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승렬씨 | ||
지난 3월22일 기린은 전 거평그룹 계열사였던 대한중석 전무 출신 이용수씨를 새 사장으로 받아들였다. 거평그룹 나승렬 전 회장의 외아들인 나영돈씨가 이사직에 올랐으며 거평그룹 기조실 기획조사팀장을 역임한 우병수씨가 이사로 등재됐고, 거평유통 부장을 거친 나현주씨가 감사직에 올랐다. 등기부상 명단만 봐도 옛 거평 실세들의 위용을 엿볼 수 있다.
현재 기린의 대표이사는 이용수 사장이지만 지분 구조만 놓고 보면 기린의 ‘실질적 오너’는 나승렬씨의 외아들 나영돈씨다. 현재 기린의 최대주주는 서현개발이란 업체다. 건설·토공 전문업체인 서현개발은 지난 연말 기린 지분 18.18%를 획득해 최대주주에 올랐다. 나영돈씨는 지난해 10월부터 서현개발 이사직에 등재돼 있었다.
그런데 기린이 거평 출신 이용수 사장 체제로 탈바꿈한 지난 3월 중순 이후 나영돈씨는 서현개발 대표이사직에 오르게 된다. 여기에 발맞춰 서현개발은 기린 지분을 20.61%까지 늘렸다(4월19일 현재).
나승렬 전 회장 자녀들의 기린 지분 보유 현황만 봐도 거평 일가가 기린을 장악했음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다. 외아들인 나영돈 서현개발 대표이사는 지난 3월 기린 지분 2.68%를 확보해 기린 대주주 명부에 이름을 올렸다. 나영돈씨는 불과 한 달 만에 기린 지분을 2.74%까지 끌어올렸다.
나승렬 전 회장 차녀인 나현정씨는 거평 출신들이 기린 경영진을 장악한 지난 3월부터 지분 2.29%를 확보해 역시 대주주 반열에 오른 상태다. 나영돈씨는 77년생이고 나현정씨는 80년생이다. 해체된 그룹총수의 20대 자녀 두 사람이 중견 제빵업체의 최대주주가 된 것이다.
나영돈씨가 기린의 ‘실제 오너’라는 시각에 기린측 관계자도 수긍하는 분위기다. 기린의 한 인사는 “지분 소유현황을 볼 때 서현개발과 나영돈씨가 거평의 실제 소유주인 것은 맞다”고 밝힌다. 그러나 이 관계자는 “거평 출신이 기린을 인수한 건 사실이지만 나영돈씨나 이용수 사장은 기린이 그동안 진력해온 식품업에 주력할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기린이 해오던 일은 큰 수익을 내지 않는 사업인데 옛 거평은 큰 돈 만질 수 있는 일에만 뛰어들지 않았나. 거평이 하던 사업 스타일과 지금 기린이 나아가는 방향은 전혀 다르다”고 덧붙였다.
나승렬-나영돈 부자와 서현개발의 영향력 아래 놓일 수밖에 없는 이용수 사장이 독자적인 경영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논란도 있다. 이에 대해 기린측 관계자는 “거평과 연결돼 연상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현재 나영돈씨는 기린 경영에 일절 관여하지 않는다. 모든 사업추진은 이용수 사장이 기존 기린 멤버들과 상의해 결정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 이용수 기린 사장은 거평그룹 계열사인 대한중석 전무를 지냈다. | ||
이에 대해 기린은 지난 98년 계열사 부도로 5년간 화의 상태에 놓여있다가 지난 2003년 11월에서야 경영정상화를 이뤘다. 지난 연말 서현개발이 전격 인수할 당시에도 기린의 경영상태가 크게 호전된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서현개발이 기린의 향후 사업이익보다는 부동산 투자를 통해 옛 거평제국 부활을 노린다’는 관측이 나온 것이다. 원래 기린이 갖고 있는 사업 노하우나 전망보다는 기린이 ‘깔고 앉아’있는 부동산에 더 눈독을 들였을 것이란 시각이다.
기린 관계자는 극구 부인한다. 이 관계자는 “기린은 2007년 부산 정관산업단지로 이전을 결정해놓은 상태다. 기린이 산업단지로 들어가고 나면 현재 부지에 아파트단지 조성을 하겠다는 계획은 서현개발이 기린을 인수하기 전부터 검토된 사항”이라고 밝혔다.
재계 일각에선 ‘거평가 사람들이 그룹 부도 이후에 뒷돈을 감춰놓았다가 기린 인수에 투입했을 것’이란 미확인 추측도 나돌지만 기린측 관계자는 “아는 바 없다”고 잘라 밝혔다.
이 관계자는 “대우 김우중 회장 귀국 문제와 맞물려 거평과 기린의 관계가 괜한 주목을 받는 것 같다”라며 “아무쪼록 소비자들이 기린을 거평과 연결지어 보기보다는 독자적으로 건전한 경영상태 회복을 위해 노력하는 기업으로 봐줬으면 좋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