30 대 1로 지난해 전체 평균 경쟁률인 1189.60 대 1을 크게 웃돌았다. 기관투자자의 의무보유확약 비율도 평균 58.39%로 전체 평균(16.52%)보다 약 40% 높았다. 기관투자자들의 상장일 매도 물량이 크게 줄면서 상장일 평균 유통 가능 물량이 25.00% 정도로 낮았다.
그 결과 5개 기업은 상장일 모두 좋은 주가 흐름을 보였다. SK바이오사이언스, SK아이이테크놀로지, 카카오페이의 시초가는 공모가의 2배였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장중 상한가를 유지하며 종가를 '따상'으로 마무리했다. 카카오뱅크와 현대중공업도 공모가보다 각각 38%, 85% 높은 가격에 시초가를 형성했으며, 상장 당일 종가는 공모가보다 각 79%, 86% 상승했다.
5개 기업이 IPO 성공 사례를 이어가면서 27일 상장을 앞둔 LG에너지솔루션을 향해 투자자들이 거는 기대도 커지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 역시 LG화학에서 2020년 물적 분할했다. LG에너지솔루션의 공모가 기준 시가총액은 70조 2000억 원인데, 증권사들은 LG에너지솔루션의 시가총액을 100조 원에서 140조 원까지 예상하고 있다. 주당 약 42만 원에서 60만 원까지 상승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 셈이다.
이들의 성공이 달갑지 않은 시선도 있다. 물적 분할 전 모기업에 투자했던 투자자들의 손해가 이어지고 있어서다. SK케미칼의 경우 2018년 5월 2일 SK바이오사이언스의 물적 분할을 발표했다. 10만 원 선을 유지하던 주가는 발표 이후 꾸준히 하락했다. SK이노베이션도 물적 분할 발표 후 주가 하락을 피하지 못했다.
물적 분할은 인적 분할과 달리 기존 투자자들을 위한 보상이 전혀 없다. 인적 분할은 한 기업을 존속기업과 신설기업으로 수평적으로 나누기에 기존 주주들이 지분율대로 신설법인의 주식을 나눠 갖는다. 지난해 SK텔레콤은 인적 분할을 추진해 존속기업을 SK텔레콤, 신설회사를 SK스퀘어로 정했다. 당시 분할 비율은 순자산 장부가액 기준으로 존속회사 0.6073625, 신설회사 0.3926375로 결정됐다. SK텔레콤 주식 100주를 가진 주주가 있다고 가정하면, 분할 비율에 따라 존속회사 주식 60주와 신설회사 주식 39주를 받는다. 소수점 이하 단주는 특정일 종가로 환산해 현금으로 지급됐다.
정의정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 대표는 “물적 분할 후 상장하는 패턴은 우리나라만의 현상으로 다른 나라에서 이와 같은 사례를 찾기 힘들다”며 “소액주주들의 재산 피해뿐 아니라 주주 평등권을 침해한 사례로서 오너나 대주주에게 도덕적인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는 또 “이 같은 IPO 성공 사례가 계속되는 한 소액주주들의 피해는 더 늘어날 것”이라며 “물적 분할 후 IPO를 하는 것이 쉽지 않도록 법과 제도를 마련함과 동시에 소액주주들을 보호하기 위한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고 비판했다.
대선 후보들과 금융당국도 예의주시하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는 이 같은 피해 사례와 관련한 공약을 내걸었다. 이 후보는 모회사 주주에게 주식매수청구권을 부여하는 방안을 제안했고, 윤 후보는 자회사 공모주 청약시 모회사 주주에게 신주인수권 부여를 제시했다.
손병두 한국거래소 이사장은 지난 25일 ‘한국거래소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자회사와 모회사의 동시 상장으로 기존 주주들의 주주권이 침해되는 것을 방지하고, 주주 권리 보호를 강화할 수 있는 상장관리 개선방안을 모색하겠다”며 “기존 주주를 위한 보호책과 소통 여부를 따지는 등 상장심사 기준을 강화하는 방안이 거래소가 시행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박찬웅 기자 rooney@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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