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워리어스 웨이>의 한 장면. |
영국에 유학을 간 일본인 남성이 현지 여성과 성관계를 맺었다. 오르가슴에 도달한 순간 그는 모국어 감각 그대로 번역해 “간다(I’m going)”고 외쳤다. 그러자 상대 여성이 “어디에 간단 말이야(Where are you going)”이라 물어 민망했다고 한다. 영어가 모국어인 이 여성은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말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말이나 일본어에서는 “우리 집에 올래?” 라고 물으면 “갈게”라고 답하지만, 영어에서는 “올게(I’m coming)”라고 답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우리말에서는 내가 출발해 상대방 집이란 도착지점에 간다는 행위에 무게를 두는 데 비해, 영어에서는 도착을 예상해 답한다. 즉 출발점이 더 중시된 경우 ‘가다’, 도착점이 중시된 경우 ‘오다(come)’이다. 영어로 ‘가다(go)’를 표현할 경우, 출발해서 어딘가 다른 곳으로 떠나는 것을 뜻하는 경우가 많다.
프랑스어도 영어와 마찬가지. 오르가슴을 표현할 때 ‘내가 온다(Je viens)’라 한다. 단 요즘에는 ‘내가 즐긴다(Je jouir)’라는 표현도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영미권에서는 최근 오르가슴을 표현하는 말로 왜 ‘오다’란 단어를 쓰는지 살핀 언어학 연구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이에 따르면 영미권에서는 오르가슴을 도달해야 할 확실한 목표로 인식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라고.
그런가 하면 일본의 철학자 미우라 준 씨는 독특한 분석을 하고 있다. 한국·중국·일본 등 동양의 불교문화에서 비롯된 사고방식이 오르가슴 표현에 반영돼 나타난다는 것. 중국에서는 오르가슴을 ‘죽겠다(死了)’ 등으로 말하는데, 한국어나 일본어에도 이와 같은 ‘죽겠다’라는 표현이 있다.
불교가 번창했던 고대 동양권에는 ‘가다’ ‘죽겠다’ 등의 의미는 곧 이상향, 극락정토에 간다는 뜻이었다. 미우라 준 씨에 따르면, 이런 사생관에 영향을 받아 성관계로 평소 일상생활과는 사뭇 다른 좋은 경험을 하면 ‘간다’, ‘죽겠다’고 말하던 게 습관이 돼 현재까지 전해졌다고 한다.
조승미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